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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사람들, 찾아내는 여정

by 함형광

병원의 복도에 선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가라’ 했고, 그 말에 따라 작은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아니 그저 바퀴가 밀어졌다.
그리고 그 아이를 맞이한 치료사는 누군가 ‘하라’ 해서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었다.

아이도, 치료사도, 처음엔 그렇게 만난다.
타인의 판단으로 시작된 만남, 타인의 언어로 포장된 목적 속에서.


하지만 그곳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저 주어진 치료스케쥴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어떤 삶이 의미 있는지, 어떤 놀이가 웃음을 터뜨리는지,
어떤 상황이 그 아이를 움츠리게 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 질문은 치료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작업'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시작된다.


_____

어느 날, 말수가 적은 아이가 조용히 만들다가 멈춘 종이 공예 과제물을 주섬주섬 챙긴다.
그 작은 행동에서 치료사는 '가르치기'를 멈추고,
'묻는 사람'이 된다.
"조금 더 만들고 싶었어?"
"어떤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다음에 또 같이 할까?"

그 순간, 치료실은 훈련의 공간이 아니라, 발견의 장소가 된다.
아이의 관심이 방향이 되고, 아이의 행동이 길잡이가 되며,
그 여정에 동행하는 사람이 ‘작업치료사’라는 이름을 얻는다.


작업치료사는 기술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업을 함께 찾아가는 사람이다.

아이의 삶에서 진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환경이 지지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듣고, 보고, 느끼며 조율해 나간다.


치료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만남은
타인의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반드시 아이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 하고 싶은가’를.


우리는 요구된 치료를 수행하는 사람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찾아내는 동행자로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가라 해서 만났지만,
결국 스스로 '되고자 하는 존재'로 자라나는

아이들과 우리,
서로가 되어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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