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게임하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보던 엄마가 해리포터 게임을 흔쾌히 하라고 허락해준 건 이유가 있다. 나는 해리포터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엉뚱한 일을 계획하는 바람에 엄마를 기함하게 한 전적이 있었다.
4학년이 됐을 무렵, 나와 친구들은 프린세스메이커라는 일명, 공주 만들기 게임에 열광했다. 모두가 공주를 만들고 싶어 안달 났던 그 게임에서 나는 유독 왕궁마법사라는 직업에 눈길이 갔다.
마법수업을 들으면 내 캐릭터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불빛을 뿅 만들어냈다. 나는 순식간에 그 신비함과 화려함에 매료됐다. 정말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처럼 보였다.
거기에 마법을 제대로 쓰려면 내 캐릭터의 지능 수치가 높아야 했는데, 그 사실 또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식인과 예술인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길 원했고, 마법사는 그 조건에 딱 맞는 직업처럼 보였다.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일단 키우던 캐릭터부터 왕궁마법사로 만들었다. 게임 내에서는 나름 키우기 어려운 편에 속했기에, 세 번이나 도전해서 기어코 만들어냈다. 나의 교육이 훌륭했다는 NPC의 말을 보고 뿌듯해하며 게임을 종료한 뒤에는 공책을 펼쳤다. 이젠 현실의 내가 될 차례였다.
우선 맨 위에 제목부터 적었다. ‘마법사가 되자★’ 아래에는 게임 내 상태창처럼 똑같이 여러 개의 막대그래프를 그렸다. 각각의 막대에 체력, 마법기술, 마력, 지능, 신앙심 등의 몇 가지 이름을 붙여 주었다. 게임 속에서 마법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이었다.
이 능력들은 전부 999점이 만점이었는데,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각 500점 이상은 되어야 했다. 나는 현실 속에서 이 능력치를 500점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게임 속 캐릭터는 농장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군사학 혹은 마법수업을 들어서 수치를 채웠는데, 현실 속 나는 농장이란 걸 가본 적도 없었고, 군사학이나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수업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하다 보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를 것 같았다.
일단 체력은 자전거를 타거나, 뒷산을 오르는 것으로 대체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워서 그냥 시간으로 계산했다. 한 시간 운동하면 체력 그래프를 한 칸 색칠했다. 그렇게 500칸 채우면 체력 점수가 500점이 넘는 것이다.
식비에 돈을 많이 쓰면 체력이 더 빨리 오르는 게임 캐릭터를 참고해서, 치킨을 먹을 때마다 한 칸씩 채워주기도 했다. 대신 체력이 오르는 행동을 아예 안 하는 날에는 다시 1점씩 점수를 깎았다.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계산했다.
지능의 경우는 학교를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공부를 할 때마다 한 칸씩 색칠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모든 친구들이 하는 거라 수치에 포함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학습지를 열심히 풀었다.
지능은 체력과 다르게 국어나 수학을 공부하면 시간당 2점씩, 영어는 3점, 그 외의 다른 과목을 공부하면 1점을 올려줬다. 제대로 집중 안하고 딴짓만 한 날에는 무조건 1점을 깎았다.
그 다음 문제는 신앙심이었는데, 우선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신앙심이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마법의 힘은 신에게서 가지고 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필요하다기에 방법을 궁리했다. 게임 속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중세시대였기에 교회에 가면 신앙심이 올랐다. 그래서 나도 교회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전부 무교였고, 나는 교회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 전 다니던 유치원이 선교 유치원이라서 주말마다 유치원선생님을 따라 교회에 가본 적이 있었다. 동생한테 슬쩍 교회에 어떻게 가면 되는지 물었다. 내 질문을 들은 동생은 엄마한테 소리쳤다.
“엄마! 언니가 교회 가고 싶대!”
“아! 이 촉새 같은 게! 조용히 해!”
나는 황급히 동생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안 그래도 엄마는 부쩍 이상해진 내 행동에 이미 의심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너 요즘 왜 그래?”
“내가 뭘.”
“집에서 꿈쩍도 안하던 애가 자꾸 자전거 탄다고 나가지를 않나, 다 푼 학습지를 몇 번씩 풀고 앉아 있지를 않나, 요새 아주 수상해.”
“운동하고 공부하는 게 뭐가 나빠.”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며 모른 척 했다. 그런 내 모습에 엄마는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요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은 왜 안 빌려와? 공부 안하고 책 보는 게 일인 애가?”
“도서관에 더 이상 읽을 책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넓은 도서관에서 내가 읽은 책은 100분의 1도 안될 게 뻔했다. 엄마가 묻는 말에 엉겁결에 내뱉고는 나도 아차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동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책상 서랍에 몰래 숨겨놓은 공책을 꺼내 들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매일 그래프를 그리던 바로 그 공책이었다.
“엄마, 언니 요즘 이상한 거 그려.”
“그거 아무것도 아냐. 이리 내놔.”
동생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엄마가 보는 앞이라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공책을 다시 뺏으려고 했지만, 엄마가 한 발 더 빨랐다. 엄마는 그 공책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어머어머어머어머! 이게 다 뭐야?”
엄마 옆에서 함께 공책을 보던 동생이 평소의 엄마 말투를 따라하며 말했다. 아오…. 저걸 그냥…. 엄마가 공책을 본 이상,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공책에는 이미 마법사가 되겠다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그러기 위해 채워야 할 목표 수치도 적어놓았고, 뭘 해서 수치를 채우는지, 어떤 기준으로 수치를 올리고 내리는지, 언제 수치를 변경했는지 일일이 날짜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당연히 신앙심 옆에도 ‘교회예배 한 시간에 1점씩!’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가 적어놓은 것들을 다시 하나하나씩 훑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댓글을 다는 사람처럼 일일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것도 내 면전에 대고.
“얘는 대체 현실적인거야, 비현실적인거야…”
“내 뱃속으로 낳은 내 새끼인데 당최 속을 알 수가 없다….”
“이게 진짜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니….”
“그 와중에 아예 안한 날은 점수를 깎았어. 왜 이상한 곳에서 치밀하고 난리야…”
“이래서 각각 500점씩 언제 만들어…”
“선무당이 사람 잡겠네…”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던 엄마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냐고 물었고, 나는 게임에서 알아냈다고 이실직고했다.
내 입에서 게임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질색하던 엄마가 이번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빠진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앉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앉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엄마가 넌지시 내게 말했다.
“교회는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너랑 같은 반 친구, 한나네 엄마가 선교사잖아. 한나한테 얘기해서 가.”
나는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엄마가 화를 낼 것 같았는데, 오히려 교회를 가라고 하니까 더 무서웠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울먹이며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가 옆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쭈뼛거리며 옆에 앉자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토닥였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얼어있어. 엄마는 요즘 네가 뭐하나 궁금했는데 말이야. 세상에 우리 딸이 마법사가 되고 싶었구나. 혼자서 계획 짜고 실천한 게 대단하네.”
엄마는 마법사 같은 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진짜 마법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우리나라에만 없는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영어 공부는 시간당 3점이란 말도 덧붙였다.
나는 진심으로 마법을 쓰려면 외국에 나가야만 가능한 줄 알았다. 일단 마법주문이 전부 영어 같았고, 게임에서도 마법을 가르쳐주던 사람이 노란색 머리의 파란 눈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TV 속에서 마술을 선보이던 사람도 죄다 외국인이었기에 철석같이 믿었다.
엄마는 내 대답을 들으며 크게 웃더니, ‘우리 딸은 엄마가 목표를 잘 잡아줘야겠구나.’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남은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마법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란 걸 어렴풋이 알아챘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동안 친구 따라 교회는 다녔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누구 딸이 저렇게 고집이 센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어찌됐건 내가 공부도. 운동도 꾸준히 하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일 덕분에 한동안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은 물론, 동네 아줌마들까지 나를 놀렸다. 나는 그때마다 부끄러워서 자리를 피했다. 가끔 놀리는 게 지나치면 울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내가 운다고 또 놀렸고, 나는 씩씩거리며 눈물을 그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마법사가 진짜 있을 수도 있지! 두고 봐!’
이로부터 2년 뒤, 나는 해리포터를 알게 됐고 다시 마법의 세계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해리포터 게임을 해도 된다는 엄마의 허락까지 받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컴퓨터에 게임 설치를 시작하자,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옆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첫 화면이 시작되는 순간, 엄마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이번에도 마법사 되겠다고 설치기만 해봐! 게임만 해라, 게임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