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케이의 삽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빈도가 줄었다. 수많은 삽질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삽질을 해도 삽질처럼 보이지 않도록 수습하는 잔꾀도 부릴 줄 안다. 덕분에 조금 덜 멍청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삽질을 면치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꿈 속 세상이다.
꿈의 세계는 과학적으로도 풀어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에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잠을 푹 자지 못했기 때문에 헛꿈 꾸는 거라고 넘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도 꿈이 잘 맞는 사람들이 종종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마냥 허구의 세계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것 같다.
케이도 꿈이 잘 맞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니라서 어쩌다 꾸는 꿈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케이는 자신이 꾼 꿈이 의미가 있는 꿈이었는지 아닌지도 본능적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 의미가 있는 꿈은 해몽을 인터넷으로 꼭 검색해본다.
케이의 꿈은 주로 재물, 돈에 관련된 꿈이 많다. 부자가 되는 꿈으로 유명하다는 똥 꿈, 돼지 꿈, 불나는 꿈도 여러 차례 꿨다. 하지만 그런 꿈들을 종종 꾼다고 해서 케이가 부자가 된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이는 대부분의 꿈속에서 최선을 다해 삽질을 하기 때문이다.
케이는 가끔 꿈속에서 삽질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에는 열정적이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데 꿈 속 케이는 왜 그렇게 모든 일에 재빠르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이런 꿈을 꿨다. 비가 많이 내리던 밤, 어둡고 좁은 골목길에 있는 낡은 상가를 지나고 있었다. 주변이 전부 캄캄했는데 상가 한 구석에서 눈이 따가울 정도로 빛이 나오고 있었다. 겁이 많은 현실 속 케이는 이럴 때 무조건 지나가지만 꿈 속 케이는 용감하다. 빛을 향해 가보니 화장실 양변기가 보였다. 변기에는 똥이 가득 차 있다 못해 넘쳐흘러 바닥까지 온통 똥 천지였다.
처음 보는 상가 건물이고 제 집도 아니건만 케이는 갑자기 이 똥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치울만한 도구가 전혀 보이지 않자 심지어는 편의점을 찾아내 청소도구와 쓰레기봉투를 사온 후 있는 힘껏 똥을 치웠다. 꽉 막힌 변기도 전문가처럼 뚫어냈다. 똥을 모은 쓰레기봉투까지 완벽히 쓰레기장에 버리고 손도 소독약까지 써가면서 말끔하게 씻은 후 다시 변기 앞으로 돌아왔다. 분명 깨끗하게 치웠는데 변기 옆에 손바닥 크기의 똥 한 덩이가 보였다. 짜증내며 치우려는 순간 꿈에서 깼다.
그리고 현실 속 케이는 매주 사던 로또에서 처음으로 5만 원에 당첨됐다. 치우지 못한 그 한 덩이가 5만 원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케이는 꿈에서 쓸데없이 부지런을 떨며 똥을 다 치운 자신을 한동안 원망했다.
또 다른 날 꿨던 꿈은 알프스 산맥의 넓은 초원 같은 곳에 세워진 집이 배경이었다. 케이는 그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새끼 양을 30마리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문 밖을 나가보니 양들이 전부 덩치 큰 돼지로 바뀌어 있었다.
케이는 왜인지 이 돼지들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가족들이 보면 돼지들이 모두 위험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돼지들을 전부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너희들 여기 있으면 다 잡아 먹혀. 빨리 나가.’ 하고 울면서 꾸역꾸역 밀어냈다. 안 나가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돼지들마저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가면서 모조리 내보냈다. 돼지들이 전부 시야에서 사라지고 안심하던 찰나에 꿈에서 깼다.
며칠 뒤 케이는 자신이 받기로 정해져 있던 대학 성적 장학금이 다른 동기의 성적이의 신청으로 순위가 변경되어 취소됐다는 조교님의 말을 들었다. 당시 케이의 등록금은 약 300만 원이었다. 케이는 돼지 한 마리당 10만 원을 의미하던 게 아니었을까 하며 씁쓸히 웃었다.
꿈 속 케이는 현실 속 케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꿈을 꾸는 그 순간은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꿈속에서 꿈인 것을 인지한 적도 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이 나는 꿈을 꿨을 때는 단번에 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케이가 서 있는 빌딩 전체가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불 속에서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는 그 빌딩 고층 한가운데에서 ‘아, 이건 꿈이다. 이건 활활 불타게 놔둬야 한다.’를 다짐하며 서 있었다. 그 때 케이가 서 있던 층의 일부가 무너지면서 빌딩이 기울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어떤 꼬마가 울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사람들을 본 케이는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실 속 케이에게 볼 수 없었던 리더십이 온 몸에서 샘솟고 있었다.
우선 핸드폰을 들어 119에 현재 상황부터 신고했다. 그 다음에는 혼자 불 속을 뛰어다니며 소화기를 찾아냈다. 그것도 혼자서 찾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많이 찾아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소화기를 전부 나눠주며 뿌리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순순히 케이의 말을 따랐다.
이 때 케이의 손에는 이상하게도 부채가 있었다. 케이는 소화기를 뿌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웃기게도 불을 향해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 불이 더 번진다는 상식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도사 전우치처럼 춤추면서 부채질로 바람을 일으켰다.
더 웃긴 건 그 부채질에 불이 너무 쉽게 꺼지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불 끄면 안 된다고 소리 지르면서도 몸은 자꾸만 정반대로 움직였다. 거기에 119의 출동으로 화재 진압에 가속도가 붙었다. 분명 며칠은 진압하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사상자도 한 명 없이 모든 불이 꺼졌다.
사람들은 케이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지만 케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 채 꿈에서 깼다. 케이는 꿈에서 깨자마자 해몽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삽질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케이는 며칠 뒤 자신이 근무하던 곳이 폐업 절차를 밟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입이 적은 규모의 근무지가 아니었기에 폐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표가 아예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하겠다며 갑작스럽게 폐업 통보를 한 것이다. 결국 케이는 폐업과 동시에 실직하면서 한동안 백수로 살아야 했다.
꿈속에서는 매번 모든 것이 처음인 인생을 살기 때문에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 삽질을 반복했다는 것은 결국 꿈에서 깨어나야만 알 수 있었다. 꿈인 것을 안다 해도 행동을 제한할 수 없는 걸 보면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케이는 꿈에서만큼은 용감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자신에 대해 반쯤 체념했다. 꿈에서라도 멋진 자신의 모습을 봤으니 됐다고 말이다. 물론 여전히 응원까지는 못한다. 그런 것은 제발 현실에서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꿈 속 삽질은 왠지 케이의 인생에서 현실 속 삽질보다 더 타격이 큰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케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인셉션인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케이에게도 꿈을 설계하고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람을 조종하는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생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