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가르쳐준 사람들(5)
[오늘도, 사람!]
“저글링! 왔냐?”
다음날 아침, 등교하자마자 형이는 내게 또 저글링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다.
“자꾸 저글링이라고 하지 말랬지?”
“저글링을 저글링이라고 하지, 뭐라 그러냐!”
“너 저글링이 뭔지는 정확히 알아?”
“야, 나 스타 잘해. 너랑 똑같이 생긴 저글링 부대로 애들 다 쓸어버릴 수 있어.”
나는 자신의 게임 실력을 자랑하는 형이를 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잘하면 나랑 한 판 붙어.”
“뭐?”
형이는 게임 대결을 하자는 제안에 당황한 듯이 되물었다.
“나도 스타 할 줄 알아, 프로토스. 나랑 해보자고.”
“네가 무슨 스타를 해? 너 저글링이 뭔지도 몰랐잖아.”
“이제 알아. 배웠어.”
“안 해. 내가 너랑 왜 해야 하는데? 할 이유가 없는데?”
평소와 다르게 당당한 내 표정에 형이는 주춤하면서 대결을 거부했다.
“네가 나를 이기면 사귀자는 것만 빼고 소원 하나 들어줄게.”
나는 초등학생이 걸 수 있는 가장 좋은 보상, 소원 들어주기를 내세우며 게임 대결을 종용했다. 형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지면?”
“네가 지면 다신 나한테 저글링이라고 부르지 마.”
“좋아. 해.”
형이에게 내가 다니는 컴퓨터 학원 위치와 학원 수업 끝나는 시간을 알려줬다. 얼른 대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남은 수업을 들었다.
학원 수업이 끝난 후, 형이는 학원으로 왔다. 내게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심판을 봐주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컴퓨터에 앉아 대결을 시작했다. 나는 프로토스를 선택했고, 형이는 저그를 선택했다.
자기가 게임을 잘한다던 형이는 막상 겨뤄보니, 다른 컴퓨터 학원 친구들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거나 이것저것 막 만드는 수준이었다. 저글링 부대를 만들어서 다 쓸어버리겠다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정찰 용도의 유닛(오버로드)만 잔뜩 뽑고 있었다.
반면 나는 형이와의 대결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유닛, 다크 아콘을 만들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친구들과 대결하며 살펴보니 다크 아콘은 필요한 자원이 많고, 컨트롤이 어려운 편이라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다크 아콘만 한 무더기 뽑아 놓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형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최대한 효율적인 전투 유닛만 뽑아 공격에 집중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너무도 간단하게 형이를 이겼다. 너무 쉽고 빠르게 이겨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너 뭐 하냐?’ 하는 눈빛으로 형이를 쳐다봤다. 형이는 다시 한 판 붙자고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뽑는다던 저글링 부대는 어디 갔니?”
“뽑아서 공격 보내면 네가 다 죽였잖아!”
형이는 여전히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지켜보던 선생님은 형이를 달래며 게임 노하우를 몇 가지 알려줬다.
“선생님, 걔한테 왜 알려줘요! 영원히 모르라 그래요. 평생 지게!”
선생님이 형이한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싫었던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네가 이겼잖아. 형이도 이제 저글링이라고 안 놀릴 거야. 그렇지, 재형아?”
선생님이 말하자 형이는 우물쭈물하면서 조그맣게 ‘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마저 알려주고는 형이와 나를 휴게실로 데려간 뒤 햄버거를 사주셨다.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며 형이에게 말했다.
“진짜진짜진짜 앞으로 저글링이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
햄버거를 먹는 게 기분 좋았던지 형이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형이는 정말로 나를 저글링이라고 놀리지 않았다. 다만 말 그대로 ‘저글링’이라고만 놀리지 않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스타크래프트의 다른 못생긴 유닛들을 돌아가며 내 별명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한테 스타도 못 이기는 게’로 응수했다. 그러면 주변 친구들이 형이한테 야유를 보냈고, 형이도 잠잠해졌다.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더 이상 형이가 놀리는 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형이도 시들해진 내 반응을 보고는 나를 놀리는 대신 타깃을 바꿔 다른 친구들에게만 장난을 쳤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먹해진 채로 우리는 3학년에서 4학년을 지나 5학년이 됐다.
우리 학년은 14반까지 있어 새로운 학년이 될 때마다 반이 바뀌고, 학급 친구가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형이와 나는 3학년부터 5학년까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그 사이 나는 게임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계신 컴퓨터 학원을 관두고, 피아노 학원도 관뒀다. 자연스럽게 국영수를 가르치는 학원들만 다니게 되면서 스타크래프트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거기에 남녀 구분이 뚜렷해지면서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만 말하고,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만 말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렇게 형이와 말을 안 한 지 너무 오래된 5학년의 어느 날,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우리들에게 말했다.
“형이가 전학을 가게 됐어요. 형이한테는 오늘이 이 학교에서 마지막 날이에요. 우리 모두 잘 가라고 인사합시다. 형이도 친구들한테 마지막 인사 한마디 할까?”
갑작스러운 형이의 전학 소식이었지만 크게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형이가 워낙 장난이 심해 자주 사고를 치는 바람에 반 애들에게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5학년이 돼서도 여전히 반장인 나 역시도 친구들이 하소연할 때마다 형이와 친구들을 중재시켜야 했기에 아쉬움보다는 후련한 마음이 좀 더 컸다.
형이도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고 짧게 인사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수업이 끝난 후, 실내화를 갈아 신던 내게 형이가 말을 걸었다.
“야!”
“왜!”
불친절한 내 대답에 형이는 잠시 멈칫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전학 가는 학교에서는 나 꼭 반장할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형이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냥 그럴 거라고.”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 어쨌든 응원은 할게.”
“너 반장만 만난다며.”
그제야 형이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무려 2년 전에 형이가 반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고백을 거절했던 게 생각났다.
“그게 언제 적 일이야.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나 이제 반장만 좋아하는 거 아냐.”
“그래도 넌 여전히 반장이잖아.”
“웅변 유치원 다녀서 선거 연설 잘해서 그래.”
여전히 퉁명스러우면서도 대답은 다 해주는 나 때문에 형이는 피식 웃었다.
“전학 가서도 메신저(버디버디) 보내도 돼?”
“네가 언제 내 허락받았냐. 맘대로 해.”
“연락할게.”
그렇게 뒤돌아서 가는 형이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형이가 소리쳤다.
“저글링이라고 했던 거 미안해!”
그러고는 후다닥 뛰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할 말도 없던 나는 그냥 천천히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형이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야! 야!! 형아!”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형이는 저 멀리에서 우뚝 섰다. 형이가 멈춘 것을 확인한 나는 뛰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천천히 걸어 형이 앞까지 갔다.
“왜?”
“나 너 때문에 스타 배웠어. 네가 나한테 저글링이라고 해서.”
“...”
“놀린 건 정말 싫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재밌게 게임했어. 고마워. 잘 가.”
내 인사에 형이는 활짝 웃으며 돌아갔다. 그 뒤로 나는 형이와 이메일도 주고받고, 버디버디, 다모임, 네이트온을 지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등을 통해 꾸준히 연락과 만남을 이어갔다.
그 시기의 형이는 나와 게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이기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이기지 못했던 거지만, 이후에는 이길 상황이어도 일부러 내게 져줬다. 대화를 하다가 사소한 다툼이 생겨도 늘 형이가 먼저 사과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는 몰랐던 형이의 다른 모습을 보며 자주 놀라고, 공감하고, 웃고, 대화하면서 성인이 되어서까지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다.
게임을 좋아한 덕분에, 내게 게임을 가르쳐 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제일 먼저 형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나에게는 맘껏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승부욕이 옅어지기까지 누군가와 승부를 할 때마다 늘 찝찝했다. 내가 지는 것은 당연히 싫었고, 이기더라도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봐 마음 편히 이기지 못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승부란 늘 나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형이와 처음 겨뤘던 게임에서 나는 신나게 이기기만 했다. 이후의 모든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맘껏 이기기만 해도 흔들리지 않던 그 확실하고도 유일한 관계에 나는 오랜 시간 푹 빠져 있었다. 형이의 배려로 이루어진 그 시간을 가끔 그리워하며 오래도록 그 애의 안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