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by 계단실

새벽에 라디오 DJ가 느닷없이 울었다.

음악 방송을 하다 말고,

요즘은 사연들이 모두 뻔하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 라디오 DJ는 필히 우리 집 전봇대 앞에 와본 것이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이는 곳, 하지만 사연은 뻔한.


오늘도 전봇대 앞에 쪼그려 앉은 나는 생각한다.

신년맞이 워크 오브 셰임(Walk of Shame)을 하는 저 여자의 마스카라는 또 왜 번졌을까.

혹시 사연이 뻔해서 우는 라디오 DJ일까

—에이 설마.

크리스마스날 아침 내 단골 전봇대를 미스테리한 분비물로 조져 놓던 그 여자와 같은 사람일까.


똑같은 치장과 똑같은 코에는 똑같은 사연

아마 빚낸 시계를 차고 렌탈 벤츠를 탄 남자를 사랑했을테고 자취방에서는 나비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겠지. 자취방의 고양이는 노숙자의 강아지 같은 존재, 흔한 비극의 미쟝센 같은 상징적 장치. 고양이는 그동안 네 명 정도의 집사를 만났고, 고양이는 집사들이 하나같이 반복하는 실수의 공명(共鳴, Resonance)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겠지.

실수들 중에서는 동서도 있었을 것이고.


그 여자는 조만간 머리를 자르고 출가하거나 페미니즘에 귀의했다가 일주일만에 전봇대를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은색 네모난 안경을 끼고 말보로 담배를 문 체로. 예술가가 되어 있겠지, 음악이나 사진을 하는. 고양이도 새로 분양받을 것이다. 나비는 운이 나쁜 이름이니까 이번에는 보리로 이름을 짓고. 그러다가 다음 크리스마스 즘이면 삐쩍 마른 은발의 타투이스트가 여자를 전봇대로 내몰 것이다.

나는 또 자가격리를 하고.


전봇대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독심술사가 되기 좋은 시대.

수집 가치가 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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