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집어 라오.
"남듬 껀..."(물부터...)
집까지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반 탈진 상태에서 땀에 젖은 티셔츠를 어설프게 가리고 근처 가까운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벌게진 얼굴과 지친 목소리로 아이스 라떼를 겨우 주문하고 커피 전에 물부터 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하는 중이다.
난 조금 전 대란 속에서 빠져나온 패잔병이다.
한 바가지 흘러넘친 땀 때문에 눈앞이 흐려질 정도이고 무질서한 대기병들 속에서 내 자리를 수호하느라 조바심에 화까지 치밀어 당도 급히 떨어져 버렸다.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으로 전 세계의 유가, 물가, 환율 등 불안정한 상황이 라오스만 피해 갔을 리가. 전쟁이 다 같은 전쟁은 아니라지만 요즘에 나는 마치 참전 중이다. 전쟁명 주유대란.
라오스는 주로 중국, 태국, 베트남에서 오일을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 태국, 베트남도 자국의 오일을 선확보하고 안정화시키기가 우선인 상황일터.
라오스는 오일을 확보하기가 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 살로 느껴지는 불편함과 불안함은 4년 차 이민자 생활을 지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정부에서 공문을 내리기를 오일난으로 인해 라오스에 있는 학교들의 등교를 주 3회로 조정하고 환경이 허락되는 곳은 인터넷 수업으로 대체하라고 할 정도이니 상황이 어렵긴 한모양이다.
시간이 갈수록 내 차의 오일은 당연히 줄었고 내 염려는 그와 반대로 팍팍 늘어나기를 이제 한계다.
주유를 하기 위해 오일을 태우며 주유소를 다녀올 때 생기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국이 시국인지라 차의 오일의 양과 주유소의 거리를 계산하지 않은채 무턱대고 주유소를 공략했다가 대기만 질리도록 하고 정작 주유를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주유를 위해 대기중이다.
공회전 중에도 기름이 소진되니 에어컨은 고사하고 시동자체를 껐다가 앞 차의 이동이 생기면 다시 시동을 켜서 이동하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래서 태양열, 태양열 하는가, 태양이 나와 내 차 굽기를 쉬지도 않고 열을 계속 올린다. 열받게 진짜.
두 시간이다.
기름을 넣어야 하는 필요와 넣겠다는 오기 사이에서 길바닥에 딱 붙어 오늘 태양열과 싸운 시간.
땀이 흐를수록 갈증은 폭발하는데 물 한 병 안 들고 나온 나 자신을 자책하려는 즈음 드디어 주유기 옆에 섰다.
‘휴, 얼른 주유하고 빠져나가자.’ 후련해하려는데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주유소에 "몯레오!"(끝났어요!)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오듯 내 차 유리창 안으로 정확히 들어와 꽂혔다.
‘하…’ 열도 받는데 약까지 오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유기들은 냉정하게 잠겼고 나는 패배감을 안고 차를 돌려 나와야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물도 잊고, 준비가 부족했던 나의 완패였다.
처음엔 주유를 원할 때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불안과 불편함이 내 조급함을 더 조여왔고 이곳이 이방 땅이고 위기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위축이 되어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날 내 오기가 건드려진 걸까. 다음 날 잠결인데도 오기가 이른 새벽부터 내 머릿속에서 얼른 준비하자고 부지런을 떤다. 덕분에 잠자던 싸움닭 본능이 살아났다. 마침 진짜 닭도 운다.(한국으로 치면 서울 강남이라는 이곳은 아직 닭이 새벽을 깨운다.)
'내 오늘은 차박이라도 하리라'며 식량과 물도 챙겼다. 떨어질 당을 보충하기 위해 애정하는 간식과 시원한 물을 싣고 출발했다.
아직 어둠이 다 물러가지 않은 어둑어둑한 하늘이지만 라오스에서 보는 하늘은 언제 봐도 평화롭다. 오늘 주유난은 이 하늘만 같기를.
새벽 5시 50분.
이미 오토바이들과 차들이 주유소 앞에 대기 중이다. 전날 밤부터 밤샘을 하거나 야외취침을 불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보다. 차를 돌려 주유소 입구에 도착했다.
두 번째다.
주유 도전도 두 번째이고, 긴 대기줄에서도 차례 두 번째다.
하지만 벌떼같이 모여있는 오토바이들 사이에서 내 순서를 잘 수호해야 한다.
7시 오픈을 예고한 이 주유소의 직원이 걸어 나오며 손가락 8개를 펴 보인다. 8시에 연다는 소리다.
이미 한 시간을 기다린 상태였지만 '그래 1시간쯤이야.' 정신줄을 다잡았다. 생각이랑은 다르게 타들어가는 속으로 준비해 간 물을 삼켜 재워본다.
시간이 미뤄질수록 대기줄은, 늘어나는 오토바이로 차로가 덮일 지경이 됐고 왕복하는 차로 옆으로 한 줄로 길게 줄지어선 자동차들로 인해 2차선이 3차선인 듯 착각을 불러올 정도가 됐다.
오전 8시다. 이번엔 손가락이 9개다.
'곧 10개를 펴 보이시겠군.'
그랬다.
결국 나는 길바닥 위에 하염없이 데워지는 차 안에서 총 4시간을 보냈다. 4시간이라니!!
어쨌거나 왔다. 내 차례다!!
오일을 넣을 수만 있다면 밤샘이라도 할 각오를 하고 기다린 보람을 맞이할 순간이다.
차를 안정적으로 대고 "땜!(가득이요!)"이라고 시원하게 외치려는데 직원이 먼저 말을 던진다.
"쏭쎈!"
직원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창문 안으로 날린 말은 마치 쨉이었다.
"????"
생각이 멈춰버리고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다. 4시간을 기다렸는데 '쏭쎈'이라니!!!
상황인즉슨, 내 차의 기름통은 한국돈으로 보통 8만 원~10만 원어치를 넣어 타고 다녀야 하는데 고작 약 14,000원어치만 넣어줄 수 있다는 거다.(쏭쎈:라오스 돈으로 20만낍)
총 10칸의 주유 알림 칸에 고작 2칸이 찰지도 의문인거다. 거기다가 지금은 기름값이 오르고 올라서 보통 때의 14,000원만큼의 기름이 채워지지도 않는 상황인데!!!
나는 열받아서 뜨거운데 이 직원은 냉정이 단호하다. 조금 더 넣어보고자 직원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거만과 정중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들며 창문 안으로 또 툭 쨉을 날린다.
“버다이!(안됩니다.)”
‘뭐야, 오일을 웬만큼은 안정적으로 채워야 할 텐데 그럼 매일 4시간씩 4일을 이 짓을 더 하라고??’
[주유난 2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