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호진 Jul 10. 2019

'편견'이 아닌 '신념'

영화 <롱샷>

 

 

 '로맨틱 코미디'는 참 신기한 장르다. '로코 영화'들은 보다 보면 정말 이렇게 뻔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뻔해 보일 때가 많다. 발단, 전개에서 뿌려놓은 떡밥만 봐도 어떤 떡밥이 주인공 커플의 사이에 균열을 낼지가 눈에 훤하다. 그리고 그 흐름은 대체로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로코'를 위해 한 가지 변명을 해주자면, '사랑'이라는 소재의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첫사랑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자리에서 숱하게 친구 혹은 누군가의 연애사를 들어왔다. 영유아를 제외한 (어쩌면 제외하지 않아도 될지도) 지구 상의 모든 이가 사랑 이야기를 한 개, 혹은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 상황의 디테일만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닳고 닳은 클리셰처럼 몇 가지 사건들이 어김없이 존재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변주한다 해도 결코 빠질 수 없는 그것들은 결국 모든 사랑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로 만든다.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장르이기에,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난 '로맨틱 코미디'가 '결말'보다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뻔한 선물인 줄 알고 뜯은 포장 안에서 발견한 예상도 못한 좋은 선물과 같은 것처럼.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이야기를 변주한답시고 '해피 엔딩'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즐겁기 위해 보는 '코미디' 아닌가. '사랑 이야기'는 겉포장일 뿐 누구나 예상하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 속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벌어지는 재미난 해프닝들과,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매력', 그것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가 '뻔한' 사랑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방법이 아닐까. 연애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냈던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나 싸이코적인 폭력물의 분위기에 사랑 이야기를 버무려낸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와 같은 작품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나름의 방법으로 훌륭하게 '변주'해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보게 된 영화 <롱샷>의 포스터를 유심히 훑어봤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매력이 흘러넘치는 여성 정치인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와, 어릴 적 그녀를 첫사랑으로 삼았던 어느 못생긴(?) 기자 '프레드 폴라스키'(세스 로건)의 이야기. 우연히 재회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당연히 이러쿵저러쿵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몽글몽글 사랑이 솟아나겠지.


 사실 이 영화에 주목할만한 신선한 '변주'같은 것은 크게 느낄 수 없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롱샷>은 충분히 볼만한 '과정'과, 작금의 미국 사회를 향해 외치는 훌륭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레드 오션' 시장에서 사이다같이 '통쾌한 코미디'를 자신의 강점으로 포지셔닝했고, 이것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 '샬롯'은 지구 환경을 보전하고 가꾸려는 자신의 정책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세상이 그녀에게 궁금한 것은 정책이나 실력보다는 무엇을 입는지, 무엇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와 같은 '가십 거리'들 뿐이다.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참모들은 그녀의 모든 매력을 점수화해, 대중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그녀의 모든 일상이 '연극'이고 '가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프레드'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레드'는 마치 루퍼트 머독을 연상시키는 '웸블리'라는 거대 언론 재벌의 횡포에 맞서던 기자지만, 일하던 신문사가 웸블리에 흡수 합병되며 그곳을 나와 백수 신세가 되고 만다. 때마침 자신의 매력들 중 '유머' 점수가 부족하단 평가를 받던 샬롯은 유머러스하지만 세상을 향한 날이 서 있는 프레드의 기사를 읽고, 프레드에게 공식 석상에서 써먹을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쓰는 일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 '프레드'는 표를 얻기 위해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천편일률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샬롯'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세스 로건 특유의 입담과 슬랩스틱은 말할 것도 없고, 망가지려고 작정한 듯 한 샤를리즈 테론의 훌륭한 연기 내공으로 어우러진 극 중 '인물'들의 톡톡 튀는 매력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지만, 영화 <롱샷>은 '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사회 풍자 영화'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사회를 향한 날카롭고 의미 있는 풍자와 통쾌한 웃음을 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영화 <롱샷>이 통쾌함을 날리는 대상은 지루한 세상의 '선입견'이다. 전체 매력 평균에서 92점을 기록하고 있는 샬롯에게 당신이 남자였다면 192점이 나왔을 거라는 참모의 의견은 이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선입견을 잘 보여준다. 샬롯이 감정 섞인 연설을 하고 나면 아침 뉴스쇼의 진행자가 혹시 그녀가 생리 중이었나 보다는 저질스런 개그를 날리는, 유독 '여성'을 향해서 더 저질스럽고, 짓궂어지는 폭력적인 사회의 민낯 말이다. 현 정권에서 국무장관까지 지내며 어느덧 중견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샬롯'이 이를 대하는 방법은 대중이 좋아하는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만 카메라를 통해 드러내며 그 시선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영화 <롱샷>은 우리가 '정치'를 바라보는 구태의연한 '선입견'에 대해 통렬한 한 방을 날린다. 하늘이 정해준 왕을 받들어 모시던 시대를 지나, 왕 대신 우리를 위해 일할 '일꾼'을 뽑을 수 있는 감개무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사실 우리는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능력보다는, 스캔들과 같은 가십 거리에 더 관심을 갖는다. 물론 작은 것을 보면 큰 것을 알 수 있다고 정치인의 '일상 속 도덕성'을 판단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몇 가지 자극적인 루머나 가십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선입견'이다.


 모든 정치인들의 정책과 그 능력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에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고, 귀찮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몇 개의 자극적인 가십 기사들은 우리가 어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인류 역사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 SNS를 이용해 더욱 빠르게 번지는 '루머'와 '가십'이라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결국 정치를 '신념'이 아닌 '권력'과 '탐욕'으로 접근하는 정치인들은 능력보다 이미지 갖추기에만 열중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권력을 얻는다. 그런 세태 속에서 '정치'는 결국 연극을 잘 꾸미는 장사꾼들끼리 권력을 나눠갖기 위한 흥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청문회에서 '도덕성'을 판단한답시고 후보자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검증보다는 무슨 흥신소마냥 후보자의 뒤를 캐는 데에만 열중하며 온갖 의미 없지만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기에 바쁜 정치의 부끄러운 일면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런 샬롯에게 운명처럼 프레드가 등장한다. 샬롯은 어린 시절 프레드의 베이비시터까지 해준 적이 있을 정도로 프레드와 가깝게 지냈다. (호기롭게 샬롯의 입술을 훔친 13살 프레드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첫 키스 이야기는 눈물이 왜 나는지 보면 알게 된다.) 고교 시절 전교 회장 공약으로 '졸업 무도회를 2회로 늘린다는 포퓰리즘성 공약' 대신 '환경 정책'을 공약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샬롯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당찬 소녀였다. 프레드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던 시절 샬롯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고 '프레드'는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갇혀 살던 그것을 이끌어낸다. 모두가 정장을 빼입고 있는 정치계 인물들 사이에서 프레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X 같은 테이퍼드 카고 바지'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모자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벌써 그가 기성 정치계 인사들과 다른 인물임을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프레드'는 그녀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그녀의 '입'이 되어주며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정치와 지구 환경에 대한 그녀의 순수했던 관심과 열정을 다시 일깨워 준다.

 프레드는 아마 샬롯의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식어조차 '선입견'에 기초해 누군가의 표를 얻으려는 편협한 타이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레드는 샬롯이 여론 조사에 기초한 이미지에 부합하는 '여성 대통령'이 아닌 깨끗한 지구 환경을 보전해나가고 싶은 열정을 지닌 그냥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었을 테다.


 영화가 풍자를 가하는 대상은 비단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의 기초가 되는, 보다 더 일상적인 기저에서 사람을 대하면서 드러나는 우리의 '선입견'에 대해서도 영화는 말한다. 프레드는 허리케인조차 동성혼이 원인이라는 말을 일말의 고민 없이 보도하는 정신 나간 언론 재벌 '웸블리'에 맞서는 '옳은 신념'을 지닌 기자처럼 보였지만, 영화 <롱샷>은 그 순수한 '신념'조차도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의 '편견'이 되어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성 정치인과 언론에 대한 프레드의 혐오와 불신은 미국의 전통적 보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 '공화당, 기독교'에 대한 '선입견'을 낳았다. 그리고 이 선입견은 영화에서 프레드가 그의 절친 랜스(오셔 잭슨 주니어)와 다투는 장면에서 또 다른 중요한 장면으로 작용한다. 랜스는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던 자신이 공화당원이며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프레드에게 말하고, 프레드는 그에게 화를 내며 매우 실망한다. 하지만 랜스가 그것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말했을 때 프레드가 이렇게 반응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랜스는 말한다. 난 너와 다른 공화당원이고, 기독교인이지만 이렇게 다름에도 너는 좋은 친구라고. 그리고 프레드는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고,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으며 랜스에게 사과한다.


 사실 랜스가 흑인임에도 전통적인 보수 백인들의 조건처럼 느껴지는 공화당원에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개그의 소재로써 사용될 정도로 일반적인 미국인들에게도 이상한 일일 테다. 그리고 그것이 웃기다는 사실은,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타인을 만날 때도 사람들이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영화는 사실상 '주인공'이자 샬롯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역'처럼 보이던 프레드까지 '선입견'을 가진 인물로 그려내고, 영화는 이를 통해 영화를 보는 당신이 지니고 있을 '편견'과 '선입견'에 대해 묻는다.

 우린 사람을 만날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그 사람을 친구로 삼을지, 아닐지를 판단한다. 우리는 그것을 '첫인상'이라고 일컫는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다. 첫인상이 좋지 않은데 싫은 사람을 억지로 친구로 삼을 순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몇 가지 잣대로 판단한다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다양한 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프레드는 랜스가 공화당원이라는 이유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오래도록 가장 친한 친구였던 그를 버리지 않았다. 랜스가 그걸 숨기는 것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면 프레드는 어쩌면 정치적 성향과, 종교 때문에 자기 인생에 최고의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랜스는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프레드가 가지고 있는 공화당원과, 기독교인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우리는 그 요지경 속에서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려 버릴 것만 같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주변을 빙 둘러 담을 쌓고 나와 맞는 것만 안으로 들이는 것이 안전하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보편적인 본능이다. 그 담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강의 물줄기를 향한 우리의 '편견'이고, '선입견'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안전한' 곳을 고수하고 싶은 인간의 방어 기제다.

 하지만 그렇게 갇힌 공간 안에서만 사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인연과, 새로운 일들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며 사는 것이다. 영화 <롱샷>은 '모험을 건 시도'라는 단어 속 의미처럼, 삶이 당신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그렇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살면서 옳다고 믿는 '신념'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신념'이 샬롯처럼 훌륭한 이상을 지닌 정치인을 만들고 프레드처럼 정의롭고 용감한 기자를 만들어냈듯, 세상이 필요로 하는 '좋은 사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념'이 '편견'이 되고, '선입견'이 되는 건 손바닥을 뒤집듯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리고 '편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편을 가르기 시작한다. 마치 랜스가 프레드와 친구가 되고 싶어 자신의 진짜 모습 중 일부를 숨긴 것처럼, 정치인들은 최대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연극'을 하기 시작한다. 삶 속의 작은 편견들이 모이고 모여 여론이 되고 정치가 되며, 그 거대한 편견 앞에 모두가 연극을 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정치'는 당연히 병들고 만다.


 결국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의미 없는 잣대에 의한 갈등과 반목은 무의미할 뿐임을 영화 <롱샷>은 말하고 있었다. 영화는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을 향해 '통쾌한 풍자'의 어퍼컷을 날렸고 마지막엔 샬롯을 대통령으로, 프레드를 영부군으로 만들면서 뻔한 로코의 결말을 그들만의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지었다. 샬롯과 프레드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프레드와 랜스의 우정이 굳건할 수 있었던 것도 편견 없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그들의 따뜻한 시선 덕분이었다. '건강한 신념'은 다름을 인정하지만, '병든 편견'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신념'으로 뭉친 미국에 남은 것은 '화합'이었다. 어쩌면 영화만이 그릴 수 있는 몽상에 가까운 결말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지금 현재도 인종 간의, 계층 간의 갈등으로 조금씩 병들어가는 미국 사회를 향한 영화 <롱샷>의 웃기지만, 그래서 통쾌한 메시지였다.

  


 신념을 통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가 보는 사회 역시 '나와 다른 것'을 향한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지역으로, 때로는 학벌로 나뉘며 이제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싸운다. 아닌 것도 있겠지만 일부는 분명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길 원하는 순수한 '신념'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편견'으로 바뀐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시선과 증오뿐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지구 밖으로 쫓아낼 것이 아니라면, 뻔한 얘기 같지만 결국 '편견'이 아닌 '신념'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방법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 간의 사랑과 우정이 모여 한 사회의 건강한 신념이 되고, 그것이 정치가 된다. 그러므로 정치는 권력을 꿈꾸는 자가 대중을 향해 벌이는 '이미지 메이킹 쇼'가 아닌, '신념'들 간의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낙선은 곧 실패로 여겨지는 정치를, 권력을 쥐기 위한 파워 게임이 아니라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신념'들의 모임으로 접근한다면 권력을 얻기 위해 일부러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어 내려고까지 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


 p.s 일개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이런 메시지까지 담아낼 수 있다니, 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는 뻔하다고 말한 나 스스로도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지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운칠기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