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 굳이 따지자면 최대한 많은 신을 믿으며 행운을 노리는 다신교 신자인 나는 매 시기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 따라다니는 종교시설이 달라지곤 했다.
등산을 좋아하고 불교신자이던 친구 따라 절을 다녔고, 성당 합창단에 속한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고 싶어 성당 미사에 참석한 적도 있다. 가장 많이 다닌 건 당연히 교회다. 주변에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종교 이야기만 나와도 거부감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내게 해로운 걸 알려주진 않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근본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고 주기적으로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이유가 궁금하기 때문에 곧잘 지인을 따라 종교시설을 가보는 편이다. 물론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정식 종교에 한해서 그렇다.
종교마다 알려주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이를 테면 사람을 보고 다니는 게 아니라, 신을 믿으며 종교시설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뜨끔한다. 신이 궁금한 게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이 궁금하고 좋아서, 일명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종교시설을 기웃거리기에 괜히 죄를 짓는 기분이다. 마치 신의 영역 안에서 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분명 나처럼 그저 사람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을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다.
목사님 아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교회를 다니던 20대 초반의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집에서만 착용하던 안경을 쓰고 목도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 아들이자 내 애인이었던 준은 음악 작업으로 늦게 자기 때문에 새벽기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오전 5시에 시작하는 새벽기도에 나온 건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가장 절망스러운 시기에는 누구나 한 번쯤 신을 찾는다고 했던가. 나는 세 시간 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2시에 준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사랑하는데, 그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닌 것 같아.]
이전 애인들은 헤어질 때마다 매번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하는데도 꼭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별을 고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듣는 입장에서는 그 한마디로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된다. 나는 아직 미련이 남은 건가 싶어 항상 상대에게 울며불며 애걸복걸했다. 창피함도 모르고 무작정 매달리는 내게 상대는 결국 좋은 말만 하는 이별을 포기하고 가슴 아픈 말을 던진다.
‘네가 이러니까 싫은 거야. 시간이 필요한 문제에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기만 하니까.’
이전 사람과의 연애 끝에서 들었던 말이다. 상대가 말한 세심하고 꼼꼼하다는 내 장점이 이별의 순간에는 가장 최악의 단점이 된다. 그냥 던진 말조차 쉬이 넘기지 못하고 ‘아직 사랑한다며’라는 가능성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가 그냥 헤어지기 미안해서 한 말인데 꼭 이런 소리까지 하게 만들어야 하냐며 나를 탓하고 나면 그제야 끝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번의 조금의 가능성도 없다는 걸 알았다. 이성의 관계로 일 년을 만난 우리가 이제 와서 이성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니, 너무 아픈 이유였다. 답장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불현듯 교회에 나가야겠다며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렇게 나간 교회는 일부 조명만 빛을 내며 대부분 어두컴컴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총 신도 수가 100명이 넘지 않는 작은 개척 교회이다 보니, 누가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준의 부모인 목사님과 사모님도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준이 없이는 절대 혼자서 교회에 오는 법이 없기에 어쩐 일이냐고 묻고 싶으신 듯했다. 하지만 곧 예배를 시작해야 했기에 눈짓으로만 가볍게 인사했다.
새벽예배는 일반 예배와 다르게 설교시간도 무척 짧았고, 주로 개인기도 위주로 진행됐다. 예배실이 가득 차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각자 띄엄띄엄 앉아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식이었다.
준을 따라 생각 없이 교회에 다니던 나는 당연히 혼자서 기도란 걸 해본 적이 없다. 남들이 기도를 하면 그제야 눈 감고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도 그럴 작정으로 눈을 감았는데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다행히 모두들 열심히 기도 중인 데다가 주변이 어두워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자 안도와 함께 툭툭 떨어지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흐느낌도 생겼지만, 예배실을 가득 채우는 음악 소리 때문에 여전히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30분을 펑펑 울고 나니 예배가 끝났다. 엉엉 운 게 너무 부끄러워서 황급히 목도리를 다시 둘러매고 갈 준비를 하는데 사모님이 나를 붙잡았다.
사모님은 화가답게 눈썰미가 좋은 분이었다. 애초에 내가 안경을 끼고 새벽예배를 나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셨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가는 내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다른 사람들을 보내고 조용해진 교회에서 사모님은 내게 따뜻한 유자차를 건네며 괜찮은지를 물었다. 평소에 말이 없는 준이 고작 세 시간 전의 나와의 이별을 벌써 부모에게 말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괜찮냐고 물었다.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는 말과 함께 나를 꼭 안아주시면서 그렇게 물었다.
애초에 나는 준의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애초에 그들에게 내가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모양새였다. 다 큰 성인의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상대편 부모에게 쪼르르 얘기하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그런데 괜찮냐는 물음에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내 입에서 꾸역꾸역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흐어엉... 목사님 아들이... 훌쩍...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람 차도 돼요? 흐아아아아아앙... 목사님이랑 사모님이 그렇게 가르치신... 거예요? 준이 어떻게... 훌쩍... 저한테 그럴 수가 있죠.... 훌쩍...”
우리의 연애가 끝난 것에 그들의 탓은 조금도 없었다. 준의 부모는 우리가 사귄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내게 변함없이 따뜻했고 적당히 무심했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마음 덕분에 그들이 알게 된 이후에도 부담 없이 교회에 다닐 수 있었고 준과의 만남에 그들이 문제가 됐던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내 입에선 우리의 헤어짐에 당신들 잘못도 있는 거 아니냐는 무례하고도 어이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 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한 달 전부터 그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준은 조용하고 행동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목사님 아들이기에 교회에서 꽤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다. 무언가 조금만 바뀌어도 대부분 바로 알아채곤 했다. 그 탓에 우리가 만난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물론 준이 시들해졌다는 것도 모두가 암암리에 알아챘다.
내게 지나치게 무심해졌고 교회 예배 이외에는 나와 일절 만나지 않으려 했다. 준의 모든 일상은 교회에서 이뤄졌고, 교회에는 나나 준 이외의 비슷한 또래도 없었기에 바람이 난 문제도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식어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며 헤어지고 싶으면 차라리 말을 하라고 다그치다가 이별 문자를 받은 게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였을 뿐.
그렇게 한참을 억지 부리며 울었고, 사모님은 나를 안아주며 조금씩 달랬다. 내가 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이럴 때 기도를 하자고 할 것 같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그저 내 말을 듣고 공감을 해주는 식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보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지금 한 행동은 준과 이대로 헤어져도, 혹시 다시 사귀더라도 둘 다 정말 최악이었다. 헤어져 놓고 그 부모에게 찾아가 깽판을 친 사람이냐, 잠깐 싸워놓고 그 부모를 찾아가서 싸운 얘기를 쪼르르 이르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사람이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울음이 멈춘 것을 본 사모님은 내게 말을 건넸다.
“나한테 하기 어려운 얘기였을 텐데 이렇게 얘기해 주니 고마워.”
준과 내가 만나는 것을 알았을 때 사모님은 무척이나 걱정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 둘이 만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매주 교회에 나와서 애인의 부모를 계속 봐야 하는 내 입장이 무척 곤란할 것 같았다고. 그런데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모든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당신한테 말도 싹싹하게 잘 걸고 편하게 다가오는 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사모님은 자신이 어려운 사람은 아닌데, 사람들이 목사님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려워하고 약간 거리를 둔다고 했다. 자신도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인데, 언제나 목사님 배우자라는 타이틀로만 보이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고.
내 눈에도 그저 목사님 배우자, 준의 어머니로만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얘기를 자신에게 털어놓은 걸 보니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내가 너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하나님이 잘 들어주셨나 봐.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걸 보면.”
세 시간 전에 준에게 이별을 듣고, 준의 어머니에게 또 다른 고백을 받았다. 나를 무척 좋아한다는 그녀의 고백은 내가 준과 사귈 때는 미처 하지 못하던 말이었다. 혹시 내게 부담을 줄까 봐. 그렇다고 헤어진 걸 잘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론적인 고민이 고맙게도 나의 무례함을 진실한 우정 혹은 사랑으로 이해하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준의 어머니의 따뜻한 고백에 위로받으며 교회를 나섰다.
사람 때문에 종교 믿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 때문에 종교가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오히려 종교의 힘을 빌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고백을 꺼내는 순간도 생긴다. 최대한 다정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내겐 그날의 크리스마스이브가 딱 그랬다.
훗날 사모님은 내게 그날의 일이 사실 웃겼다고 고백했다. 누가 봐도 웃긴 상황이라며 대답했다. 서로가 참 특이한 사람들이라며 깔깔대고 웃었다. 준과도 직접 농담을 건넬 정도로 편해졌다.
“그래. 목사님 아들은 네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뭐.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람 찰 수도 있지. 그런데 너, 사람이라면 애인 생일에 헤어지자고 하는 건 아니지 않니? 며칠 있다가 차던가, 진작 차던가. 너 때문에 난 평생 내 생일에 너 기억할 거야. 나쁜 놈아.”
23년 3월 3일 금요일
* [오늘도, 사람!]은 뚜밍이가 진행하는 매일 에세이 연재 프로젝트로, 대체로 사람을 좋아하고 가끔 싫어했던 기억을 늘어놓습니다.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 읽는 데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