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역사(1)

[오늘도, 사람!]

by 별체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갖고 싶다는 욕망이 지나치게 되면 소위 말하는 삽질의 역사가 시작된다. 나는 삽질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케이를 알고 있다. 케이의 삽질로 생긴 땅굴은 셀 수 없이 많고, 그 땅굴에 빠지는 사람도 케이밖에 없다. 케이는 오래전 삽질을 지금까지 떠올리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허공을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다.


22살의 케이는 가수 민경훈을 닮은 복학생 오빠를 쫓아다녔다. 고만고만한 또래들 사이에서 혼자 빛나던 잘생긴 얼굴만 보고 홀딱 빠져버렸다. 케이는 부끄러움도 없이 한 달 넘게 그 오빠 옆에만 찰싹 붙어서 온몸으로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다. 애석하게도 오빠는 케이를 부담스러워했고 말도 없이 다른 과 여자애랑 사귀어버렸다.


24살의 케이는 재수해서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생활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학벌이 아쉬웠다. 그래서 매년 지치지 않고 계속 수능 원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원서만 접수하고 시험을 보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케이는 의외로 눈앞에 놓인 현실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학과 행사나 업무가 수능과 겹치면 무조건 전자를 선택했다. 케이는 보지도 않을 수능 원서접수 비용으로만 3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25살의 케이는 교회 목사님 아들과 사귀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차였다. 심지어 그날은 케이의 생일이기도 했다. 가지도 않던 그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을 붙잡고 당신 아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애인한테 헤어지자 했다고, 예수가 그렇게 가르치는 거냐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었다. 심지어 그 난리를 치고도 걔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며 이후로 두 달 동안 뻔뻔하게 교회 예배에도 참석했다. 물론 케이에게 정이 다 떨어진 목사님 아들은 케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에도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바람나서 헤어진 적도 있었다. 이때 남자친구를 되찾겠다며 최대한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자신의 치질 수술 날 병문안을 오라며 대장항문외과 주소를 카톡으로 보내는 삽질을 했다. (케이는 수많은 삽질 중 이 일을 가장 후회한다.) 더 나이를 먹은 케이는 게임으로 코인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동안 게임 폐인으로 살았지만, 그 코인은 상장폐지가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삽질의 역사를 걸어온 케이는 여전히 헛된 일에 마음과 시간을 쓰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 케이는 확실히 효율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지혜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더 삽질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구멍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삽질로 파낸 흙들을 버리지 않고 전부 모아 다시 쌓거나 새롭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많이 실패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케이는 요즘 새로운 일을 한다. 평일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다.


짧고 좋은 글을 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벌써부터 노트북 빈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게 두렵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글을 쓰는 내내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절대 못할 것만 같은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선 케이는 이번에도 스스로를 괴롭힐 삽질을 시작했단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는 꾸준히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삽질의 시작을 응원해준 독자들 덕분에 얼떨결에 성공하고 싶다고, 인생 처음으로 빛나고 자랑스러운 삽질의 역사를 만들어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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