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밖에 모르던 사람이 사회로 나가는 법

사회복지사에서 예비 불교학박사가 되기까지의 여정

by 별하

절밖에 모르던 사람이 사회로 나가는 법

목이 많은 사람은 종교하고 연관이 된다더니,

어릴 때부터 오지랖과

초등학교 때 가게 된 봉사활동이 재밌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나의 전공은 사회복지였다.

하지만, 졸업 후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찾지도 못하고 들어가게 되면

오래도록 하지 못한 채 그만두는 게 일쑤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못 배운 것도 한인데,

나쁜 길로 안 빠지고 잘 커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부모님의 말에 너무 눈물이 났다.

나이는 들어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은 내가 오래도록 다닌

종교를 선택하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집 근처가 교회였고,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교회에서

지원받으며, 교회를 다니기도 해 봤지만,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 따라간 곳은 절이었다.

절도 내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매일 갔다.

1년에 꼭 가야 할 날들도 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설, 추석, 부처님 오신 날, 백중, 동지, 연말 등이다.
어린 시절에는 절에도 사람이 많았다.

친구, 동생, 언니, 오빠가 함께 있어서

늘 즐겁고 재밌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방법도 배웠다.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띄엄띄엄 갔다.

그러다, 몸이 너무 아팠다. 누구는
“위에 조상에 신 줄이 있네~”
“엄마가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받아야 한다.”
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실제로 백중 날 퇴공해서 내려온 음식을 가려 먹어야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남들 다 먹으니 먹었다가

믿지 못할 신이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막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땀을 안 흘리는 데 땀도 흘리는 것이었다.

스님이 지나가시다가 다시 부르면서
“으흠.”
기침 소리를 내시더니 있다 잠시 보자 하셨다.
스님과 헤어지고 나니 갑자기 오한이 들면서

몸이 마비가 오는 것 같아 얼른 조용히 탑으로 가서 탑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딱 도는데

몸이 씻은 듯이 개운해져서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손에서부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염불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가 2013년, 10년 전의 일이다.

염불기도를 해서 그런지 목이 갑자기 아파 왔다.

병원에 가니 목을 많이 사용하시냐고

기도한다 했더니 묵음기도를 하란다.

안 그러면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기도를 해야 하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

피를 토하면서도 기도를 했고,

스트렙실과 약을 먹어가면서 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목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계속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을 만큼의

목 상태가 돌아왔다.

그 이후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불교대학을 졸업했지만,

다시 불교대학 공부를 하였다. 2015년도다.

공부를 하는 게 너무 즐겁고 좋았지만,

가정형편은 도와주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신용불량자,

내 집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절에 스님이 되어야 하나 생각하며

절의 도움으로 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내 몸에 이상 신호,

자궁도 문제, 발도 문제,

평생을 아픈 채로 쩔뚝거리며 살아야 한단다.

수술하게 되면 발목의 신경이 아예 죽을 수 있으니 수술은 권유하지 않는단다.

그러고 일자목, 거북목, 목디스크, 척추측만증까지. 30대에 계속 병이 찾아왔다.

아파도 포기하지 않고 학업도,

기도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원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그러고 절 밖에 모르던 절 바보가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한발 한발 사회로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