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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재 Jun 09. 2024

[소장영화관] 봄날은 간다

은수라는 올가미!


2001년에 개봉한 영화를 22년 만에 다시 봤어요. 그런데 영화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주인공이 벚꽃 핀 길에서 헤어질 때 은수(이영애 분)가 상우(유지태 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22년 전 극장에 앉아있던 내 모습이 보일 정도로 또렷하게 그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벚꽃길 장면이 이 영화의 엔딩이 아니었어요. 은수와 헤어진  상우는 혼자 녹음 기계를 들고 갈대밭으로 나가 두 팔을 벌립니다. 그리고 갈대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지긋하게 웃으면 영화가 끝납니다. '이 기계적인 몸짓과 표정은 뭐지?' 하다가 반나절 지나서 문득 그 의미를 알게 됐는데 혼자 웃음이 터졌습니다. 상우는 왜 웃었을까요?

소리를 수집하는 남자 주인공 상우(유지태)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치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고모와 같이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PD인 여자 주인공 은수(이영애)를 만납니다. 은수는 한 번 이혼한 경력이 있죠. 서로 교감하던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은수는 다가온 상우를 밀어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합니다. 그런데 은수는   가까워진 거리를 또다시 벌려 냅니다. 다가가기와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상우는 더 이상 은수를  받아들이지 않죠.



이 두 사람 왜 이러는 걸까요? 처음에 저는 은수의 과거 상처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번 이혼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다가온 사랑이 다시 변해버릴까 두려운 거죠.  그런데 이런 해석은 조금 개으른 해석인 것 같았습니다. 은수는 사랑을 의식적으로 밀어낸 거라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은수는 사랑이 어색한 사람입니다.  은수는 이혼을 했기 때문에 사랑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혼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은수의 무의식 속엔  사랑이 없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사랑을 두려워합니다.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다가오면 밀어내버립니다. 사랑을 어떻게 키워가야 하는지 개념이 없어요. 왜 그런지는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정신병적 증상에 대해서 심리학자인 엘리스 밀러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정서 상태를 지목합니다. 밀러는 아이는 그가 자라는 가정의 정서를 공기처럼 흡수하는데 그 가정에 사랑이 없다면 아이는 사랑이 없는 어른으로 큰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사랑이 없음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사랑의 대상을 갈구하지만 그 사랑이 손을 내밀면 이상하게도 그 사랑을 밀어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것은 그 사람은 자신에게 왜 그렇게 사랑을 밀어내는지, 그런 이별이 반복해서 일어나는지 이유를 알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은수를 연기한 이영애 배우는 이 연기를 절묘하게 해냅니다. 결핍된 무의식을 지닌 사람의 눈빛, 느낌, 호흡이 선명하게 살아있습니다.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몸짓이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이 영화는 명작이 된 것이죠.  상우 역의 유지태 배우도 딱 맞아떨어졌어요.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캐릭터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죠. 수많은 명장면 중에 단연 압권인 장면은 은수가 벚꽃길에서 떠나는 장면입니다.  포커스가 완전히 아웃 돼버렸지만 은수의 모습이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죠. 아픈 사랑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무는 상우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병든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병들게 합니다. 은수가 자신이 정서적으로 병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상우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은수 자신이 각성하지 않는 이상 둘의 사랑은 다가가기와 밀어내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은수가 자신의 단점을 감추는 나르시시스트라면 모든 시련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할 거예요. 주위 사람들이 피곤해집니다. 그러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내적인 사람이라면 큰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은수가 아직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두 사람이 벚꽃길에서 헤어진 뒤 상우는 녹음 장비를 챙겨 갈대밭으로 향합니다. 상우는 시원하게 부는 갈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웃음 짓습니다. 그것이 엔딩이었던 거죠. 은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상우의 미소가 은수라는 올가미에서 풀려난 해방의 웃음처럼 보였습니다. 한뼘 자란 상우는 또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을 테지만 자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가진 은수가 큰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고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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