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CQ CQ 여기는 토성 책방
치지직. 삐리릭.
“CQ CQ 여기는 토성책방,
calling CQ, standing by”
낡은 햄 장비였다.
어디선가 내 무선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송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내친김에 마이크를 붙잡고 이달의 책 소개를 했다. 내 마음속 어린 왕자를 향해,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텍쥐페리를 향해. 여기 서울 한복판 동네 책방에서 당신들을 만나고 싶다고.
건너편 허공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조차 내게 신호라도 보내온 것처럼 반가웠다.
다음날, 책방 앞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손님은 귀하고 특별했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손님이 문 앞에서 기다린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첫 손님은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손님과도 다르게 생겼다. 막대기처럼 깡마른 몸매, 밝은 색 곱슬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묘한 각도로 뻗쳐 있었다. 망토처럼 보이는 독특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첫 손님과 함께 문지방을 넘었다.
“어서 오세요. 토성책방입니다.”
나는 첫 손님에게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 주세요.”
손님은 책방이 신기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 어쩌죠? 어린 왕자 뉴에디션은 다 팔렸어요. 재입고에 하루는 걸릴 텐데,… 급하면 온라인 서점에서 사세요.”
“저는 여기서 사고 싶어요.”
소년 손님은 말똥말똥 나를 보았다. 그를 따라 들어온 고양이도 범상치 않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언의 압력을 느낀 나는 허둥지둥 말했다.
“아, 그러면 제가 최대한 빨리 구해 연락드릴게요. 전화번호를 남겨주세요.”
전화번호는 공개하기 싫은 지 소년은 대꾸조차 안 하는데 발밑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 털을 가진 동그란 얼굴의 새끼 고양이였다.
“아이, 귀여워. 학생이 키우는 거 에요?”
“아뇨. 우린 그냥 밖에서 접선해서 만나요.”
소년은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고양이와 접선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그런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이 소년과는 왠지 어울렸다.
나는 헛걸음한 손님에게 미안한 마음에 커피를 권했다.
“커피 한 잔 줄까요? 학생이라 괜찮을까?”
“카페인 금지령이에요. 하지만 향은 마실게요. 그래도 되죠, 누나?”
누나? 누나란 호칭에 벽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점검해 보았다. 책방 주인답게 지적이고 우아해 보이고 싶어 자른 단발머리가 어려 보이게 만든 걸까? 당황하는 나를 보며 소년의 미소가 크게 번졌다.
핸드 드립할 때 누가 보고 있으면 떨렸지만 갓 볶아진 커피 위로 방울방울 물을 부었다. 소년은 바로 앞에 앉아 긴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나를 지켜보았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여긴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거 같네요.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를 보면 한 해가 다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커피 향처럼 흘렀다.
“향이 좋네요. 부드러운 화산토에서 자라 신선한 바람과 구름의 맛이 느껴져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표현도 신선했다.
“고마워요. 오늘이 우리 토성책방에서 커피를 파는 첫날이거든요.”
칭찬에 신이 난 내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누나, 여긴 서점인데 왜 커피를 팔아요?”
한순간 나는 생각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손님에게 왜 책방에서 커피를 파냐는 질문을 받을 줄이야.
소년은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해말 간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고양이조차 빙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서점을 계속하고 싶어서요. 손님들이 찾기도 하고.”
내가 한 말은 궁색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책을 파는 서점에 향이 있는 드립 커피라. 뭐, 환상의 짝꿍이네요.”
말을 잘하네, 나는 소년을 찬찬히 보았다.
이마를 덮은 갈색 머리가 곱슬곱슬 거리는 데, 그 아래 눈매가 서늘하고 깊었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투명해서 볼 양옆에 보이는 옅은 주근깨가 아니었다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망토 같은 코트 앞섶 사이 왼쪽 가슴에 이름표가 보였다.
서준수.
이름이랑 잘 어울리네.
입시에 찌든 학생보다는 요정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학생이 이 시간에 여기 있지?
그때 스마트워치 알림이 깜빡였다. 전 직장 입사 동기, 이도현이었다.
“살아 있네?”
도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빨리 뛰면서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개업하고 석 달이 다 되어 갔는데 전 직장에서 그간 아무도 찾아오질 않아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아니 충격이었다. 승승장구는 아니어도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아무도 찾아오질 않았다.
그들의 무소식이 지난겨울을 더 춥게 했다.
“여길 오겠다고? 지구 반대편이라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뉴욕 법인에 주재원으로 있는 도현은 본사로 일주일 출장 예정이라고 했다. 아무리 먼 곳이라지만 내 소식을 들었을 텐데 문자 한 줄 없더니, 이제야 온다는데도 서운함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입사 동기였던 그와는 미묘하게 경쟁 관계였는데, 그래도 동기가 제일이다 싶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소년이 안 보였다.
후다닥 밖으로 나가보니 소년은 망토를 휘날리며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에 짝꿍 고양이가 꼬리를 바짝 올리고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연락처도 못 받았는데...
그래도 첫 손님이 왔다.
바람과 구름의 맛이라니, 기억해 둬야지.'
내일, <책방 손님을 우주를 건너왔다> 2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