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Feb 21. 2023

유럽우체국 1-
새벽 한 시의 성당, 오스트리아

외따로 떨어져 있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밤에 산책하는 걸 좋아해"


S가 말했다.


'너는 키크고 건장한 남자니까 마음놓고 밤에 산책을 다닐 수 있겠지' 라는 말을 삼킨채, 

너의 손을 잡고 열두시, 빈의 한적한 동네 골목 산책을 나섰다.

밝고 눈부시던 레몬빛의 도시 빈은, 밤이 되자 그 따스함을 품은 어두움이 되어 내려앉은 도시가 되었다.

봄이면 와이너리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오래된 와이러니들을 지나, 

포도주들이 익고 있을 나무 통을 지나,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는 어느 와이너리의 정원 앞에 섰다.


"근데 여기 사유지 아니야? 들어가도 돼?"

"나 많이 들어가봤는데 한번도 안걸렸어 괜찮아 괜찮아"


영 믿음이 안가는 그의 설득에 못이겨, 더듬더듬 어두운 와이너리 정원으로 들어서고 뗀 두 발짝,

와이너리 주인의 독일어가 주방에서 들려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도시의 야경을 구경하는둥 마는둥

도망쳐나와 낄낄대던 그날 새벽.


그렇게 돌던 골목 끝에서 만난 작은 성당.


그곳만 따로 존재하던 장소인것처럼 시간이 그대로 무게를 내려놓은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건너편의 마주 본 하얀색 예쁜 집을 지나, 성당 앞 벤치에 앉아서 그 커다란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그저 가만히 침묵속에 바라보던 시간들.


"S, 성당 바로 앞에 집이 있으니까 저 집은 되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겠다 그치?"


너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날뿐.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투였던 걸로 기억한다. 


S, 너는 정말 솔직한 아이였어. 

너와 함께여서 그 시간들이 더 생각나. 

덥지도, 서늘하지도 않았던 여름의 빈도, 고요하던 새벽 한시 성당 앞 벤치도, 별을 찍겠다고 들고 온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있던 너의 손도, 별을 찍는 널 보다가 길에 앉아 까무룩 졸았던 그때의 나도.


그 때 그 성당은, 아직도 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따로 존재해. 

너가 그때 로맨틱한 말로 내 물음에 맞장구 쳤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것같아.


잘지내 S, 

그 때 그 시간 속에 너가 있어서 고마웠어.


서울에서 새벽 한시에 제이가.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그 자유의 이름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