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적기 위한 처절한 노력
글이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
대답을 정하셨나요? 말이 먼저인 것이 정답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답이 뻔한 질문 같지만 사실 이 질문에 아이들은 말이 먼저야 글이 먼저야 하면서 핏대를 세우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말과 글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말을 글로 쓰고 글을 입으로 말하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겪지 않기에 누가 먼저 생겼을까도 사실 고민의 대상은 아니기도 하지요. 이렇게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는 말과 글의 관계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한반도에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가던 오래전 어느 날을 상상해 보고자 합니다. 아마 몇몇 아이들은 모여서 물고기를 잡고 있을 수도 있고 어른들은 농사를 짓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왕은 따로 없으며 그저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르신을 모시며 그렇게 모여 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즉,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무리를 지어 사는 환경은 의사소통이 되어야지만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록은 벽화로만 그저 상상해 볼 수 있을 뿐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요. 이 문자의 빈자리를 우리 선조들은 한자로 채우려 했습니다.
신라 진흥왕 55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을 살펴보도록 하죠. 절터에서 발견된 납작하고 긴 모양의 돌에는 74자의 한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늘에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모름지기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즉, 시·상서·예기·전(左傳 혹은 春秋傳의 어느 하나일 것으로 짐작됨.)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
임신서기석을 일부를 한자의 의미로만 풀어낸다면 이렇게 됩니다.
壬申年六月十六日
임신년 6월 16일
二人幷誓記
두 사람 함께 맹세하다 기록하다
天前誓
하늘 앞 맹세하다
今自三年以後
오늘 3년 이후
忠道執持
충성 길 잡다 가지다
過失无誓
과실(잘못) 없다 맹세하다
若此事失
만약 이 일 잃다
天大罪得誓
하늘 크다 죄 얻다 맹세하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으시겠죠?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이제 이 말들 사이사이에 몇 글자를 추가해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시죠.
壬申年六月十六日
임신년 6월 16일에
二人幷誓記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며 기록한다.
天前誓
하늘의 앞에 맹세한다
今自三年以後
오늘로부터 3년 이후에
忠道執持
충성의 길을 잡아 가지며
過失无誓
과실(잘못)이 없을 것을 맹세하다
若此事失
만약 이 일을 잃는다면
天大罪得誓
하늘의 큰 죄를 얻을 것임을 맹세하다.
이제는 훨씬 매끄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인근 나라의 문자인 한자를 빌려 우리가 평소 말하듯 적어 내려간 것이죠. 말과 말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에, 이, 을 같은 말들과 –며, -면 과 같은 말들은 표기할 도리가 없었기에 생략되었지만 그래도 의미를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를 활용한 우리말 표기 방법을 임신서기석의 이름에서 따와 서기체 표기라고 한답니다.
처음 영어를 배우고 나도 영어로 말할 줄 안다며 어머니에게 사과는 apple이라고 하는 거야라며 자랑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대견해하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낯간지러운 이야기이자 따뜻한 추억입니다. 이러한 서기체 표기방식은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도 있었습니다. ‘I school go’ 틀린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지요. 서기체 표기가 이제 낯설게 느껴지지 않죠?
서기체 표기 이후에도 말을 글로 적는 방법은 꾸준히 발전하게 되었고 서기체 표기의 아쉬운 점을 보완한 이두와 향찰이라는 표기방법이 등장하게 되었지요.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어린 시절 열심히도 불렀던 노래입니다. 한없이 긴 가사에는 참으로 많은 위인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 원효대사가 있습니다. 해골물로 유명하신 분이시죠. 의상과 함께 유학길에 오른 어느 날 밤, 해골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할 수 없다며 고국 신라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여기에서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서 법을 설하는 부처를 말하는데 ‘아미타’는 무한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였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무량수불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듯한 말이지요. 바로 무량수불(무한한 수명을 가진 부처), 무량광불(무한한 광명을 가진 부처)이라는 말이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신라시대 광덕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향가인 원왕생가에서 달에게 서방정토로 가고 싶다는 자신의 소원을 무량수전에 전해 달라는 부탁의 문구가 등장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이야기에 얽혀있는 원효대사, 원효대사의 아들이 바로 설총입니다. 설총 이전의 시대에도 이두가 사용되었지만 정립이 되어있지는 않았지요. 바로 설총이 이두를 체계화한 인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두는 무엇일까요? 앞서 살펴본 임신서기석의 표기방법이 바로 이두의 초기 형태입니다. 즉 이두 역시 우리말 어순에 따라 적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두가 점차 발전해 감에 따라 임신서기석에서 나타내지 못했던 표현들이 가능하게 되었죠.
갈항사라는 절의 석탑을 세운 기록 중에 일부입니다.
‘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 立在之’
이 내용을 앞서 살펴본 대로 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 立在之
두탑천보십칠년무술 서다
그렇다면 밑줄이 있는 것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中은 가운데라는 의미로 ‘에’로, 在는 있다는 의미로 과거임을, 之는 종결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포함한다는 ‘두 탑은 천보십칠 년 무술에 세웠다’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되겠지요. 바로 임신서기석에서 해내지 못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오늘날 과거의 사건을 표현할 때 가령 ‘먹었다, 잡았다’처럼 –었-이나 –았-을 사용하는데 조선시대 문헌을 찾아보면 –아 있다, -어 있다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있다라는 표현이 오늘날 과거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겠죠.
이제까지 알아본 이두식 표현은 그래도 우리의 말을 완벽하게 적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말을 적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고 향찰을 통해 큰 성과를 보이게 됩니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의 말을 적어나가는 체계성을 보여주며 오늘날 남아있는 향가에서 그 모습을 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성여왕 2년(888) 신라의 노래 즉, 향가를 모아 삼대목이라는 책을 엮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향찰이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자는 음과 뜻으로 나누어져 있죠. 가령 置은 두다(~에 물건을 두다)라는 뜻과 ‘치’라는 음으로 나눌 수 있고, 古는 예전이라는 뜻과 ‘고’라는 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의 말을 적는 방법이 바로 향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는지 알기 전에 우리말의 형태소에 대해 우선 알아야 합니다. 형태소라는 것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말의 단위라고 정의합니다. ‘집에 가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시죠. 형태소 즉,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말은 무엇이 보이시나요? 우선 집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분명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니 의미가 잘 확인될 것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가다’라는 말에서도 우리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동의 의미가 ‘가-’라는 말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지 않나요? 가니?, 가구나, 가자처럼 다른 말들을 생각해 보면 ‘가-’라는 말속에 이미 이동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집’이나 ‘가-’처럼 조금만 생각하면 확실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들을 우리는 형태소 중에서도 실질 형태소라고 분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집’, ‘가-’를 제외하고 남는 ‘에’와 ‘-다’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라는 말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장소를 드러낸다는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다’라는 말에서 끝났음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죠. 이처럼 분명한 의미는 아니지만 문장 속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형식 형태소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확인해 보도록 하죠.
善化公主主隱
他 密只 嫁良 置古
薯童房乙
夜矣 卯乙 抱遣 去如
-서동요
서동요는 가장 오래된 향가로 알려진 노래입니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것으로 배경 설화가 전해지는데요, 그 내용은 선화공주가 남 몰래 서동(맛동)과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이지요.
置 古
두다 치 옛 고
서동요의 이 부분은 ‘두고’로 번역이 됩니다. 앞 글자에서는 한자의 뜻을 빌려오고 뒤 글자에서는 한자의 음을 빌려온 것이지요. 앞서 살펴본 ‘가다’의 ‘가-’처럼 ‘두다’의 ‘두-’역시 실질 형태소로 볼 수 있고, ‘가다’의 ‘-다’처럼 ‘두고’의 ‘-고’는 형식 형태소로 볼 수 있겠죠. 즉, 향찰은 우리말의 실질 형태소는 한자의 뜻을 빌려 쓰고, 형식 형태소는 한자의 음을 빌려 쓰는 표기방법인 것입니다.
하지만 향가에 대한 해석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다시 말해 향찰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것이겠지요. 정확하게 단정 짓기 어렵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의 말을 적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고민을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향찰 표기에 도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내용이 너무 어렵다고요? 조금만 더 力 乙 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