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럽, 류블랴나

by Stardust

슬로베니아(sLOVEnia)는 국명에 LOVE가 들어가는 유일한 국가이고,

수도 류블랴나(Ljubljana)는 ‘사랑스러운’ 이란 어원을 가진 도시다.

사랑의 나라에서

사랑의 도시가 가장 사랑하는 건,

날개 달린 드래곤, 용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이아손과 아르고 호 영웅들이 멀리 황금 양털을 가지고 다뉴브강을 거쳐 류블랴니차 강에서 거대한 용을 만나 물리쳤다는 전설의 용.

류블랴나의 상징인 용은 도시 문장에서도 주인공이다.

류블랴나 성, 용의 다리, 기념품 가게… 도시 곳곳에서 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존재감은 이름도 드래곤 브릿지(Zmajski Most, Dragon Bridge)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날개를 한껏 치켜올린 4마리의 용들이 용맹스러운 자태로 다리 양 옆을 떡하니 지키고 있다.



전 세계 모든 문화권과 나라에는 용에 관한 전설과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여의주를 문 동양의 용은 날개가 없이도 구불구불 하늘에 오를 수 있다. 서양의 용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데, 네 개의 긴 다리도 가지고 있다. 헤리포터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용이 나오지만 나는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타고 다니는 용이 제일 멋지다. 나라마다 날개와 다리는 조금씩 달라도 얼굴 생김새는 비슷하다. 상상의 동물인데 어떻게 모든 나라가 용을 비슷하게 그렸을까?


아마도 본 거겠지.

모두가 보았으니 비슷하게 그렸을 거고.

추측건대 가장 닮은 건 하늘을 날던 공룡, 익룡이 아니었을까.

지구 곳곳에서 익룡의 비행을 목격했던 인류의 공통된 기억, 혹은 땅 밑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뼈를 마주한 이들의 경외감이 '용'이라는 전설을 빚어냈을 것이다.


생경한 이국 땅 다리 위에서 날개를 치켜든 용을 보며, 뜬금없게도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용'을 떠올렸다.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던 2000년에 태어난, 아름답고도 독특한 나의 아기 용.


한때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은 전설이 되었다. 그 전설을 닮아선지, 태어날 때 몇 가닥 보드라운 금발 머리로 나를 반하게 만든 나의 용도 어느덧 훌쩍 커버렸다.

이제는 제 세상을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녀석. 언젠가 큰 날개짓을 하며 멀리 높이 날아가겠지…갑자기 그 얼굴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 류블랴나성은 푸니쿨라를 타고 올랐다. 율리아 알프스가 병풍처럼 호위하는 류블랴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유럽의 녹색 심장이라 불릴 만큼, 눈 닿는 사방에 초록과 산이 대부분이다.

인구 28만의 아담한 수도지만,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소국이다. 이 초록빛 평화 속에 숨겨진 부유함의 비결은 무엇일까?

2025년에서야 우리나라 대사관이 처음 개설되었을 만큼 우리에겐 여전히 베일에 싸인 나라. 그 미지의 매력이 류블랴나의 골목마다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알프스에서 건너오는 밤바람이 제법 쌀쌀해질 무렵,

피란에서 떠나오기 전 맛있게 먹었던 체바치치와 굴라시 식당이 류블랴나에도 있어 찾아갔다. 지하 동굴 같은 힙한 분위기의 식당, 이름은 '사라예보 84'.


1984년은 사라예보에서 동유럽 첫 번째 동계 올림픽이 열린 해다. 그 시절,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한 나라였던, 이제는 보스니아가 된 옛 연방의 향수를 추억하는 걸까?


보스니아 국민 음식이지만 이곳에서도 사랑받는 체바치치를 배불리 먹다 보니, 문득 돌로미티의 '코르티나 담페초'가 떠올랐다.

일주일 후면 2026년 동계 올림픽이 열릴 그곳. 사라예보의 84년이 류블랴나의 골목에 이토록 맛있는 흔적으로 남은 것처럼,

머지않아 누군가에게는 '담페초 26'도 숨이 멎을 듯한(breathtaking) 청춘의 기록이 되겠지.


사랑의 도시에 밤이 깊어간다. 맥주 한 잔에 신화와 추억을 곁들인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첫날 우리는 조금 일찍 잠이 들었다. 내일은 대망의 블레드 호수에 가야 했다. 그곳에선 또 어떤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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