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 언어(2)

[오늘도, 사람!]

by 별체



센터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내리면 커다란 불투명 유리문이 사무실을 막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준비해서 이 문 앞까지 오는 동안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이 문만 보면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여기까지 온 두 시간의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돌아갈 자신도 있었지만 명분이 없었던 나는 사원증을 센서에 대고 문을 열었다.


빼곡하게 놓여있는 책상들 사이로 이미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상담사들이 보였다. 인사하고 내 자리로 걸어가면서 문득 오래 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양파 실험을 떠올렸다.


좋은 말을 들으며 예쁨을 받은 양파는 쑥쑥 자라고, 나쁜 말을 들으며 미움을 받은 양파는 시들거나 잘 자라지 못했던 실험이었다. 말의 힘을 강조하며 바르고 좋은 말을 쓰라는 교훈을 남긴 그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유심히 봤던 건 나쁜 말을 들으며 자란 양파였다.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저만큼 큰 건 뭐지?’ 상대적으로 덜 자랐을 뿐이지 나쁜 말 속에서도 꿋꿋이 생명의 존엄을 드러내며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일부 악바리 양파들도 분명 있었다. 왠지 상담사들이 그 악바리 양파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강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날이다. 날씨는 흐린데 비는 안 오고 습도가 높아서 꿉꿉하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날씨와 기분의 상관관계에 대해 몸소 체험하는 사람이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그나마 덜 당황할 수 있다.


“농약 먹고 죽어 버릴 거야! 이렇게는 못 살아! 내가 죽어야지!”


헉, 교육시간에 말로만 듣던 농약 어머님이었다. 농약 어머님은 상담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농약 먹고 죽겠다는 전화를 꾸준히 주기적으로, 그것도 5년 넘게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번 받게 되면 1시간 통화는 기본이고, 고객님이라는 호칭도 싫어해서 어머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상담에 관계없는 말만 하지만 있는 힘껏 공감해드려야 그나마 빠른 시간 내에 전화를 종료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고객들은 연차가 있는 실장급 상담사의 콜로 배정이 되지만 농약 어머님은 이미 베테랑이다. 상담사 연결 전 ARS로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번호를 입력하지 않는다. 미확인 고객은 모든 상담사에게 랜덤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나 같은 초보 상담사가 받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말로만 들었던 농약 어머님은 오늘은 가스비가 많이 나왔다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통신사 상담과 관계없는 내용은 상담해드릴 수 없다는 안내를 한차례 했다. 이대로 두 번만 더 안내하면 전화를 먼저 종료할 수 있다.


“아니, 내가 전화를 못해서 가스비가 많이 나온 거라니까!!!!!”


아, 다시 원점이다. 베테랑은 이미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해본 수년간의 경험으로 상담사들이 전화를 끊을 수 없는 말들이 뭔지 안다. 전화를 못했다는 말은 통신사의 귀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끊어서는 안 된다. 상황파악을 한 뒤, 아무 문제가 없을 때만 전화를 끊을 수 있다. 물론 베테랑은 쉽게 얘기하지 않는다.


“근데, 아가씨. 어디서 일해? 무슨 센터? 아, 거기? 몇 실인데? 거기 실장 윤땡땡 실장이지? 두 달 전에 딸래미 돌잔치 한다 했는데 잘했대?”


농약 어머님이 유명한 이유는 단순히 자살 협박뿐만 아니라 그녀의 비상한 기억력 때문이다. 통화했던 모든 상담사들의 이름, 근무하는 센터, 했던 이야기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꼼꼼히 기억하기 때문에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멀쩡한 사람이 된다. 조금 전까지 소리치던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느슨해질 때쯤 다시 농약 이야기가 튀어 나온다. 이걸 몇 차례 반복하면 그녀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문제가 통신사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면서 이제 끊겠다고 한다. 그러면 통화가 종료된다.


나는 내 콜을 모니터링하던 실장님이 중간에 콜을 넘겨받으면서 비교적 짧은 시간 만에 농약 어머님과의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실장님은 농약 어머님이 얘기할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꾸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이야기 할 상대를 찾는 거니까 이해하라고 하셨다.


퇴근길, 나는 말할 곳이 고객센터뿐인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저기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서 더 이상 한마디도 말하고 싶지 않은 자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조금 홀가분해졌을까. 그렇게 뛰어난 말솜씨와 기억력을 가지고 말할 곳이 왜 여기뿐일까. 자살협박 없이 대화하면 안 되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명쾌해지는 건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마음 쓰는 것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그냥 오늘 하루는 이 사람 빼고는 별 일 없어서 다행이라고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웠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말하는 것, 먹는 것. 요즘 입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지치게만 한다. 눕기만 하면 눈물이 소리 없이 뚝뚝 떨어졌다. 울려고 애쓰거나 찡그리지도 않았는데, 아무 생각 안했는데도 베개를 적시는 날이 몇 주째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에서 본 악바리 양파는 되지 못할 모양이었다. 나쁜 말을 들으며 매일 시들해지던 양파를 이제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 오늘 글에 표현된 통신사 상담정책은 몇 년 전 제가 근무했던 곳의 정책으로 현재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전 06화비대면의 언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