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행복의 유통기한
타닥타닥 참나무가 타들어가는 벽난로 앞에서 제이와 준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
제이는 코를 찡긋 들어 흘러내리는 안경을 멈춰 세웠다. 라벤더와 갓 볶은 커피가 향기롭다.
준과 퍼즐과 함께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모서리가 아메바처럼 생긴 퍼즐조각을 맞춘 뒤로 일 분이 넘었다.
“찾았다!”
눈이 시려올 때까지 그림판을 뚫어지게 보던 엄마가 드디어 퍼즐조각을 내려놓는다.
회전목마에 달린 붉은 지붕의 정중앙이었다. 잘 익은 루비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붉은색.
제이가 맞추자마자 준이 탄성을 지른다.
“와, 여기였어.”
준은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조각을 제이가 방금 맞춘 퍼즐 옆자리에 쏙 끼워 넣으며 말한다.
“내 자리는 엄마 바로 옆자리.”
제이가 준의 앙증맞은 손을 잡는다.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갓 구운 빵처럼 말랑하고 보드랍다.
아, 귀여운 내 아들.
준이 속도를 내면서 천막의 또 다른 귀퉁이를 채우는 동안 제이는 건조해진 두 눈을 천천히 깜박여 본다.
그때 괘종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댕! 댕! 댕!
“이런, 밤이 깊었네. 준, 우리 자러갈 시간이야.”
“엄마, 우리 오늘 밤 다 맞추고 자면 안돼요?”
회전목마 지붕의 마지막 빈칸까지 채운 준이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며 조른다. 놀이공원이 그려진 오천 피스 직소퍼즐은 빈 부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맞출 수 있는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들은 다 맞추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퍼즐은 시간이 많이 걸릴 터였다.
망설이는 제이의 시야에 시커먼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준의 얼굴을 집어 삼켰다. 놀란 제이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자, 준이 다정하게 묻는다.
“엄마, 뭐가 있어요?”
이번에는 귀여운 준 얼굴 대신에 허름한 기계가 보였다. 제이는 안경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벼본다. 통증만 더 커진다. 준이 걱정스레 묻는다.
“눈이 아파요?”
“아니야, 퍼즐을 너무 오래 했나봐.”
그러자 준이 말한다.
“오늘은 그만할까요? 오늘 다해버리면 내일 할 게 없어지잖아요.”
방금 전 까지 조르던 아이였다. 엄마를 배려할 줄 아는 기특한 아이.
“대신 퍼즐을 다 맞추면 놀이공원에 가요.”
“놀이공원?”
“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고 싶어요.”
아이다웠다. 퍼즐 속 놀이공원만 아는 준에게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그래, 퍼즐을 다 맞추면,…그땐 놀이공원에 놀러가자.”
준은 펄쩍 펄쩍 뛰며 좋아했다. 제이의 가슴 속, 노랑나비가 파르르 날갯짓을 한다.
“약속했어요. 우리 엄마, 최고!”
준이 손 하트까지 날리자 제이가 받아 심장에 올려놓고 쓰러지는 척 한다. 카페트가 구름처럼 부드럽게 제이를 받아준다. 준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둘은 죽이 잘 맞는 모자다.
행복했다. 이제 나비들이 여기저기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전화 왔어요.”
제이는 멈칫하지만 받지 않는다. 벨 소리가 한참 울리다 멈춘다. 다시 울리지 않는다. 제이는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낮에 공놀이를 하다가 깨진 거울이 시야에 들어온다. 옆에 구르던 노란 공도 그대로. 준과 보낸 '행복한 하루'는 고단하고 대가가 따른다.
그날 밤, 제이는 준옆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준다. 준이 매일 밤 읽어달라고 조르는 책이다. 그림책 활자가 제법 큰 데도 흐릿하게 겹쳐 보인다. 두통까지 올 거 같다. 제이는 자꾸만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비비자, 준이 직접 책을 읽는 척 한다. 외운 내용이었다.
“…가족을 다시 만난 소년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제이가 준의 머리를 쓰다듬자, 정수리에서 올라오는 비누향이 상쾌하다. 책을 덮고 준이 속삭인다.
“엄마, 나도 모험을 떠나고 싶어요.”
제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우리 준은 하고 싶은 게 많네."
“제일 해보고 싶은 건 놀이공원으로 모험을 떠나는 거예요.”
“그럼 혼자 가려고?”
“엄마랑 같이 가야죠. 엄마도 나랑 같이 모험을 떠날 거죠?”
제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제이는 준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해 본다.
‘놀이공원이라…하긴 대단한 모험이 될 거야.’
제이의 목을 감싸 안았던 준의 손이 스르르 풀린다. 파랑색 자동차가 그려진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자 준은 깊은 잠에 빠진다. 천사 같은 모습이다. 제이는 준의 차가운 이마에 입을 맞추고, 탁자 위의 전등을 끈다. 가만히 방문을 닫고 나온다.
방문 너머로 준의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완벽한 하루였다.
거실로 나온 제이는 부재중 통화를 확인한다. 전남편이다. 뒤이어 도착한 문자 한 통. 겹친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진다. 제이는 안경을 벗고 창밖의 검은 밤을 바라본다. 거리의 노란 불빛들이 형체 없이 뭉개져 보였다. 눈두덩이를 짓누르는 무지근한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제이는 결심한다. 내일은 정말 센터에 가봐야겠다고.
전날처럼 찬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집 안에 갇힌 모자는 공놀이를 한다. 그리고 거울이 깨진다. 다르지만 비슷한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되자 준이 퍼즐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싸늘한 기운을 느낀 제이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퍼즐 상자를 쏟아 펼쳐 놓는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춘다.
그때 제이의 시야가 다시 흐릿해지면서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비벼도 나아지지 않는다. 곧 두통도 찾아올 것이다.
창밖에 비가 개고 햇살이 비쳐든다. 제이가 말한다.
“안경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 안과에 다녀와야겠어.”
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준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지금요?”
놀란 목소리다.
“그래, 지금.”
제이가 단호하게 말하며 외투를 입자 준도 벌떡 일어난다.
“저도 같이 갈래요.”
“집 밖은 위험해요. 퍼즐 맞추면서 기다려요.”
현관까지 따라나선 준이 외투 끝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앉자, 제이는 무릎을 꿇어 준과 눈을 맞추며 말한다.
“우리 준, 퍼즐 맞추기 좋아하잖아. 잠깐만 혼자 놀아요. 엄마가 금방 돌아올게.”
이 말을 남긴 제이는 무거운 오크 현관문을 열고 눈부신 햇빛 속으로 걸어 나간다.
바깥세상은 한창 봄날이다. 잔잔한 호숫가 둘레 숲에서는 새 소리가 들리고 내리쬐는 오후 햇볕에 등이 따뜻했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라일락 꽃 사이로 색색이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그 평화로운 풍경에서 제이는 묘한 불안을 느낀다.
그때, 그녀 앞에 하얀 나비가 나타난다. 손을 내밀자, 나비가 피하지 않고 곧장 날아든다.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나비의 눈 속에 카메라 렌즈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제이가 뒤로 물러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다. 반사적으로 팔을 휘젓는 순간, 안경이 허공으로 튀었다.
그순간-
풍경이 바뀌었다.
찰나였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달콤한 라일락 향기가 순식간에 코를 찌르는 매캐한 탄내와 썩은 비린내로 뒤바뀌었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던 호수는 검은 기름막이 둥둥 떠다니는 물웅덩이로 변해 있었고, 나비가 앉았던 자리엔 녹슨 철근이 뼈대처럼 툭 불거져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축축하고 서늘한 현실의 공기가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폐부 깊숙이 밀려드는 공기는 필터 없는 먼지 구덩이를 들이마시는 듯 텁텁했다. 방금까지 그녀를 감싸던 온기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바람에 실려 온 모래 먼지의 깔깔함에 제이는 발작하듯 기침을 터트렸다. 곳곳에 사람들이 안경이나 헬멧을 쓴 채 널브러져 있다. 제이의 발치에는 초라한 남자가 헬멧을 쓴 채 주저앉아 있었고, 그의 곁에 안경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안경을 잡으려 뻗던 손이 내려다보였다. 손톱 사이에 끼는 끈적한 기름때.
놀란 제이는 안경을 얼른 움켜쥔다. 표면에 흠집이 나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녀가 안경을 다시 쓰자 꽃길이 되살아났지만, 나무들은 서로 엉켜 있었다. 나비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제이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현실을 보는 것이 더 두려웠다. 잠시 후, 그녀가 설정해둔 경계를 벗어나자 0과 1이 중첩된 숫자 행렬이 공기 중에 흘러내렸다. 그렇다 해도, 제이는 놀라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조심스레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제이의 머리 위로 곤충이나 새 모양을 한 드론들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 <홈 스위트 홈> 2화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