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당신이 뛰어난 창업자라고 말하고, 탁월한 리더였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당신이 무신경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당신에 대해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당신은 집안의 가장이었다. 이복형이 있었지만 큰아들의 역할과 부담은 온전히 당신이 지고 살아야 했다. 첫째들을 대표하는 단어는 ‘책임’일 것이다. 당신 역시 책임이라는 말을 들으며 늘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랬기에 오히려 단단하기보다는 항상 마음속 갈등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 있던 그 자리가 결코 행복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누군가는 당신이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그 일을 원했을 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든다. 사실 당신은 항상 흔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당신에게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마음 이상으로 그 일을 이뤄내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도 컸을 뿐. 당신이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오랜 세월 존경하며 함께 하던 사람을 배신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선택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에 떠밀려 ‘선택해야만 했던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신은 그 일을 이뤄낸 이후에도 끊임없이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갈등과 결정을 끊임없이 해야 할 부담스러운 그 자리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같다. 건강을 이유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오랜 시간을 건강하게 살았던 걸 보면. 당신은 그저 그 자리와 어울리지 않았던 건 아닐까.
당신은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아들에게 보복하지 않고 결국 용서하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였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려고 했다. 있는 자보다 없는 자를 배불리기를 좋아했고, 이방인에게도 관대했다.
이방인에게 관대했던 것도 어쩌면 당신의 젊은 시절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성공하려는 순간마다 발목 잡았던 것이 당신의 출생이었으니. 당신이 이국땅에서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당신의 출생이 발목잡지 않았더라면 왠지 당신은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활력이 넘치면서도 적당히 진중하고 침착했다. 누군가는 당신에게서 거대한 산과 같은 든든함이 발산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당신과 함께라면 누구라도 인생이 즐거워지고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신 옆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 아닐까. 당신이 결국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도 당신의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거만함보다는 친숙함으로 다가갔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당신은 아마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인생이나 권력의 덧없음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당신에게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사실일 리 없다. 누군가의 희생을 가장 두려워하던 당신이 아들이 밉다는 이유로 그러진 않았을 테니.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사람과의 관계였다.
당신이 ‘난득이인심(難得而人心)’이라는 말을 남긴 건 그래서일까. 사람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가 아니라면 결코 사람의 마음이 얻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을 테니.
역사책과 수많은 자료, 글로만 당신을 상상해야 하는 게 아쉽다. 당신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힘 있게 안아줄 것이다. 당신이 결국 해낸 일 덕분에 약 500년 간, 당신의 나라가 지속됐다고, 당신은 훌륭했다고. 당신의 마음을 응원한다고.
그리고 내가 옆에 있었다면 선택지조차 없는 순간까지 당신을 내몰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 조선과 대한제국을 지나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 드림.
23년 3월 4일 토요일
* [오늘도, 사람!]은 뚜밍이가 진행하는 매일 에세이 연재 프로젝트로, 대체로 사람을 좋아하고 가끔 싫어했던 기억을 늘어놓습니다.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 읽는 데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