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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인다는 것

241115

by StarCluster

"이런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난 걸까-"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평화롭게 살고 싶은 나에게 닥쳐온, 억울하고 부당하며 어처구니없고 황망했던 그 일들. 그때 느꼈던 분노와 절망, 무력감. 그리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후회들. 그런 사건들을 되새기다 보면 문득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갈래인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모든 일은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그들의 태도 말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일화도 유명하다. 누군가 그의 다리를 꺾어 절름발이로 만들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거 봐요. 그러다가 내 다리 부서질 거라고 했잖아요."


처음에는 그들이 참 엉뚱하게 느껴졌다. 길을 가다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뺨을 맞아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어디까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극단적인 건 아닐까?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정말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찾아온다. 반드시, 기필코. 마치 세상 전체가 내게 등을 돌린 듯한 순간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쉽게 판단했던 일들, 내가 옳다고 믿으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순진하게 덤볐던 지난 날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


삶의 경험이 쌓이고 개인이 인지하는 외부 세계가 넓어질수록,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예고 없이 온다. 우리 곁에 머물고, 또 지나간다. 오기 전에는 결코 완벽히 준비할 수 없고, 머무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버텨야 하며, 지나간 후에는 어김없이 후회가 밀려오는 일들.


스토아학파는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이성에 근거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으며,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우리는 이러한 해야 할 일을 스스로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다. 그로써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제는 그들의 철학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후회와 체념으로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의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더 많은 성장을 가져왔음을 떠올려본다.


결국 개인의 존재 역량이란, 외적인 능력의 성장과 더불어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동시에 키워나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미 지나가버린, 이제는 손쓸 수 없는 기억들과 감정의 조각들이 여전히 가끔은 나를 찌르지만 말이다.


후회라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도, 앞으로 새롭게 다가올 많은 일들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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