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울

나의 서울 (3) 강남역

by 계단실

2019년 여름, 지구온난화로 달궈진 강남대로 아스팔트는 유난히 뜨거웠다. 강남역 근처 모처에서 인턴 일을 할 기회가 있던 나는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출근해야 했다. 내가 일을 하던 회사 건물 옆 상가에는 적당한 가격으로 점심을 때울 수 있는 국밥집이 있었는데, 강남대로 뒷골목 상가들이 재개발과 신분당선 연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들도 끼니를 때우고자 국밥집을 찾는 일이 많았다.


점심 시간 회사원, 학생, 건설현장 노동자들까지 모이는 바쁜 식당에서 혼자 두 사람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는 사람을 환영할 사장님은 없다. 그렇다고 함께 점심을 먹을 마땅한 동료 또한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온 손님들과 합석을 해야 했는데, 어느 날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과 마주보고 밥을 먹었다.


그가 입은 작업복이 어색한 만큼 내가 입은 정장이 어색했는지, 그는 먼저 나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스물 하나였고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스물 하나에 벌써 인턴을 하는게 대단하다, 아니다 형님이 더 대단하시다 같은 말을 조금 주고받다가 대화는 끊겼고, 나는 머쓱한 국밥을 빠르게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계산대 앞에 있던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나른한 하늘을 구경하던 내게 어느새 국밥을 비우고 나온 형이 불을 빌리려고 했다. 나는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렇게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다. 버거운 어색함을 나는 날씨가 좋다는 혼잣말로 환기시키려고 했으나, 그 말을 들은 형은 내게 “밥그릇에 얼굴을 묻고 살다 보면 하늘을 볼 시간이 없다”라며 전봇대에 담배를 비벼 끄고 터덜터덜 그가 일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공사장 형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곳에 있었다. 인턴 일을 하며 번 돈으로 강남역 포차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쐈을 때, 진탕 취해서 노래방에 갔을 때, 새벽 세시 잠실로 가는 360번 막차 버스를 타러 달려갈 때 마주친 모든 사람이 공사장 형의 무기력함을 닮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날 내가 만난 무기력함은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일 지도 모른다. 과도기의 경제는 누구에게도 넉넉한 밥그릇이 되지 못하고, 몇 년을 일해도 터전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이 도시는 꼭 사람들이 낑겨 앉는 국밥집과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도, 하늘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무기력함은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강남역은 이런 무기력함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이다. 낮에는 학원들과 사무실에서 계속해서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밤이 되면 자극적인 맛의 괴식을 파는 식당과 유행을 타는 분위기의 포차, 노래방과 클럽에서 또다른 무언가에 끌려다닌다. 길어지는 겨울처럼 무기력한 일상, 더워지는 열대야처럼 소모적이고 자극적인 유행, 그 사이 가을과 봄처럼 멸종해가는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정들. 이렇게 보면 어쩌면 지구 온난화는 그저 기후와 기온에 대한 것이 아닌, 우리 마음에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더워진 여름과 추워진 겨울이 괜찮지 않듯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무기력함 역시 괜찮지 않다. 이젠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 때다. 정말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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