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울

나의 서울 (2) 동서울터미널

by 계단실

강남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 건대 클럽에서 놀다가 번진 화장을 하고 아마 구리나 남양주로 향할 여대생도, 휴가나온 군인도, 그린벨트에 땅이 묶여버린 체 형광 베스트 입은 아저씨도.


이곳에 관련된 첫 기억은 아마 강남이 대한민국의 부촌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때의 일일 것이다. 도곡동에 팰리스라는 이름의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던 해, 동생을 가진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동서울 터미널을 찾았다. 버스 시간이 30분 정도 남은 시간에 터미널 식당에서 라면을 먹는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제법 상식적인 일정이지만, 그때부터 조급한 성격의 나는 버스가 당장 우리 가족을 두고 안동으로 떠나버릴까봐 어머니를 재촉했고, 결국 우리는 버스 대합실에서 내 감시 하에 꼼짝없이 20분 정도를 기다렸다. 아마 라면 한그릇 더 삶아먹고 양치까지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 이후에도 나는 몇번이고 안동과 서울을 오가느라 동서을 터미널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울에 대한 나의 두번째 기억은 10여년 뒤 판교가 다음 강남이라는 말을 들으며 분당이 떠오를 때의 일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가평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대치동의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주말마다 학교와 집을 오가던 귀가버스를 동서울에서 탈 수 있었다. 무분별하던 시절, 강변역에 흩뿌려진 귀청소방이니 안마방이니 하는 전단지들과 함께 인쇄된 노골적인 사진들에 눈알을 굴리던 것도, 동서울터미널 4층 남자화장실이 동성애자들의 집합소라는 도시괴담에 낄낄대던 것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어느 대선 후보의 선거운동을 구경하러 가거나, 봄을 간지럽고 어지럽게 하던 여고 축제에 놀러갔다가 피곤한 몸과 약간의 후회를 안고 다시 학교로 향하던 것도 동서울 터미널에서의 기억들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동서울 터미널은 나의 삶에 순간마다 함께했다. 동탄의 신도시에서 삶의 고점이 물린 사람들이 가정을 차려 갈 때,경기도 한 역전앞 모텔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잤다. 사건보다는 사고에 가까운 섹스 후에, 상대방은 신기할 정도로 모텔과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놀라울 정도로 익숙하게 피임약을 처방해주던 나이많은 산부인과 의사에게서 피임약을 처방받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처음이라는 성취감보다 큰 불안감에 벌벌 떨리는 손으로 터미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술을 깨려던 아침이 있었다.


이제 막 서울로 휴가를 나오거나 동서울 터미널에서 다시 부대로 향하는 군인의 마음은 이제 남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쯤 미영이네 포장마차에서 우동이나 어묵탕 따위를 시켜놓고 소주 한병을 비우다가 이천이니 송탄이니, 예전부터 군부대가 있던 동네들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하나 둘 보인다.


이미 책임은 더이상 멋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멋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 강남으로, 판교로, 동탄으로 떠났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다뤄지는 지역들은 보통 고속철이 지나지 않는 지역들이거나, 신세계의 가호 아래 멀끔해진 강남 고속터미널에서는 길을 내주지 않는 지역들이다. 그렇다고 더 멀리 가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니고, 대전과 제천은 그저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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