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자도 괜찮아

지구별 탐사일지 12화

by Stardust

베네치아는 천년 공화국이었다.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에

비잔틴과 동방 이슬람 양식이 뒤섞인 채

물안개에 잠겨 있는 바다 도시.


가면을 쓰고 망토를 휘날리는 기사와

실크로드를 누비던 상인들이

휙 스쳐갈 것만 같은,

지구상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


친구들에게 우겼다.

이탈리아에 다시 안 올 거면,

베네치아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우리는 밀라노를 버리고

베네치아를 택했다.


산타 루치아 기차역에 내려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할 때,

Y는 건물들이 다 예쁜데,

너무 낡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왜 새 페인트를 칠하지 않는 걸까?”


정말이었다.

파사드는 색이 바랬고,

1층 문들엔 이끼가 자라 있었다.

어떤 집은 출입구 자체가 물에 잠겨,

계단만 운하 위로 삐져나왔다.


레트로 하잖아. 이게 베네치아 스타일이야.


베네치아는 북방 이민족 침입을 피해

물 위에 말뚝을 박고 세운 도시라고 말해주었더니

공대생 Y의 눈이 반짝였다.


J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였겠어.


우리의 숙소는

전형적인 베네치아 가정집이었다.

작고 예쁜 초록 정원이 있고,

우리 방 문 바로 건너편에

호호백발 주인집 할머니가

콩콩 짖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2층집.

침실 하나와 제법 넓은 거실이 있었다.

침실엔 고풍스러운 램프와

부라노 레이스 테이블보가 깔린 화장대가,

거실엔 부엌과 소파 겸 베드가 있었다.

침실 침대는 아담한 2인용.


"이방 너무 예쁘다. 아, 그런데 이 집 오래되어서 좀 무섭지 않아? “

"그러니까, 바닥도 삐걱거리고…“

"누가 거실에서 자지? 우리 한 명씩 돌아가면서 거실에서 자야 하나?"

겁 많은 친구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거실에서 잘게."

"아니, 너 혼자 어떻게?"

"나 혼자 자도 괜찮아. 방문 열어놓고 자. 그럼 되지."

"안돼. 거실에서 혼자 있으면 귀신 나올 거 같아."

"어우, 야. 그런 얘기하지 마!

진짜 무서워지잖아."

거실 벽에 걸린 세피아빛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이 집에 살았을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첫날밤.

그렇게 우리는 퀸 침대에 셋이 가로로 누워

함께 자게 되었다.

키 큰 J는 발치에,

발목이 침대 밖으로 불쑥 삐져나왔다.

은근 코 고는 Y는 머리맡에,

그리고 나는 중간에.


행여 내가 뒤척이다 J가 떨어지지 않을까,

갑자기 커지는 Y 코 소리에 깨었다가,

자는 둥 마는 둥...


결국,

다음 날 한낮에 숙소에 들러야 했다.

너무나 졸려서.


밤새 못 잤다는 J는 침실로 보내고

나는 거실 소파베드를 폈다.

쌩쌩한 Y가 거실 창을 열어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물냄새 때문에 굳게 닫아뒀던 창 바로 아래

곤돌라가 지나가는 수로가 있었다.

화려한 장식을 한 곤돌라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왔고,

간혹 세레나데를 불렀다.

목청 좋은 곤돌리에의 노랫소리가

좁은 골목에 부딪히며 감미로웠다.


이런 멋진 곳을 무섭다고 아우성쳤던

겁 많은 우리들.

철썩철썩 노 젓는 소리,

곤돌리에의 부드러운 세레나데.

나는 그 소리에 혼곤히 잠들었다.

달게, 낮잠을 잤다.

우리가 듣던 세레나데


그날 밤은 어떻게 했냐고?


결국 3박 내내,

셋이 꼭 부둥켜안고

한 침대에서 잤다.


우리답게 찐하게, 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