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매일 빠지지 않고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는지. 엄마는 내 일상을 가장 궁금해하고,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싶은 타인이었다. 매일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학습지를 푸는 게 전부인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일상에 어떻게든 별일을 찾아내고 싶은 사람처럼 집요하게 물었다.
나도 엄마한테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별일 없었다고. 보통 별일이란, 엄마한테 말해서는 안 될 일이 대부분이다. 말해봤자 엄마한테 욕먹을 일만 많았단 뜻이다. 그럴 때는 그냥 별일 없다고 말하는 게 속 편하다.
엄마는 매번 내 대답에 실망하며 자신이 딸을 키우는지 아들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남의 집 딸들은 하루 종일 조잘거린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딸들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지 궁금해하다가, 애초에 엄마가 나도 모르는 남의 집 딸 얘기는 어디서 자꾸만 듣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어울리는 아줌마들은 다 내 친구, 동생 친구 엄마들뿐이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내 친구들은 대체로 나랑 비슷했기 때문이다. 조잘거리는 걔가 누구냐고 물으면 엄마는 대충 말을 얼버무리거나, 황급히 동생한테 말을 걸며 자리를 피했다.
이번에도 엄마는 큰 기대 없이 나의 하루에 대해 물었다. 나는 책가방을 열어 책 한 권을 꺼내 엄마에게 건넸고, 엄마가 책을 받아들자 뒤이어 다른 책 한 권을 더 꺼내 책상에 놓으며 엄마한테 말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뭐가?”
난데없이 엄마 탓을 하며 말을 꺼냈는데도 엄마는 눈을 반짝였다. 간만에 내가 전하는 별일이 무척 반가운 눈치였다.
“엄마가 나를 8살 때 학교 보내는 바람에 호그와트 입학장이 안 왔잖아. 호그와트는 10살 때부터 입학하는 건데, 미리 다른 학교에 입학시키는 바람에.”
내가 엄마에게 건넨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해리포터 시리즈 3편이었다. 그건 엄마 읽으라고 빌려온 책이었고, 책상에 올려놓은 책은 내가 읽을 해리포터 시리즈 4편이었다. 물론 나는 벌써 이 책을 네 번이나 읽었다.
13살의 나는 해리포터에 푹 빠져 있었고, 아직 나오지 않은 5편 이후의 시리즈를 기다리며 다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해리포터 전용공책을 따로 만들어 해리포터 속 인물 정리, 주문과 주문효과, 기숙사 별 특징, 마법약 종류 등 책에 나오는 모든 정보를 모조리 정리하고 적느라 매일 늦게 잤다.
내 모든 일상을 궁금해하는 사람답게 엄마도 내가 푹 빠진 책이 대체 뭔가 싶어서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했다. 재미있다며 밤을 새워서 책을 읽고는 내게 돌려줬다. 그러면 다음 날 내가 학교에 가서 다음 편을 또 빌려와 다시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와 나의 모든 대화는 해리포터였다.
“네가 영어를 잘했으면, 지금 학교 다니는 거랑 상관없이 입학장이 왔을 거야.”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반짝이던 엄마는 별일이 아니란 걸 알고 짜게 식었다. 미적지근한 태도로 소파에 앉아 나의 영어실력을 지적했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게 이상하지. 나를 영국에서 낳아주지 그랬어.”
“너는 뭐 맨날 다 엄마 탓이래.”
엄마는 툴툴거리며, 내가 건넨 책을 대충 빠르게 넘겨보고 있었다. 곧 저녁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꼼꼼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내가 영어만 잘했으면 입학장이 온다는 건, 내게 숨겨진 마법 재능은 있단 뜻이지?”
“딸아, 정신 차려.”
“휴... 마법사가 되고 싶어.”
엄마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나는 마법사가 될 수 없는 현실에 한숨만 푹 내쉬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건 빗자루를 타거나, 지팡이를 우아하게 휘두르며 마법을 쓰는 것이지, 머리 아픈 수학이나 영어가 아니었다.
“아빠가 해리포터 게임 있다고 그러던데.”
“진짜?”
“응. 네가 하도 해리포터 노래를 불러대니까, 아빠가 알아봤나 봐.”
“그래서?”
“CD 구해 오라고 했지.”
“진짜진짜진짜진짜진짜진짜?! 나 게임해도 돼?”
나는 잔뜩 흥분해서 엄마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엄마는 왜 이러냐며 나를 밀어내는 시늉을 했지만, 실제로 밀진 않았다. 한시적이긴 해도 나의 아양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학습지 밀리면 안 돼. 할 거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해.”
“오예! 엄마, 최고!”
나는 신나서 엄마에게 쌍따봉을 날린 뒤, 팔짱을 끼고 엄마 팔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엄마가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못 들은 척했다. 그저 엄청난 기회를 잡았다는 기쁨만을 만끽했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유일한 컴맹이었다. 정확히는 컴퓨터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컴퓨터 앞에 기를 쓰고 앉으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히 게임도 눈치 보면서 슬쩍슬쩍 했다. 시간이 길어지면 숙제하는 척했지만, 엄마는 속지 않았다.
프로그래머인 아빠가 나를 위해 게임을 구해올 때도 엄청난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멋쩍어 하며 두 손을 들었다. 내겐 엄마 몰래 나중에 하라고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럼 나는 엄마가 외출하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신나게 게임을 했다. 물론 엄마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계속 불안해하면서 말이다.
게임을 하고 나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의기양양하게 게임 후기를 늘어놓았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엄마가 나 때문에 밖을 못 나가겠다며 한숨을 쉬는 게, 평소의 우리 집 모습이었다. 그러니 엄마에게 정식으로 허락받은 게임 기회에 몹시 기뻐하며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원하던 마법사 한 번 해봐.”
엄마의 말에 나는 부리나케 책상 앞에 앉았다. 아빠가 오기 전까지 일기와 숙제, 학습지를 모두 끝내야 했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위대한 마법사가 될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사실 마법사가 아니라 더한 것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아빠의 든든한 응원 한마디면 난 자주 그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