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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따로 행동따로

by 반짝별 사탕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지만 생활 패턴과 학습 습관은 초등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잘하지만, 공부 습관은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해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며 중학교 1학기를 보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첫 시험을 앞둔 지금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크다.


집에서는 공부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액정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속으로는 집에서도 조금은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오히려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집에서는 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동안 간섭을 최소화하고 아이가 원한 미술학원만 보내왔는데, 과연 이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시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아서 시험을 잘 치를리 없는 아이에게 “이름만 잘쓰고 와”라는 말이 화근이 였을까?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둘러 말해주었다.


시험 준비 기간이 끝나고, 시험을 치른 뒤 일찍 하교한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첫날 시험 과목은 영어와 도덕이었는데, 아이는 다짜고짜 “엄마, 나 도덕 시험 거의 백지 냈어”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래, 알았어. 시험 쳤으면 된 거야”라고 짧게 답하며 전화를 마쳤다. 전화기 너머의 아이 목소리는 의외로 밝고 즐거웠으며,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전혀 없어 보였다. 사실 딸아이가 거의 백지를 냈다는 말도 크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영어 과목을 담당하고 계신다. 시험 전에도 방과후에 ‘두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 공부를 도와주셨는데, 그만큼 아이의 학습 태도와 결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첫 시험이 끝난 직후 걸려온 전화는 시험과 관련된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딸아이가 도덕 시험을 거의 백지로 냈다고 했으니 아마 그 문제로 연락주셨으리라 짐작되었다. 더불어 영어 과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마음을 스쳤다.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은 이랬다. 딸아이가 영어시험지를 백지로 내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시험지를 내셨다며 당황스러워 전화를 주신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방과후 두드림 수업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했지만, 정작 집에서는 외워오라는 단어를 외워간 적이 드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쉬운 문제라도 꼭 맞출 수 있도록 외워야 한다” 하시며 다독여주셨는데, 아이는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빈 시험지를 제출한 것이다.


귀한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주신 선생님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는 “이래서 고등학교는 갈 수 있겠느냐”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오늘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험지를 내지 않은 아이의 마음과, 속상함을 감추지 못한 선생님의 마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겁게 흔들리는 나의 마음까지. 오늘 하루는 참 여러 겹의 생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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