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와 마실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따라 걷다

by 혀니

종로문화재단과 윤동주 문학관이 진행하는 ‘동주와 마실’을 다녀왔다.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 <서시> 등으로 교과서에서 숱하게 보아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휴일이었다. 오전에는 햇빛이 꽤 강해서 걱정했는데, 출발 시간쯤부터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제법 불었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윤동주 문학관의 내부를 관람했다. 제2전시실은 천장이 없어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구조였는데, 하늘과 바람과 밤이면 별이 보일 것 같았다. 3 전시실에서는 영상을 상영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 윤동주를 회고하기를, “남을 헐뜯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였다. 전시관 위쪽에 자리한 별뜨락을 지나 시인의 언덕으로 향했다. <서시>가 새겨진 바위 너머로 구름이 많아 흐리지만, 깨끗해서 선명히 보이는 서울 시내가 보였다. 바위 뒤쪽에는 <슬픈 족속>이 새겨져 있다. 시인의 언덕에는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있는데, 실제 윤동주 시인의 묘지에서 흙 한 줌을 가져와 뿌렸다고 한다. 그 비석 주변에 민들레 홀씨 하나와 노란 민들레가 유독 내 눈에 박혔다.


시인의 언덕에서 인왕산 중턱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푸르른 나뭇잎이 무성하고, 아카시아 꽃이 한창일 때라 걸을 때마다, 바람에 실려 온 달큼한 향기가 내 코 끝을 간지럽혔다. 15분쯤 길을 따라 걸어 인왕산 초소책방에 도착했다. 잠시 구경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무대에 도착했다. 구름이 많아 햇빛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맑은 날이라 아차산, 남산, 관악산, 롯데타워, 63빌딩까지도 선명히 보이고, 경복궁을 비롯하여 종로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눈에 담은 풍경을 그대로 박제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그 이상이 절실했다.


무무대를 뒤로 하고, 수성동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바위산이라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잘 없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 전날 비가 엄청 와서 물 흘러가는 자연의 소리와 작은 폭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린교 앞에서 인왕산을 배경으로 각자 폴라로이드를 한 장씩 찍어주셨다. 폴라로이드를 끼워 보관할 수 있는 홀더도 받았다. 홀더 뒷면에는 엽서처럼 <서시>가 있고, 홀더를 넣는 봉투는 편지봉투 모양에, 보내는 사람 윤동주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낭만...


그대로 길을 따라 내려와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시절 머물렀던 하숙집 터를 지나, 마지막 코스인 피스북스라는 작은 서점 겸 카페로 갔다. 서점의 사장님이셨나, 윤동주 시인의 출생부터, 사촌이자 친구였던 송몽규를 비롯한 주변인의 이야기와 일화, 생의 마지막과 그 이후까지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영화 <동주>를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꼭 봐야겠다.


그리고 소년 그림의 스탬프를 찍어, 색연필과 펜으로 색칠하고, 꾸미는 활동을 했다. 썩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 노력했다.


그렇게 두 시간 반 정도의 마실이 끝나고, 서점을 나왔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오전엔 쨍쨍하고 화창했는데, 한창 걸어야 할 시간엔 구름으로 해를 가리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가, 모든 활동이 끝나고 감상에 젖어 돌아가는 길에 부슬부슬 오는 비가 얼마나 운치 있던지.


그렇게 서촌을 지나, 경복궁을 지나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세상에 없는 존재를 짝사랑하게 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당신의 글이, 시가, 단어 하나하나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음을. 당신이 매일 아침을 먹기 전에 거닐던 인왕산을 나도 따라 거닐며, 행복했음을. 당신이 살았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의 시로 위로받고 있음을.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내일도 가게 될 언제나 새로운 길, 나의 길 위에서.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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