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Dallas Buyers Club>
지금에 와서 꺼내기에 참으로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정말이지 어지러운 세상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들이 매일 신문 1면과 뉴스를 도배한다. 이에 사람들은 분개한다. 그래서 분개한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비상식적인 세상을 바로잡고자 손에 손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가득 메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지러운 난세의 무림에 사는 어린 백성처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난세를 짊어질 영웅은 언제쯤 등장하게 될까..'
난 지금이야말로 히어로, 영웅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민중, 대중들의 분노를 하나로 모아서 그 분노의 대상에 전달할 사람 말이다. 그 분노가 여러 사람의 외침일 땐 그저 외침일 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 영웅의 목소리에 담길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 세상을 바로잡자며 전면에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진정 우리의 분노를 맡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그런 현 시국에 나는 자연스럽게 예전에 보았던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이 '과연 진정한 영웅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론 우드루프는 흔히 말하는 '탕아'다. 로데오 경기로 도박을 걸어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마약과 술, 매춘을 즐기는 방탕한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이리도 많은 여자들을 두고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다 못해 몹시도 증오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 어느 순간, 귀에서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리는 '이명'이 찾아온다. 영화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힐 이 '이명'은 영화 초반부에서 그의 방탕한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변화다. 론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만 것이다.
에이즈는 거칠 것 없던 론의 인생을 360도 바꾸어 놓는다. 그의 인식에 AIDS는 '호모들이나 걸리는 병'이었다. 그가 그리도 증오하는 동성애자라는 인간들이 세상 섭리에 반하는 사랑을 꿈꾸는 것에 대한 벌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병에 걸려버린 론 우드루프. 그가 느꼈을 자괴감과 상실감, 허탈감은 아마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AIDS는 론을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톨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론의 친구들은 그를 더 이상 친구로 여기지 않고, 병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 그를 멀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론은 동성애자가 될 수도 없다. 그가 살아온 평생 가장 증오하던 인간들이 아니던가. 그가 걸린 에이즈는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 있어서만 불치병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있어서도 치유가 불가능한 '인생의 불치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그의 인생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에이즈는 거짓말처럼 론의 인생에 제 2막을 열어준다. 아마 누군가 이 영화를 단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한다면, '아이러니' 하다는 것일 것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아이러니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위의 글만 읽으면 론은 그냥 방탕한 인간이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생명의 중요함', '삶의 중요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이 점차 진행되면서 그의 이러한 면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가 생명을 중요히 여긴다는 것을 처음 볼 수 있는 장면이 초반에 나온다. 전기 기술자로 일하는 론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기 전 여느 때처럼 일을 기다리다 전기 사고를 처리하라는 일을 받는다. 하지만 론의 눈으로 보기에 이 사고는 '전기 사고' 라기보다는 '인명 사고'에 가깝다. 어느 노동자가 전기 전동차 바퀴 사이에 다리가 끼어 전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어서 구급차부터 부르라는 론의 말에 현장 책임자는 우물쭈물한다. 그 노동자는 불법체류자였던 것이다. 무슨 헛소리냐며 당장 구급차를 부르라고 말하는 론. 그의 모습에서 일단 생명을 살리는 게 중요한, 인간미 있는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런 그가 덜컥 에이즈에 걸려 버렸다. 물론 매춘이라는 방탕한 그의 인생 덕분에 얻은 것이긴 하지만. 생명과 삶을 중요히 여기는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이 끝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론은 위에서 노동자를 구하려고 했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약을 찾고 약을 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백방을 수소문한다. 과연 그의 인생 2막은 어떤 식으로 열리게 될까.
처음 에이즈 감염이란 말을 듣고 헛소리 말라며 병원을 박차고 나간 론 우드루프.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음을 몸으로 느낀 우드루프는 살기 위해 자료 조사에 매달린 끝에 다시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AZT라는 치료제가 있다고 들었다며 약을 달라고 간청한다.
의사 이브는 AZT를 처방해 달라는 론의 말에, 임상 실험 중인 약물이기 때문에 실험에 참여하지 않으면 약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의 의지가 강한 론, 여기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에게 불법으로 AZT를 구매하여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론. 하지만 이 약을 완전히 믿어버린 것 때문인지 마약, 술, 매춘으로 이어지는 그의 일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살고는 싶어 약은 먹지만, 에이즈의 걸리기 전 그의 삶을 포기하진 못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병을 상징하는 '이명'도 멈추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AZT는 '치료제'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약이다. AZT는 항바이러스 효과는 입증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한 세포들까지 모두 죽여 그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약회사와 FDA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약을 팔기 위해 오직 AZT만을 미국 에이즈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그 첫 단계가 사람에게 투약하는 임상 실험인데 론이 사는 댈러스의 댈러스 머시 병원에도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병원의 두 의사인 세바드와 이브. 세바드는 임상 실험을 진행하는 병원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에 임상 실험을 하고자 하지만, AZT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없음을 아는 이브는 이를 반대한다.
한편, 어느 날 청소 노동자는 론에게 더 이상 AZT를 몰래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멕시코에 있는 한 의사의 주소를 알려주며 찾아가 보라고 말한다. 돈을 받고 약이 아닌 주소를 주는 그에게 화가 나 론은 주먹을 휘두르지만 허약할 대로 약해진 론의 주먹. 결국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울며 겨자먹기로 찾아간 멕시코. 멕시코의 의사 배스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첫 번째 사람이다.
AZT를 달라며 멕시코의 의사 배스를 찾아온 론. 하지만 AZT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없음을 아는 배스는 AZT에 마약과 술까지 잔뜩 먹어온 론에게 독약을 만들어 먹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FDA에서는 허가하지 않은 약물이지만 독성은 AZT보다 훨씬 덜한 DDC와 펩타이드 T라는 약을 그에게 처방한다. 사실 배스가 미국에서 면허를 뺏기고 멕시코에 와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드루프는 여기서부터 에이즈 환자로써의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기로 결심한다. 배스 선생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진짜 에이즈 환자로써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사실 배스 선생을 만나러 멕시코에 오기 전, 론은 차 안에서 자살을 고민한다. 이젠 주먹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처참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론은 삶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다시 한번 살고자 힘을 내어 찾아간 멕시코에서 그는 처음으로 환자로써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고, 진정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약을 처방받으러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좋은 약을 허가하지 않은 채 AZT를 고집하는 FDA에 분개한다. 그리고 그 찰나, 이 영화의 제목인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처음으로 구상해낸다.
"You could be making a fortune out of this."
"떼돈 벌겠네요."
론은 미국 국내에 있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DDC와 펩타이드 T를 몰래 들여가고자 한다. 하지만 론의 이러한 생각은 인도적인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위에서 한 말처럼, '돈'을 벌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질병을 직시하고자 한 것일 뿐이지 다른 에이즈 환자들, 론의 관점에선 동성애자들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증오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약을 팜으로써 말 그대로 돈을 벌고자 한 것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관과 FDA의 눈을 피해 약을 들여온 론. 하지만 미국 내의 에이즈 환자들은 그가 들여오는 약에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 갑자기 다가와 파는 약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그에게 운명적으로 나타난 사람. 그가 바로 '레이언'이다.
의아할 수도 있다. 동성애자를 극히 혐오하는 론에게 어떻게 레이언이 운명적으로 나타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하지만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처럼 '돈'이라는 물질적인 욕망은 론과 레이언을 엮이게 만들었다.
론과 레이언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건 론이 허공에 주먹을 날리고 쓰러진 이후 병실에서였다. 여느 때처럼 옆 침대의 레이언을 보고 접근조차 하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론. 하지만 돈다발을 보여주며 카드 게임을 하자는 말에 론은 처음으로 동성애자의 제안에 응한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이 '돈'으로 엮이는 첫 번째 사건이다.
둘이 돈으로 엮이는 두 번째 사건은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과 연관이 있다. 론은 레이언에게 자신이 구상한 사업을 함께 하자고 동업 제안을 한다. 이 역시 의아할 것 없다. 론이 레이언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니까. 생각만큼 밀수해 온 약이 잘 팔리지 않자 론은 레이언과 함께 동업하여 고객을 늘려나가고자 하는 의도였다.
어디까지나 속물적이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시작된 론의 사업. 하지만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은 론도 모르는 새에 론을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론이 국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약을 밀수하는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절대 에이즈 환자들의 희망, 영웅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저 그들을 상대로 돈을 왕창 벌고자 함이었다. 론은 일본, 네덜란드 세계 곳곳을 돌며 AZT가 아닌 에이즈 환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약을 찾아 발품을 팔며 몰래 밀수를 한다.
효과적으로 고객을 모아 오는 레이언의 노력에 힘입어 사업은 점차 성행한다. 그리고 론은 개개인에게 약을 파는 사업에서 발전해 매달 400달러를 내는 사람에게 회원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짜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던 이 사업은 필연적으로 론과 다른 에이즈 환자들이 계속해서 접촉하고 얘기를 나누도록 만든다.
그리고 론은 점차 '약장수'에서 '영웅'으로 변모해간다.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적'이다. 그리고 당연히 론의 적은 FDA와 돈만 밝히는 탐욕스러운 제약 회사들이다. 에이즈 환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좋은 약들을 두고 안전하지 않은 AZT만을 고집하는 이들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론과 에이즈 환자들을 점차 더 단단히 묶는다.
동성애자에 대한 그의 태도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론과 레이언이 쇼핑을 하는 중 론의 옛 친구를 만나는 장면이다.
론과 함께 이 장면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 론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한다. 론의 옛 친구는 과거 호모를 경멸하고 방탕하던 론의 모습을 상징한다면, 레이언은 에이즈 환자가 되며 동성애자들과 같은 처지가 된 현재의 론을 보여준다. 동성애자인 레이언을 무례하게 대하는 론의 옛 친구. 아마 여기서 론은 영웅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갈림길에 놓였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느냐, 레이언에게 사과하라고 하느냐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우리의 론은 옛 친구를 힘으로 제압하며 레이언에게 사과의 악수를 하라고 한다. 그의 심경의 변화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장면 이후로 레이언은 론을 다시 보게 된다. 론과 레이언 사이가 '돈'에서 '우정'으로 바뀌는 변곡점에 있는 장면인 것이다.
영웅에게 필수적인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시련'이다. 개인적으로 약을 밀수해 환자들에게 파는 모습을 절대 보고만 있을 FDA가 아니다. FDA는 약을 압수하고 법을 바꾸는 등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와해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가는 과정에서 론은 진짜 '영웅'이 되어간다.
FDA와 제약 회사들의 온갖 방해에 대응해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론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무엇보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더 영리한 방법을 동원하며 FDA의 감시망을 피해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운영해 나간다. 클럽은 어느샌가 론 개인의 영리 목적이 아닌, 에이즈 환자들의 안식처가 되어간다.
그리고 론은 진짜 시련을 마주한다. 그것은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이제는 동지가 된 '레이언'의 죽음이었다.
둘은 아직까지도 서로에게 티격태격하지만 이제 둘의 사이에는 우정이 싹터 있었다. 그리고 클럽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론은 어느새 증오하던 동성애자들의 편에 서게 된다. 에이즈 환자들도 론에게 무상으로 집까지 빌려주며 클럽의 유지를 위해 다 함께 노력하지만, 클럽 운영은 점점 힘들어져간다. 어느 순간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레이언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이해해준 '론'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자 한다. FDA의 방해로 인해 돈줄이 막혀 망하기 직전의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간다.
돈을 구하기 위해서.
"I met somebody who is very kind to me and I'd like to repay that, dad.
and I need your help. please"
"저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래서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 도움이 필요해요, 제발."
자금 조달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지쳐가던 론. 레이언은 그에게 뭉칫돈을 내민다. 이 돈이 어디서 났냐는 론의 말에 레이언은 생명보험을 탄 샘 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은 처음으로, 포옹한다.
이 포옹은 그저 '돈'에 대한 고마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단순히 '돈'으로 얽힌 사업 파트너에서 진정한 친구가 된 둘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포옹이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우정이다.
마지막 '생명보험금'으로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살린 레이언은 죽음을 맞는다. 죽기 직전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레이언의 모습은 살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클럽 운영을 계속하기 위해 정부에 소송을 건 론.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판사는 론의 소송을 기각한다. 노력 끝에 영웅은 너무도 강력한 악에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론은 승리했다. 그의 '인생의 불치병'인 것만 같았던 에이즈라는 병은, 아이러니하게도 론을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켰다. 방탕한 한 인간을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게 했다. 이제는 과거의 모습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난 이 두 장면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다.
RON : fifty bucks.
(yelling to the line)
You don’t got the money, you don’t join the club. This ain't no charity.
You need three hundred and fifty more.
론 : (프레디를 향해) 네가 준 건 50달러야.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며)
돈 없으면, 클럽에 못 들어와요. 무슨 자선사업이나 하자는 게 아니잖소.
(다시 프레디에게 돈을 돌려주며) 350달러 더 가져와.
DENISE : From Austin. All on AZT. Their insurance is paying for the treatment and they don’t know if they can afford to switch.
RON : Hook ‘em up.
DENISE : We’re pretty cash poor.
RON :Sell my car.
드니스 : 오스틴에서 왔어요. 모두 AZT를 복용하였고요. 그건 보험 처리가 되었는데 지금은 가진 돈이 없대요.
론 : 접수해요.
드니스 : 우리도 자금이 없어요.
론 : 차 팔아요.
첫 번째 장면은 전 재산인 50달러를 들고 클럽에 가입하고자 사정하는 에이즈 환자를 향해 론이 던지는 대사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은 클럽에 가입해 약을 얻고자 하지만 돈이 없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론이 차를 파는 장면이다. 아마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론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송 패소 소식을 듣고 댈러스로 돌아온 론. 하지만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클럽의 모든 사람들과 의사 이브는 터덜터덜 들어오는 론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그는 패배했지만 승리했다.
그리고 처음 에이즈를 진단받는 장면에서 한 달 밖에 못 살 거라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론 우드루프는 에이즈 진단을 받고 7년 뒤인 1992년 사망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저용량 AZT가 널리 사용되었고, 복합 약물 요법은 수백만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나는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을 주저 없이 인생 영화로 꼽을 수 있다. 론 우드루프만큼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 영웅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아이러니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고 삶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그 모습 그대로 영화에 녹여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혼란한 세상에 우리에게도 '론 우드루프'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진짜 민중의,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거짓과 위선이 아니라 진실로써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우리들의 영웅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