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 자리에 앉던 아이
“준수?”
슈뢰딩거도 함께였다.
"오늘은 책방이 쉬는 날인데……."
"책방에서 왜 이리 좋은 향이 나죠?"
준수의 말솜씨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이미 책방 안에 들어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콘택트를 찾아요."
"칼 세이건의 콘택트? 아니면 테드 창의 컨텍트?"
"20세기 '콘택트’ 요."
준수가 웃었다.
발음 하나로 시대가 바뀐다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책을 받은 준수는 바로 빠져들었다. 슈뢰딩거는 어느새 책장 꼭대기로 올라갔다.
들이치는 한낮 햇살.
먼지가 햇살 속에서 반짝였다.
* * *
생각해 보면, 준수는 요즘 자주 왔다.
슈뢰딩거도 함께.
푸른빛 도는 회색 새끼 고양이는, 어느새 제법 우아한 성묘가 되어 있었다.
망토처럼 보였던 옷은 과학고 교복이었다.
어쩐지.
준수는 내가 추천한 책들을 빠르게 읽어냈다. 가끔 품절된 고전도 찾았다. 나는 중고 서점을 뒤져 구해주었다.
"누나,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열려요.”
새로운 우주.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순간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준수는 얼굴이 밝아지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 다중우주, 양자 기술… 물리학 강의를 들은 후 확인했다.
준수는, 그저 준수라는 사실을.
적어도, 그때까지는.
***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우리는 함께 책방을 나섰다.
토성 길을 따라 걸었다. 꽃잎이 흩날렸다.
또각또각.
내 구두 소리가 듣기 좋았다.
“책이 꽤 두꺼운데 벌써 다 읽었어요?”
“전 책이 두꺼울수록 좋아요.”
준수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외계 신호를 따라 우주선을 타고 간 주인공이 어디에 도착할지 궁금했거든요.”
“도착해 보니 바닷가였죠? 상상 밖이라 기억해요.”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콘택트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 바닷가에서 만난 외계인은 주인공이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났었다. 문득 나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이 아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구나.’
비쳐 드는 노을빛에 준수의 곱슬머리가 핑크빛이 도는 금발처럼 반짝였다.
며칠 전 찾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마르세유 해저에서 발견된 그의 이름이 새겨진 은팔찌. 바다에 가라앉은 비행기 파편. 하지만 그 무엇도 그의 죽음을 확증하지 못했다.
‘어린 왕자가 아니고 준수라서 다행이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스텔라, 책방 주인이 꿈이었어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한창 미래가 알고 싶을 나이여서 남의 꿈도 궁금한가?
“글쎄, 꿈이라고 말하긴... 소중한 누군가가 원했던 일이었지만, 이젠 나의 꿈이 되어버렸죠.”
그는 싱긋 웃으면서 내 말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 지금 나를 뭐라고 불렀죠?"
스텔라.
사막에서 정한 그 이름.
준수는 대답 없이 씩 웃었다.
그 미소. 어디서 봤더라?
바람이 불어왔다.
슈뢰딩거가 휙 하고 무언가를 쫓아 달렸다.
“어디 가니?”
* * *
귀가 먹먹했다.
엔진 소리.
눈을 뜨자 우리는 활주로에 서 있었다.
그건 꿈처럼 시작됐고, 꿈치고는 너무 선명했다. 거센 바람에 나의 단발머리는 제멋대로 춤추었다.
우리 앞에 항공병이 출격을 준비하는 비행기 바퀴에 댄 받침나무를 빼고 있었다.
쌍발 엔진 P-35.
프로펠러가 천둥처럼 울렸다.
조종석에 붉은 스카프를 맨 사나이.
생텍쥐페리였다.
준수가 그를 부르며 비행기를 쫓아갔다.
“아저씨! 아저씨!”
준수가 달려갔다.
나도 뛰었다.
항공병도 우리를 뒤쫓아 따라왔다. 하지만 비행기는 이미 떠올랐다.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비행기가 크게 선회했다. 인사하듯. 그리고 쪽빛 하늘로 사라졌다.
활주로 밖으로 쫓겨난 우리는 격납고 옆 풀밭에 뒹굴고 있는 나무상자에 걸터앉았다. 그 사이 두 대의 비행정이 또 날아올랐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그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하이힐을 신고 달렸더니 발이 아팠다.
반나절이 지났다. 내리쬐는 땡볕에 어깨와 등이 따가웠다. 저만치 지중해 바다 물결이 햇빛을 받아 은백색으로 반짝거렸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비행기가 돌아올 조짐은 없었다. 윙윙대는 바람 소리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희미하게 남았다.
문득 우리는 이 여행을 세 번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말.
어디나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꿈에서조차도. 이제 한 번 남은 건가?
별안간 그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 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드릴 뿐이었다.
그가 울음을 멈추었을 때 바다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이 식으며 시원했다.
“그래서 장미는 다시 만났어?”
구두를 반쯤만 걸친 채 내가 물었다.
항상 궁금했었다.
어린 왕자는 별에 돌아가
그 특별한 장미를 만났는지,
죽음을 감수할 만큼 소중했는지,
그래서 행복했는지.
그는 두고 온 장미가 떠올랐는지 반짝이는 먼바다를 응시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도착해 보니 내 별은 온통 장미꽃밭으로 변해 있었어."
"나의 장미는 어디선가 날아온 친구를 만났고, 내가 없는 동안 가족을 이룬 거야."
"와, 예뻤겠다."
장미꽃 만발한 작은 별이 눈에 그려졌다.
"맞아. 꽃들은 저마다 빛깔을 달리하며 향기를 뿜어냈어."
그가 말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장미가 태어났지."
쓸쓸한 미소.
"꽃들에 물을 주고, 양과 산책하고, 노을을 봤어."
그가 말을 멈췄다.
"지구에서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이었어. 하지만..."
목소리가 작아졌다.
"장미들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어. 나의 장미조차도.”
동화가 현실을 만난 것이다. 동그란 별 위, 끝없이 펼쳐지는 장미꽃밭 너머로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네 목소리를 들은 거야.”
"그래? 내 이야기는 재미있었어?"
"응."
그가 웃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지. 이야기를 들은 그날은 장미들도 내게 관심을 보여줬어. 딱 하루였지만."
그가 멈췄다.
"그때 결심했지. 지구별로 와야겠다고.”
내가 보낸 무선통신을 듣고 온 거라면, 나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신호를 보낸 사람이었다.
그것도 외계인, 아니 책 속 주인공과 교신한 최초의 인간!
놀랍고 신비한 일을 겪어서였을까.
나는 그 말을, 순순히 믿고 싶어졌다.
***
어느 초여름,
준수는 창고 사무실에서 재고 목록 정리하는 나를 찾았다.
“누나,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와,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
그는 문가에서 서서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손님, 여기는 통제구역입니다.”
불쑥 들어오려는 그에게 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햄? 저도 해봐도 돼요?”
그가 구석에 놓인 낡은 햄 장비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과학 천재는 모르는 게 없군.
“만져 봐도 돼요? 그냥 한 번 해봐도 돼요?”
준수는 어느새 낡은 무전기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전원을 켜고 주파수를 찾자 디스플레이에 숫자가 나타났다. 마침 책방에 손님도 없었고 준수는 언제 배웠는지 콜 사인도 보낼 줄 알았다.
“이렇게 하는 맞죠? CQ CQ."
끼룩끼룩. 찌직. 찌직.
낡은 무전기에서 갑자기 귀청이 찢어질 듯 굉음이 들렸다. 우리 둘 다 펄쩍 뛸 만큼 놀랐다. 기계에서 다급하고 어지러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생텍쥐페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 여행을 하는 걸까?
생텍쥐페리는 구름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비행정이 포탄을 맞았다고 했다.
“CQ CQ 아저씨? 들려요? 저예요.”
준수가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우리를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프로펠러 소리가 멈췄다. 건너편에서 바람 소리만 들렸다.
준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칙칙, 찌직.
잡음 사이로 느닷없이 무전기가 터졌다. 또렷한 소리가 들렸다. 역시 그는 빼어난 조종사였다.
“오, 세상에나. 너구나. 별에는 무사히 돌아간 거지?”
"아저씨? 나 지금 지구별이야."
"오! 반갑네, 친구. 하지만 지금은 바쁘다네."
"걱정 마, 아저씨. 금방 구해줄게."
울먹이는 준수를 대신해 내가 말했다.
"좌표를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구해드릴게요."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고맙지만 친구들, 나는 이 하늘에서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찾는 중이야."
"나랑 같이 찾아.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아니, 그 문은 내가 찾아야 해. 그래야 진정한 내 세상이 될 수 있어."
"진정한 내 세상?"
"그래. 너도 너만의 세상을 찾아야 해. 약속할 수 있지?"
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속할게.”
얼마 후 교신은 끊겼다. 하지만 그의 독백만은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낡은 스피커의 떨림이라기보다, 시공간을 뚫고 전해진 누군가의 간절한 진동에 가까웠다. 하얀 구름 평원 위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찬란한 오렌지빛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우주의 지평선이야. 드디어 도착했어.”
그는 이제 다른 우주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잠시 후, 쌍발 엔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순간 책방 창 너머, 파란 하늘에 환한 빛 한 줄기가 춤추듯 너울댔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이제 지지직, 잡음만 흘렀고 준수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가신 거죠?”
준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텍쥐페리는 그가 원하던 곳으로 갔다.
준수는 언제 자기 별로 돌아갈까?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창고는 고요했다. 먼지 속에서 오래된 시간들이 숨 쉬고 있었다. 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누나, 여기 뭐예요?"
준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창고 구석, 아버지가 쓰던 낡은 책상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 벽에 붙은 오래된 책장이 있었다. 평소에는 책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책장인데... 이상하네. 왜 벽을 보고 있지?"
다가가 보니 책장은 정말로 벽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책등이 우리가 아닌 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준수가 양쪽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돌렸다. 삐걱, 오래된 나무가 저항하듯 소리를 냈다.
책장이 우리를 향하는 순간, 빛바랜 동화책들이 빼곡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벽이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등 뒤로 지켜온 가장 소중한 요새였을 것이다.
'피터팬', '빨강머리 앤', '비밀의 화원', '톰 소여의 모험', '보물섬'...
"우와…"
준수가 탄성을 질렀다.
숨이 막혔다.
무릎에 앉아 읽던 책들.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예지는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토요일 오후마다 이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읽어주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어? 누나, 이거 봐요."
준수가 발끝으로 서서 책장 맨 위에 손을 뻗었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그가 조심스럽게 꺼낸 건 노랗게 변색된 책이었다.
"이거 진짜 옛날 책이다. "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표지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속표지에 적힌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1943... 뉴욕?"
내가 알기로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어떻게 이 책이 여기에?
먼지 냄새가 아니라 낯선 바다의 짠내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서늘한 종이의 촉감. 이 책은 바다를 건너왔다.
"누나 할머니도 어린 왕자를 읽었나 봐요."
준수가 신기한 듯 말했다.
표지를 쓰다듬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자 색 바랜 첫 페이지에 연필로 쓴 작은 글씨가 보였다.
"별에서 온 왕자님께, 언젠가 다시 만나요."
"그럼 누나 할머니도 생텍쥐페리 아저씨한테 무선 보냈을까요?”
준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방에서,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고, 우주를 꿈꾸던 사람들. 증조할머니, 할머니, 아버지. 그 긴 시간의 끝에 내가 서 있었다.
"와, 이것 좀 봐요. 여기 이름 쓰여 있어요."
준수가 다른 책들도 하나씩 펼쳐보았다.
"누나, 여기도요."
"여기도."
"이것도."
모든 책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예지의 책'
'정예지의 책'
'정예지의 책'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아버지의 글씨체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혹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언젠가 딸에게 읽어줄 책들을 하나씩 모으고 계셨던 것이다.
목이 메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
그 빛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준수를 보았다.
갈색 곱슬머리에 빛이 부서졌다.
긴 속눈썹, 집중한 표정,
입가에 머문 잔잔한 미소.
순간 내 기억 속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토요일 오후.
바로 이렇게 앉아서
책을 읽어주시던 모습.
"예지야, 이 주인공은 정말 용감하지? 너도 이렇게 멋진 모험을 할 거야."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그래서였구나.
책방을 이어가려는 건, 단지 아버지의 유산이나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은 내가 처음 우주를 만난 장소였다. 아버지와 함께 수백 개의 세상을 여행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준수라는 새로운 여행자가 이곳에서 또 다른 우주를 열고 있었다.
"누나, 울어요?”
준수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아니.”
나는 눈가를 훔치며 웃었다.
"먼지 때문에."
"먼지가 이렇게 많긴 하네요.”
준수가 손으로 책들을 톡톡 두드렸다. 햇살 속에서 먼지가 반짝이며 춤췄다.
"이 책들도 팔아요?"
"아니.”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 책이야."
처음으로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 책방은, 아버지와 나의, 그리고 준수 같은 손님들의, 그리고 앞으로 올 누군가의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었다.
할머니가 꿈꿨던, 아버지가 지켰던, 그리고 이제 내가 이어가야 할 작은 우주.
준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미소 속에서 어린 왕자가 보였다. 아니, 아버지가 보였다. 아니, 언젠가의 나 자신이 보였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오래된 책들과 먼지와 햇살 속에 머물렀다. 밖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여름이었다.
<책방 손님은 우주를 건너왔다>는 4화, 완결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