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가 되고 싶어(3)

[오늘도, 사람!]

by 별체



나중에 커서 꼭 나 같은 딸 낳으라는 말은 엄마의 가장 오래된 대사다. 주로 내가 뭔가 잘못했을 때 하는 말이다. 농담이 반쯤 섞인 그 말에 나 같은 딸이 뭐 어떠냐고, 아주 좋기만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받은 만큼 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는 못된 자식이었으니까. 그건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지 않는 한, 결국 영원히 할 수 없는 일 같았다.


가끔 그런 부채감이 심하게 짓누를 때마다 한번쯤은 직접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내가 진짜 엄마를 힘들게만 하는 사람이냐고. 물론 지금껏 물어본 적은 없다. 정말 그렇다고 대답할까 봐.


“밥은 먹고 해야 될 거 아냐!”


우리 집 불문율 중 하나는 밥은 무조건 식탁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리포터 게임에 정신이 팔려 거실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던 나는 불문율을 어기지 않기 위해 저녁을 아예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부엌에서 끊임없이 구시렁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했다.


내가 직접 해리포터가 돼서 마법주문을 그리거나 마법약을 조제하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느라 몹시 바빴다. 트롤을 피해서 도망치는데 자꾸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몇 번씩 다시 도전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상전을 모시고 살지. 아주 그냥!”


엄마가 밥 한 그릇과 김, 김치를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그리고 부엌에서 의자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았다. 엄마는 계속 잔소리를 이어갔지만 손은 그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엄마는 밥에 김치를 한 점씩 얹고 김으로 돌돌 싸서 내 입에 하나씩 밀어 넣었다. 나는 엄마가 ‘아’ 할 때마다 고개만 살짝 돌려 오물오물 받아먹었다.


“지가 배고프면 먹겠지, 뭘 그렇게까지 해. 그냥 놔둬.”


밥을 다 먹고 거실로 나온 아빠가 유난이라는 듯이 한마디 툭 던졌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게 밥을 먹였다. 따라 나온 동생도 한마디 거들었다.


“언니는 엄마 없으면 하루도 안돼서 죽을걸? 마마걸이야.”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동생을 죽일 듯이 째려봤다.


“너는? 너는 엄마 없으면 살 수 있어? 지도 똑같으면서!”

“나는 혼자서도 밥 잘 먹고, 젓가락질도 잘해. 언니는 아직도 젓가락질 못하잖아.”

“죽을래? 공부도 못하는 게.”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은 손재주가 좋다는 잔나비띠의 명성에 걸맞게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것을 잘했다. 만들기, 종이접기, 그림 등에 소질이 있었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젓가락을 썼다. 그것도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엄마아빠가 밥 먹는 걸 유심히 보면서 혼자 터득했다.


반면에 나는 6학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교정용 젓가락을 쓰거나 포크를 이용해서 밥을 먹었다. 엄마가 열심히 가르쳤지만, 나아질 낌새는 보이지 않아 반쯤 포기했다. ‘뱀띠라 그런가......’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뱀띠는 열두 띠 중에 유일하게 팔이나 다리라고 부를 부위가 없는 띠라고 했다. 그래서 유독 손발을 쓰는 것들이 더딘 것 같다는 말을 했지만, 아빠는 그때마다 막 갖다 붙이지 말라고 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뱀띠는 다 젓가락질을 못하고, 피아노를 못 치거나 그림도 못 그리는 거냐면서 되물었다. 그리고 내가 손을 쓰는 일을 다 못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며 키보드 타자는 그렇게 잘 친다면서 혀를 찼다.


“이것들이 이제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도 쌈박질을 하네? 아주 머리끄덩이도 잡고 싸워보지 그래?”


엄마의 호통에 동생과 나는 말싸움을 멈췄다. 엄마는 계속해서 밥과 김치를 김에 싸서 내 입에 넣었다. 내가 김치 이파리를 아예 먹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김치 줄기만 골라 넣었고, 나는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받아먹기만 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먹인 엄마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게임화면을 쳐다봤다.


"이게 퀴디치야? 해리포터에서 나온 그 축구 같은 스포츠?”


나 때문에 해리포터 책의 열성팬이 된 엄마도 단번에 알아봤다. 나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끄덕이기만 했다. 엄마는 계속해서 게임화면을 보며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이거 해리랑 론이 트롤이랑 싸우는 장면이구나.”

“‘알로호모라’가 문 여는 주문이라 그런지, 진짜 지팡이로 자물쇠 모양을 그리네.”

“경비원이 등 돌렸을 때 몰래 움직여야지!”


엄마는 쉴 새 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말했지만, 나는 대부분 대답을 하지 않거나 응 같은 짧은 대답만 했다. 혼잣말에 가까운 말들이기에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별다른 대꾸가 없자 엄마도 조금씩 말이 줄어들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기만 했다. 그러고는 이내 덤덤하게 말했다.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짝사랑 같아.”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엄마를 쳐다봤다. 무슨 뜻인지 온전히 헤아릴 순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엄마를 외롭게 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짝사랑은 보통 기쁘기보다 슬픈 일이니까. 그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내가 영원히 엄마를 슬프게 할 존재인 걸까.


이전에도 엄마는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가끔 외로운 일이라고. 나는 엄마가 이런 말을 한 번씩 꺼낼 때마다 어쩔 줄 몰랐다. 그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엄마를 붙잡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게 전부였다.


“그냥 그렇다고. 너도 꼭 너 닮은 자식 낳아보면 그땐 알거야.”


이번에도 순식간에 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본 엄마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 다음 황급히 빈 그릇이 놓인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다행히도 엄마가 빠르게 정리한 덕분에, 이번에는 고인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한 번 쓱 비빌 뿐이었다. 왠지 더 이상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종료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분명 엄마를 사랑하는데도 엄마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이 꼭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었다. 정말 자식을 낳으면 나도 엄마의 생각이 뭔지 알게 될까. 그럼 내 자식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왜 그런지도 그 애는 알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어느새 다시 부엌에서 나와 슬그머니 내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 더 하지. 왜 벌써 껐어.”

“그냥.”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냐고. 하지만 묻지 않았다. 과거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엄마의 대답을 알고 있으니까.


엄마의 입에서는 또 ‘나’와 관련된 대답이 나올 것이었다. 좋은 엄마, 친구 같은 엄마, 자식을 번듯하게 잘 키운 엄마 같은, 그런 대답들.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꿈과 희망과 사랑을 맡겨버린 그녀는 분명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말할 것이었다. 그 대답을 엄마에게 직접 들을 자신이 없었다. 가끔은 감당하기 벅찬 그녀의 사랑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되돌려 줄 수 있을까 가늠해볼 뿐이었다.

이제는 그저 조용히 바랄 뿐이다. 엄마가 살면서 해본 가장 미련한 사랑의 대상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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