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우리 확률은 내 인생 최고치였다.
[Match: 78.7%]
J와는 석 달을 만났다. 인생 목표도, 취미도 잘 맞았다. 미래를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J가 근사한 이태리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예약하기도 어려운 핫플 식당이었다. 매칭률 70% 이상이면 레스토랑 예약도 우선권이 주어졌다. 고매칭 커플은 어디서든 특별 대우를 받았다.
J가 뭔가 준비하는 눈치였다. 나도 미장원까지 다녀오며 특별한 날처럼 차려입었다.
“… 그녀가 운명의 27명 중 하나였어.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몰랐어. “
27.
처음 매칭 앱을 켰을 때 떴던 숫자였다.
[당신의 완벽한 궁합자: 27명]
J는 설레는 표정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운명을 믿었다. 그 27명 중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먼저 갈게. 이해하지?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
J가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너도 운명을 만나길 바라. 진심이야. “
“… 축하해. “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요리는 나오지 않았다. J는 서둘러 일어났고,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긁었다.
나는 혼자 남았다. 한껏 미소 지으며,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커플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로. 여기저기서 보라색과 분홍색 빛이 아롱거렸다. 매칭률 80% 이상인 커플들의 손목에서 나오는 아우라였다. 새로 산 실크 원피스가 갑자기 너무 꽉 끼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늘 말했다.
“넌 특별해. 125년 만에 최고의 사주를 타고났거든.”
전국에 1만 2천 명이 같은 사주로 태어났다. 정부가 출생률을 높이겠다며 사주과학과 유전자 데이터를 결합한 결과였다. 행운이 숫자로 증명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그 순간부터 경쟁은 시작됐다. 입시도, 취업도, 연애도 매칭률이 우선이었다.
그때 시그니처 메뉴인 트러플 크림 파스타가 나왔다. 적어도 음식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와인 리스트를 펼쳤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옆 테이블의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대화를 다 들은 건가
민망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실례지만… 이 파스타엔, 레드보단 풀바디 샤르도네가 더 잘 어울려요."
그 남자였다.
동정하려는 건가.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한 사람 같지도 않았다.
"와인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나는 조금 까칠하게 말했다.
"제가 요리사거든요."
남자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를 제대로 쳐다봤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에 요리사답지 않게 하얗고 깔끔한 손이었다.
“웨딩홀에서 일하죠. 하지만, 가끔은 남이 해주는 음식이 좋더라고요.”
“... 그럼 매칭률 높은 사람들 많이 보시겠네요.”
“네. 그런데 결혼식에서 정말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은... 아, 아니에요."
말을 고르는 모습은 신중해 보였다. 목에 두른 머플러가 따뜻해 보였다. 내 폰 케이스와 같은 색이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손목 대봐도 될까요?”
그가 웃으며 손목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목을 가져다 댔다. 이건 유치원 때부터 익숙해진 동작이었다. 친구도, 선생님도, 심지어 반 배정까지 매칭률로 정해지는 세상이었으니까.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숫자가 떴다.
12%.
마주한 얼굴에 잠깐 긴장이 스쳤다.
“보통 30% 이상은 나오는데....”
“그러니까요. 최고로 나쁘군요.”
우리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낮은 매칭률에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안 알려줄래요.”
“왜요?”
“매칭률 12%인 사람끼리 이름은 알아서 뭐해요?”
나의 말에 그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눈빛이 느슨해지며 공기가 한순간 가벼워졌다. 이상했다. 78% 일 때는 늘 미래를 이야기했는데, 12% 일 때는 현재가 더 선명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근처 바로 갔다. 그는 술 대신 차를 주문했다.
“주말엔 뭐해요?"
"짧은 영상을 찍어요. 감정이 끝나는 순간 같은 거요."
"감정이 끝나는 순간?"
"웃고 나서 잠깐 멈칫하는 표정, 손을 뗀 직후의 공기. 그런 것들이요."
그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걸 찍어요?”
“그 순간이, 묘하게 오래 남아서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다.
“저는 마케터예요. 데이터로 사람들을 읽는 일이죠.”
“재밌겠네요.”
“실은 재미없어요. 다 뻔해서.”
“그럼 지금도 뻔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뻔하지 않았다.
우리는 문을 닫을 때까지 마주 앉아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 영화, 책 이야기를 했다. 어색한 침묵도 있었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워 좋았다.
"번트시에나."
"네?"
"폰 케이스요. 그 색이 번트시에나예요."
나는 폰을 내려다봤다. 붉은 갈색이 은은하게 빛났다.
"아, 내가 좋아하는 색이지만 이름이 그렇게 멋질 줄 몰랐네요.”
"인류가 사용한 첫 번째 색이래요."
그는 폰을 열어 사진을 보여줬다. 깊은 동굴 벽에 붉은 손자국들이 가득했다.
"3만 년 전, 어느 화가가 깊은 동굴에 들어가 이걸 그렸어요. 그리고 손자국을 시그니처처럼 찍어놨죠."
손자국들이 겹쳐져 있었다. 외롭다고, 여기 있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언젠가 거기 가서 찍고 싶어요. 그 안에 흐르는 시간 같은 걸 담아 보고 싶어요."
나는 벽화를 오래 들여다봤다. 깊은 동굴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갔을 그 화가를. 그리고 나의 빈 손목도 떠올렸다.
“늦은 시간인데 집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아니요. 혼자 가는 게 좋아요.”
“연락처는...”
“안 주고받을래요.”
나는 말하면서도 놀랐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그가 왜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가 웃었다.
우리는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졌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나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밤 산책을 했다. 도시의 밤은, 3만 년 전 동굴처럼 어둡고 깊었다.
J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27명 중 하나, 운명의 여자를 만나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그 여자에게 J보다 더 높은 매칭률을 가진 남자가 나타난다면, J도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같은 시각에 태어난 1만 2천 명 중, 나만큼 오늘 밤을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때, 번트시에나 색 머플러가 보였다. 저 앞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걸어오는 게 아니라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 왜 여기 있어요?"
"저도 이쪽 방향이라서요."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마치 3만 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처럼, 그가 내 옆에 섰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달아오른 내 뺨을 식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환히 웃었다.
그날 봄밤엔, 12%도 충분했다.
새해 첫 이야기로 '1만 2천 분의 1'을 전합니다. 연휴 동안 여러분만의 좌표를 발견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