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편

쉽게 말해 '참을 수 없는 고립의 두려움'

by 나윤

제목이 멋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끝까지 읽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요? 왜 존재가 가볍다고 했으며 또 그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긍정의 의미였을까요 아니면 부정의 의미였을까요?


저자에게 위기가 왔을 거예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일을 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극 중 토마시가 자신의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일 같은 것 말이죠. 통념상 낳은 아이를 성년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이 맞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저자는 토마시에게 자신을 투영해 그 갈등을 풀어갑니다.


통념에 따르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소설에 등장하는 키치는 사람들이 통념에 따르기 쉽게 만듭니다. ‘아이는 사랑스럽다.’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 ‘결혼은 신성한 것이다.’ 같은 프레임은 정서적 획일화를 만드는데 이는 사회의 통념이 됩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죠. 그래서 그 가치를 따르고 살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낍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나는 노인은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야. 노인은 배려의 대상이지 공경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야.’ 라 생각한다고 했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은 타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존재감에 상처를 받거나 심할 경우 삶의 의미를 잃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정답은 없겠죠. 통념을 따르던 그렇지 않던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서 미련을 가질 테니까요. 그리고 살다 보면 사회 일반의 가치를 모두 지키며 살기 힘든 순간들이 오는 것 같습니다. 사회 속에서 홀로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은 순간들이 오는 것이죠. 이 소설은 그때 느껴지는 불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어떤 선택이 잘 된 것인지 알지 못하죠. 다른 선택지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택이 한 번 뿐이라는 점, 그런 인생도 한 번뿐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삶을 가볍다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가볍냐 하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것이죠.


제목의 의미를 이해했지만 사실 그런 삶이 무거운 건지 가벼운 건지 해석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멋있기는 하지만 가슴에 와닫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고립의 두려움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고립보다 두려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니까. 소속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소속에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있는데 종교는 정신적 소속감의 최후의 보루이고 회사나 학교, 가족은 물리적 소속감의 그것이죠. 이것들을 하나씩 상실했을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동시에 불안해집니다.


누구에게나 토마시 처럼 가볍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마 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전 그 답을 다음에 읽을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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