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여섯 살이 된 우리 해온이는 입이 짧은 아이다. 식용이 적어 식사 때가 되어 밥을 차려주어도 첫술을 뜨는 데 한참이 걸리고, 씹어 삼키는 속도도 느리다. 모유만 먹던 시절 한쪽 젖을 먹고도 배가 부른 지 다른 쪽 젖을 바로 빨아주지 않아 양쪽 젖을 다 비우지 못한 적이 많다. 젖양이 많지 않은 나인데도 말이다. 참 많이 애를 태웠다.
이유식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나의 밥 먹이기 분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유식을 장난감 삼아 좀 잘 먹는 듯하더니, 중기부터는 밥 잘 안 먹는 아이가 되었다. 밥 먹이다 지치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인터넷에 "밥 잘 안 먹는 아이"를 검색해 블로그와 카페를 전전했다. 아이가 자고 나면 '아이의 식생활', '아이 주도 이유식', 그 외에도 온갖 유아 요리책과 육아서적들을 들춰가며 '어떻게 하면 잘 먹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 식사 전에 간식을 주지 말아라."
" 밥을 30분 이상 먹이지 말아라."
" 밥을 안 먹어도 다음 식사 때까지 간식을 주지 않으면 다음 식사는 잘 먹게 돼있다."
"굶기면 잘 먹게 돼있다."
그 지침대로 나도 제 끼니를 잘 먹지 않으면 간식을 주지 않았다. 해온이는 매 끼니를 잘 먹지 않으니 자연히 간식은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해온이는 간식을 안 먹도, 한 끼를 굶어도 다음 끼니를 잘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식사 전에 간식을 찾을 법도 한데 '이건 밥 먹고 먹자'라고 얘기하면, 간식을 내려놓고 잘 기다렸다. 두 끼를 제대로 못 먹었으니 다음 끼니는 잘 먹겠지 하는 기대로 간식도 안 주고 굶겨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끼니도 잘 안 먹으면 결국 실망과 걱정이 뒤섞여 짜증이 폭발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해온이를 굶기고 혼내를 반복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자주 다니는 소아과에서 영유아 검진을 하고 난 뒤 선생님께 "이런 아이는 조금씩 자주 먹여서라도 채워줘야 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노하우를 따르느라 정작 우리 아이를 놓치고 있었다. 우리 해온이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식욕이 적은 아이니까 조금씩이더라도 자주 먹여야 했고, 식사 때 놓친 영양을 간식으로 채워줘야 했다. 그런데 그놈의 '밥을 안 먹으면 간식을 주지 마라. 굶겨라'라는 말에 메여버렸다. "간식"은 식사 때 온전히 필요한 영양을 채우지 못한 해온이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젖먹이일 때에도 '모유가 좋다'는 것에 메여 완모를 고집하느라,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원칙을 놓쳤던 것 같다. 이제는 해온이의 컨디션을 봐 가며 필요할 땐 간식을 챙겨준다.
너무 많은 정보들 때문에, 정작 내 아이를 보지 못하고 블로그와 책을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내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장 잘 아는 엄마인 나의 지혜를 따르기보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더 따랐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여러 문제들 앞에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고 네이버 녹색 창에 "... 하는 아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지 않는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나를 믿고, 아이를 더 잘 관찰하고 생각한다.
20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