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손님은 우주를 건너왔다

4화 책방은 우주를 기다린다.

by Stardust

여름이 시작되자 책방을 찾는 손님이 줄었다.

장마철이 끝났는데도 텅 빈 동네에 매미만 울어댔다.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깨물었다.


"아, 누구라도 이 지독한 정적을 깨 줬으면."


다들 어디론가 휴가를 떠났다.


언제부턴가 준수도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말시험인가 하며 기다렸다. 그가 읽었던 책들은 따로 보관해 두었다. 나타나면 주려고 챙겨놓은 신간 소설도 어느새 세 권이 넘었다.


한 달이 지났다. 슈뢰딩거도 함께 사라졌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도 슈뢰딩거를 찾았다.


"책방은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거 같아."


준수의 말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세 번 뿐이라더니, 생텍쥐페리를 만나고 자기 별로 돌아간 걸까?


준수의 안부가 궁금했다가, 서운했다가, 끝내는 걱정이 되었다.

서글서글한 미소도, 툭툭 던지는 질문도 좋았는데.

단골손님의 빈자리는 역시 허전했다.


창밖 토성 잔디는 푸르다 못해 짙은 녹색이었다. 풀들은 쑥쑥 자라는데, 한적한 책방에서 자리만 지키는 내 속은 타들어갔다. 하루하루 겨우 버텼다. 도서 구입비와 공과금을 내야 하는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25일.

예전엔 기쁜 월급날이었는데.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혹시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 건 아닌가?


카페인과 불안에 뒤엉켜 잠 못 드는 긴 여름밤이 이어졌다. 대신 책은 많이 읽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지.
잘하지 못하면, 열심히라도 해야 했다.


혹독했던 팔월의 마지막 날, 다니던 회사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 대표가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며 전 직원에게 한 권씩 나눠주라고 했단다. ‘미래 보고서’와 ‘빅 퀘스천’을 읽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곳은 여전하구나 싶으면서도,

값비싼 종이책에 제값을 치르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 주문 덕분에 석 달 치 운영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도현이 책방에 나타났다. 왜 이리 출장을 자주 오느냐고 묻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한바탕 즐거운 꿈 꿨다고 생각하고 돌아오래. 자리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대표에게서 특명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대표답다.

그들과 함께 일하던 시간이 문득 그리워졌다. 무엇보다, 일 잘하던 내가.

매출을 전직 회사에 기대고 있는 지금의 나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내려놓은 것도 바로 나였다. 미국법인 주재원 발령을 앞두고, 대표를 찾아간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원하는 일 아니었나요?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걸 놓아버리다니, 이런 사람이었어요?”


그땐 책방을 가업으로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은 숫자가 인격이 되는 회사에 지쳐 있었다.


도현은 미국법인 자리를 두고 현지 대리점을 밀어붙이며 매출을 만들었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그 세계에 계속 남아 있을 자신도. 하지만 대표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피자와 맥주를 시켜놓고, 대표의 매출 압박을 견딜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했다. 나는 평소처럼 미국 시장에 신상품을 진출시키는 아이디어들을 늘어놓았다.


한참을 듣던 그가 맥주잔이 아닌 물 잔을 비웠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내가…“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도현아.


“아니야.”


내가 말을 자르자 도현은 움칠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친애하는 내 동기가 지금,

마음을 열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애써 입을 열었다.


“만약에 나였다면,… 너처럼 잘 해내지 못했을 거야.”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를 보았다. 물기 어린 눈빛에 안도가, 고마움이 스쳤다.


“요즘 책방은 어때?”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 단골도 생겼고.”


나는 말을 골랐다.


“그거 알아? 토성 책방 안에는 수많은 우주가 있어. 책만 펼치면 훌쩍 다른 차원의 우주에 들어가는 거야.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고 항상 그곳에 있지만 언제나 여행 중이지.”


그의 표정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래, 당연하지. 누가 하는 일인데.”


그가 다시 나를 보았다.


“반짝거려. 책방 이야기를 하는 너에게서, 예전처럼 빛이 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여기까지 잘 버텨왔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좀 빛날 때가 있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준수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별빛을 품은 향기.

나는 혼자 쿡쿡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 아는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단골손님이 해 준 이야기가 생각났을 뿐이야.”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삶이 통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책방을 계속할 거란 걸.

그 시작이 무엇이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책방이었다.


이만한 확신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회사는 매출을 올려주는 누군가를 찾을 것이고, 도현이 너도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꿈을 꾸며 잘 살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소망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꿈이 있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버틸 힘을 가지고 때론 빛나기도 하는 거다.


“어떤 책방을 하고 싶은 거야?”

그가 물었다.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고, 재미난 모험이 가득한 책방.”

나는 즉답을 했다.


“멋진 책방처럼 들리는데. 언제 어디서나 응원할게. 책방 대표님.”


“나도 응원해. 미래의 북미총괄본부장님.”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했다.

누군가에게 응원받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


도현을 보내고 혼자 남았다.

문득 책방이 보고 싶었다. 나는 연인을 만나러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뜀박질했다. 길게 뻗은 토성을 따라 서 있는 가로등 사이로 하얀 토성이 그려진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자 풍경소리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밀려 나왔다.


책들이 한때 나무였던 시절 보았던 세상 냄새일까?

아니면 아버지 품에서 늘 나던 그 따스한 냄새였을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어슴푸레 빛 아래서 책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한 권을 꺼내 펼쳤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어느새 잠들었나 보다. 깨고 싶지 않은 아련함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진열창을 두드렸다.

까만 어둠 속에서도 준수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치 어제도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발아래 슈뢰딩거도 있었다.


"세상에. 슈뢰딩거도 왔네."


"책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요."


오랜 동지를 만난 것만 같았다.


준수는 벌점이 쌓여 외출 금지였다며,

그간 기숙사에 갇혀 지냈다고 했다.


"급식이 맛있어서 키만 자랐어요."


그가 웃었다.

기운차 보여 안심이 되었다.


그때, 슈뢰딩거가 갑자기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야옹 하고 울더니 애교를 부렸다. 그새 몰라보게 자랐다. 슈뢰딩거는 몇 번 쓰다듬어 주자 바로 잠이 들었다. 즐거운 꿈이라도 꾸는지 올라간 입꼬리가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부딪힐 용기가 필요해요. 우린 다른 무언가에 부딪히지 않는 한,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거든요.”


준수는 기숙사에서 세상 이치라도 깨달은 듯 말했다.

양자 물리학을 연구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다며, 곧 유학을 떠날 거라고 했다.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정말 이별인가?


"책방에만 있으면 안 심심해요?"


"그걸 알면 자주 오면 되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여기 앉아 있어도 어디든 갈 수 있어.

책만 펼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니까."


"매번 매력적인 주인공도 만나고요."


"그렇지. 가끔 멋진 손님도 찾아오고."


우리는 웃었다.


나는 준수를 위해 그간 챙겨 두었던 책들을 가져가 읽으라고 말했다. 참나무 서고 제일 높은 칸, 그가 읽은 책들과 읽을 책들로 빼곡했다.

준수는 어깨에 슈뢰딩거를 올려놓은 채 서고를 훑어보았다. 그는 계단 의자가 없어도 그곳에 쉽게 닿았다.

그새 많이 자랐구나.

나머지는 다음에 와서 읽겠다며, 한 권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린 왕자를 꺼냈다.

역시 너란 아이는.


“처음 왔을 때도, 이 책을 찾았지. 그때 어린 왕자는 왜 찾았어?”


“학교에서 SF 소설 속 과학기술을 정리하는 리포트를 내라고 해서요.”


그가 심상하게 말했다.

‘어린 왕자’를 읽고 B612 소행성의 경로를 예측하는 리포트를 내서 A를 받았다고 했다.

아! 어린 왕자도 SF 소설이지.


“이번에는 또 무슨 숙제가 있기에 그 책이야?”


“내겐 절박한 문제예요. 별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나는 웃었다.

여전히 이 아이답다.


우리는 가끔 웃음을 터뜨렸고, 들뜨기도 했고, 결연하기도 했다. 커피를 내렸다. 준수는 향을 마셨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려 했다.


새벽이 왔다. 책방 문을 나섰다. 문 앞에서 우리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선가 풀벌레가 울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결에 아는 향이 있었다.


행성에서 묻혀온 장미향이라면 이런 냄새일까?


내가 기침하자 준수가 초록색 머플러를 벗어 내 목에 둘러 주었다. 기분 좋은 온기를 느끼며 내가 물었다.


“그래서 그 소행성은 지금 어디쯤 있는데?”


“지금요? 토성 가까이 지나가고 있을 거예요.”


준수는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말했다.


우리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토성과 책방 간판을 번갈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달도 기운 빈 하늘에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며칠 뒤, 준수의 서고에서 낡은 은팔찌를 발견했다. 가끔 생각한다.


은팔찌는 생텍쥐페리의 것이었을까?

준수는 어린 왕자였을까?


그는 또 온다고 말했다.

다시 만나면, 그땐 꼭 물어봐야지.


***


토성 책방은 사계절을 버텼고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종일 찌무룩하던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쏟아지기 전, 나는 무선 햄으로 일주년 기념 책을 소개했다.

그렇다.

우주를 향한 나의 책 소개는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귀한 손님이 우주를 가로질러 여기 나의 작은 책방으로 찾아올지도 모르지 않은가.

붉은 의자는 푹신했고 나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딸랑.


풍경소리가 명랑하게 퍼지자 한 소녀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헌팅캡을 쓰고 리본넥타이를 맨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학교 연극무대에서 막 뛰어 내려온 것 같은 차림이었다. 소녀는 뒤에 누가 따라오는지 다시 문을 열고 소리쳤다.


“왓슨! 들어와.”


귀가 열린 나는 벌떡 일어났다.

왓슨이라고?


그때, 초롱초롱 눈망울이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놀란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녀가 찡긋 윙크했다.

나는 웃으며 소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또 다른 우주가 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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