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내 돈 내놔! 야, 이 애미애비도 없는 좆같은 년아! 누가 맘대로 돈 빼가라고 했어?”
치킨 집에 주문 전화 한 번 못 걸던 내가 첫 정규직으로 입사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통신사 고객센터였다. 일 년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끝에 ‘어차피 서비스직을 할 거라면 차라리 전화가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비대면의 언어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이 순진한 생각은 결국 한 달 만에 후회로 돌아왔다.
고객센터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통신사 고객센터. 그 중에서도 일반상담실로 배정될 예정이었던 나는 입사 후 한 달 동안 교육기간을 거쳐야 했다. 정식 상담원으로 근무하기 위한 기본지식만을 익히는 최소한의 시간이 한 달이었다. 해외로밍, 미납, 기계적 결함 등을 제외한 모든 상담은 일반상담원이 진행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교육과 동시에 매일 시험을 치르고 일정 수준을 충족한 사람만이 정식 상담원이 될 수 있었다.
한 달의 교육 끝에 상담사로 근무하게 된 나와 동기들은 오전 8시까지 출근했다. 본격적인 상담 시작은 9시부터지만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상담사는 아무도 없다. 통신사 정책은 수시로 바뀌고 순식간에 새로운 것들이 생기거나 없어지기에 매일 숙지할 것들이 산더미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안내(오안내)를 하거나, 정해진 콜 수를 채우지 못하거나, 고객만족도 점수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나, 격주에 한 번씩 치르는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은 모두 실적에 반영된다. 개인 실적뿐만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팀의 실적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부담이 엄청났다.
첫날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응대하되 오안내를 하는 것만 우선 조심해달라는 실장님의 응원 아닌 응원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제부터 3분 카레마냥 3분마다 새로운 고객을 응대하며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사람이 되어야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쌓은 경험을 믿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고객센터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전화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짜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자기최면도 걸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내 자리의 전화가 고장 나서 울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시가 되자마자 고객센터 전체가 벨소리로 가득 찼다. 기대가 무색하게 내 자리의 전화도 아무 문제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 상담사로서의 첫 데뷔였다.
“감사합니다. 고객님의 상담을 도와드릴 상담사 뚜밍...”
“야 이 미친년아! 내 돈 쳐 먹고 잠이 왔니? 네가 뭔데 전화를 지금 받아! 내 돈 내놔! 도둑년이냐? 이 씨발년이 진짜!”
낯선 남자의 무자비한 비속어에 나는 기본적으로 진행해야 할 인사마저 마치지 못했다. (인사를 하지 않거나 상담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도 감점이다.) 자신의 돈을 가져갔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시작한 욕설은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욕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라 순식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5분 넘게 욕설을 퍼붓던 고객은 이번엔 내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욕을 했다.
상담 정책 상 상담사는 전화를 먼저 끊을 수가 없다. 참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면 실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이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새로운 상담사가 전화를 받는다 해도 이전 상담사에게 다시 인계된다. 이전 상담이 정상적으로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처음 받은 사람이 끝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욕설을 계속하는 고객의 경우,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종료할 수 있는 정책이 있긴 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욕설을 하시는 경우, 정상적인 상담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를 세 번 고지한 이후라면 상담사가 통화를 먼저 종료할 수 있다.
단, 문의사항 없이 순수하게 욕설만 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욕설 사이에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통신사 모델 연예인 마음에 안 들어!’ 등의 사소한 문의사항이 한 마디라도 언급된다면 절대 상담사가 통화를 먼저 끊을 수 없다.
내게 욕을 퍼부은 고객은 휴대폰 요금이 두 달째 미납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상황에서 다른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자동이체 통장에 돈을 넣어뒀는데, 원치 않는 휴대폰 요금으로 빠져나갔다며 당장 돈을 돌려놓으라고 전화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경우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비정상적인 요금을 청구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요금이 자동이체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납요금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을 돌려줄 수 없다. 미납부서에서도 같은 이유를 대면서 고객인계를 거부했다. 일반상담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말이다.
대안조차 제시할 수 없는 문제를 들고 온 고객에게 30분 넘게 욕을 들으며 사과밖에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 콜을 모니터링하던 실장님이 전화를 대신 넘겨받으면서 욕설로 가득했던 첫 상담전화가 끝이 났다.
상담사로서 처음 경험해본 비대면의 언어는 대면의 언어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잔인했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좀 더 정중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던 안일한 생각은 단번에 사라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죄책감 없이 내뱉는 날 것의 언어들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저 고객은 내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통신사 정책에 화가 난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전화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나는 이미 해결할 수 없는 통화로 시간을 많이 지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후 다른 상담은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근무가 끝난 후 실장님은 어쩔 수 없는 콜을 받은 것뿐이니 마음 쓰지 말라며 위로하셨다. 전화를 넘겨받은 실장님도 고객이 지쳐서 스스로 욕설을 그만두고 포기할 때까지 통화를 끊지 않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실장님께 내 콜을 해결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내일 뵙자고 씩씩하게 인사한 뒤 회사 문 밖을 나섰다.
최근 바깥은 매일 겨울과 봄을 오가는 중이었다. 지난주는 봄의 기운이 두드러져 따뜻했는데 오늘은 스산하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두고 온 목도리가 생각났다. 아쉬운 대로 얇은 겉옷의 단추를 전부 채우고 옷깃을 단단히 여몄지만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추위를 온전히 느끼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나는 목도리와 두꺼운 옷의 단단한 보호 없이는 이 계절을 헤쳐 나가기 어렵겠단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오늘 글에 표현된 통신사 상담정책은 몇 년 전 제가 근무했던 곳의 정책으로 현재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