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무실 복합기 옆 비품 보관 서랍을 열어보니 A4 용지가 거의 떨어져 있었다.
학교에서도 A4용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학생들 학습지, 활동지, 가정통신문, 소식지, 수행평가지, 지필평가 원안지, 각종 연수자료, 학생별 생활기록부 검토본 및 제출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종이를 소비한다. 오죽하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재치 있게 바꾸어서 한 학생을 교육하기 위해 작은 숲 하나가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의미를 지니는 A4 용지를 문서실에서 가져와 교무실에 쟁여두며 교육이 지닌 무게를 생각했다.
2. 학교에서 꾸준히 소비되는 문구류들 뿐만이 아닌,
또 다른 장소에서 쟁여두는 소모품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위한 식재료들이나,
심심함을 달래주는 간식들,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위해 테니스 라켓에 감는 오버그립 등등.
비록 물건 자체는 금방 채워지고 또 금세 사라지지만,
그것들이 놓여 있던 공간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소소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3. 소모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학생들이 작성한 울림이 있는 글 등이 쓰여진 활동지.
감사의 마음이 담긴 편지나, 그림, 함께 찍은 사진 등등.
그곳은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을 넘어,
함께 한 사람들과의 시간과 추억들이 깃든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준다.
우리가 쟁여두는 곳에 정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정이 들기 시작한 곳이라서 쟁여두는 것인지—
아무튼 오늘 받은 마음도 지금, 이 자리에 쟁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