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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책장, 우리의 사회

완성된 작업, 시작된 사회

by 함형광

치료실에서 만나는 14세의 아이는 늘 ‘엉덩이 탐정’을 이야기했다. 마치 외울 듯 반복되는 그 제목 속에는 어쩌면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너무 큰 도전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공공 도서관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이 혼자서는 조용히 있지 못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요.” 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도서관에 가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다.
매주 화요일, 병원 1층에 있는 푸르메 어린이 도서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도서관에 가는 경험”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첫 날, 아이는 너무 좋아서 흥분했고
책장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 모습은 결코 시끄럽지 않았고,
그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
우리는 도서관의 작은 테이블에서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도서관 직원들은 처음엔 조심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지만
점차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고,
두 달쯤 지났을 무렵엔 아이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원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아이에게 ‘엉덩이 탐정’을 꺼내어 주는 형이 생겼다.
정리하려고 모아두었던 책 더미 속에서
그 책을 꺼내 들고,
“이거 찾고 있죠?” 하고 건넸다.


그 순간, 아이의 작업이 완성되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를 기억하고
도와주고
함께 해주는 공간이 생긴 것.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아이가 ‘있을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배워간 시간이었다.
우리의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아주 중요한 변화였다.


치료실 바깥에서, 아이는 ‘읽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함께 읽는 사람’이 되었으며
도서관은 ‘기다려주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한 권의 책, 한 명의 아이, 한 번의 화요일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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