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13화
수년 전, 혼자 베네치아를 찾았을 때였다.
멀리 부라노 섬을 다녀오는 뱃머리에서
석양에 물드는 베네치아를 지켜봤다.
온통 오렌지 색으로 불타던 하늘이
보랏빛으로 부예지더니,
뱃길을 따라 촘촘히 박힌 나무 말뚝 끝에
매달린 램프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수평선을 집어삼키더니
순식간에 모든 게 어둑해졌다.
감청색 바다가
검게 일렁였다.
파도에 닳아
시간이 박힌 검은 나무 말뚝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열렸다.
낯선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만 같았다.
장면들이 떠올랐다.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설을 써 볼까,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날 밤 산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겼다.
아쿠아 알타(Aqua Alta)였다.
무릎까지 물이 찼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던
카페 드 플로리안 계단 앞까지
찰랑찰랑 물이 차올랐고,
광장에는 보행자를 위한 임시 보도인
'파세렐레(Passerelle)'가 놓였다.
사람들은 좁은 판자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녔다.
나도 그 행렬에 섞여
광장 주변을 걸었다.
거기,
산 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이
달과 함께 물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파세렐레 아래로 넘실대는 검은 물 위에
빛의 파편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도시를
표류하고 있는 듯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아마도, 그날이 SF의 시작이었다.
검푸른 어둠에 잠기던,
박모의 베네치아.
물이 사라진 바다 도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