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가르쳐준 사람들(4)

[오늘도, 사람!]

by 별체



“셋 다 너무 이상해요. 특히 저그는 제일 징그러워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저글링이 뭔지 알고 싶어 해보려고 했던 스타크래프트 종족 선택지를 놓고 10분 넘게 고민하던 나는 끝내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대결 상대를 저그로 선택해도 저글링은 볼 수 있어. 꼭 저그로 플레이하지 않아도 돼.”



내 선택을 기다리던 선생님은 결국 초보자가 가장 하기 쉽다는 프로토스를 선택해서 게임을 실행했다. 컴퓨터와의 대결을 시작하자마자 선생님은 화면에 영어로 무언가를 여러 번 쳤다.



선생님이 한 문장 치고 엔터를 누를 때마다 온통 컴컴했던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고, 우측 상단에 0이었던 숫자가 갑자기 오르고, 빨간색으로 표시되던 숫자 표시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입력한 영어들은 게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세팅을 조작하는 치트키였다.



절대 질 수 없는 세팅으로 게임을 설정한 선생님은 게임 내에서 쓰이는 건물과 유닛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는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플레이하면서 건물을 세우고 전투 유닛을 열심히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 지도에 빨간색 네모가 반복적으로 뜨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내가 공격받고 있는 거라면서 네모가 뜨는 부분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새끼 도롱뇽처럼 생긴 보라색 몬스터 여섯 마리가 내가 세운 수정 건물(파일론)을 공격하고 있었다.



“얘들이 저글링이야. 저글링은 만들어 낼 때 자원도 적게 들고, 속도도 빨라.”



선생님은 그 새끼 도롱뇽들이 저글링이라고 했다. 직접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반에서 키가 작은 편이었고, 재형이가 놀릴 때마다 쏜살같은 스피드로 때렸기 때문에 걔가 나한테 저글링이라고 한 것 같았다. 거기에 중요한 건 저글링은 정말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나 저글링 닮았어요?”



안 그래도 선생님은 내가 왜 저글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누가 그래?”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요.”

“왜 저글링이래?”

“몰라요. 언제부턴가 저를 그렇게 불러요.”



선생님한테는 내가 고백 받았다가 거절한 얘기를 쏙 숨겼다. 선생님이 알면 엄마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네가 왜 저글링이야. 아니야. 그런 말 무시해버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저글링을 직접 보고 시무룩해졌고, 더 이상 게임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작고 못생긴 유닛을 내 별명으로 붙여준 형이가 너무 미웠다.


“선생님이 재밌는 거 보여줄까?”



시무룩해진 나를 본 선생님은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며 마우스로 게임 조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여러 번의 클릭 끝에 순식간에 처음 보는 유닛을 하나 만들어냈다.



망토를 걸친 채 두 발로 걷는 두더지처럼 생긴 노란색 유닛이었다. 다른 유닛과는 다르게 투명하게 보여서 신기했다. 선생님은 이걸 다크템플러라고 부르며, 투명해서 적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나한테만 보인다고 했다.



“신기하긴 한데... 이게 재밌는 거예요?”

“아직 안 끝났어. 기다려봐.”



선생님은 다크템플러를 하나 더 만들어 내더니 두 마리를 합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에 검붉은 빛이 동그랗게 활활 타오르는 유닛이 나타났다. 나는 순식간에 그 유닛의 화려한 모습에 마음을 훅 뺏기고 말았다.



“우와! 이거 뭐예요?”

“다크 아콘이야. 생긴 거 엄청 멋있지?”

“네. 불속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것 같아요. 엄청 세 보인다. 멋있어요!”

“이게 끝이 아니야. 얘는 가지고 있는 능력이 더 멋져.”



선생님은 마침 나를 공격하는 저글링 중 한 마리에게 다크 아콘의 스킬(마인드컨트롤)을 사용했다. 그러자 저글링이 공격을 멈추고 멀뚱히 서버렸다.



“얘 왜 이래요?”

“이제 얘는 우리 편이거든. 정신을 지배해서 그래.”



저글링을 마우스로 클릭하자 적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스킬이 보였다. 내 맘대로 저글링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우와! 짱이다!”



나는 단숨에 다크 아콘에게 푹 빠져 버렸다. 생긴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가진 능력은 더 마음에 들었다. 상대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이 유닛 하나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게임 전체가 갑자기 좋아졌다. 저글링 때문에 나빴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좋아하는 나를 본 선생님도 그제야 안심한 눈치였다.



“마음에 들어?”

“네. 다크 아콘은 되게 섹시한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내 말에 선생님은 크게 웃었다.



“섹시가 무슨 말인지 알고 쓰는 거야?”

“네. 첫눈에 반해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에요.”

“누가 그래?”

“공주 키우는 게임에서 나온 용이요. 제가 키우는 애한테 섹시하다고 했어요.”



내 대답에 선생님은 더 크게 웃었다. 선생님이 왜 웃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웃는 선생님을 다그치며 다크 아콘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다크 아콘을 열심히 만들어 댔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컴퓨터와 대결하며 전반적인 게임 방법을 숙지한 나는 학원 남자애들 사이에 함께 껴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게임을 체계적으로 배운 덕분에 아무거나 막 눌러서 만드는 남자애들을 상대로 꽤 높은 승률을 보였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나는 선생님한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선생님, 내일 수업 끝나고 잠깐 친구 데려와서 게임 한 판만 해도 돼요? 여기 학원 다니는 애가 아니라서요.”

“게임 한 판 정도야 뭐. 누군데?”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걔요. 저를 저글링이라고 부르는 애.”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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