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자가 미안하다 말하는 세상

영화 '재심'

by 정주원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이 인색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정우의 대사에서 그 이유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미안하다는 말은 책임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사실 세상 모든 갈등과 싸움의 목적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갈등에 대한 책임을 모두 등에 짊어진 채 패자가 되고, 상대방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승리의 깃발을 높이 휘날린다.


하지만 그저 '미안하다'는 말이 상대방의 입에서 먼저 나오게 한다고 해서 내가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인데도 온갖 거짓과 부정한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게 한다면 이는 더러운 승자다. 패자 만도 못하다. 그래서인지 순하고 마음 착한 우리 엄마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하셨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더러운 승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고결한 패자가 되어 마음 편히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모전자전이라고 어머니의 순한 본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어머니의 그 격언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고자 했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도 진리는 아니더라. 이 '미안해'는 그저 도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먼저 미안해라고 말해주었더니 모든 여자들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영화 '재심'도 미안함의 감정에 관한 영화이다. 한 나라의 사법 체계가 한 개인을 무참히 짓밟고 나중에서야 마지못해 (정말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영화이다. 공권력이 온갖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승자를 패자로 만들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사과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시간'이라고 하는,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소중하게 빛나는 '청춘'이라는 시간을, 속죄의 제물로 앗아갔다. 시간은 벌금이나 범칙금처럼 다시 돌려줄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죽음보다도 가혹한 형벌이다. 그런 엄청난 일을 우리나라 법원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행했다.


'법'은 철저한 이성의 산물이다. 일말의 감정이라도 섞이면 안된다. 정의의 여신처럼 두 눈을 가리고, 즉 사적인 본인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오로지 사실만 가지고 '법'의 엄격한 칼날을 들이대야만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조인들은 이 영화에서처럼 그 '법'의 칼날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오로지 정의의 논리로만 판단하기도 어려운데 고작 돈의 논리로, 지식의 논리로 그것이 없는 사람들에겐 무참히 '법'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현우'에게도 그랬다. 학교도 제대로 못나왔다고, 돈도 없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라고 공권력은 현우에게 패자의 멍에를 뒤집어쓰기를 강요했다. 사실 공권력만 욕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러한 편견만 가지고 쉽게 누군가에게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가. 아마 사건의 진실에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현우'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 '준영'이라는 변호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되어준 '수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현우가 자신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경찰을 그대로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이 영화는 '현우'의 억울함이 풀렸다고 해서 박수 치며 끝날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한계를 느끼며 더 답답해야만 할 것이다. '준영'이라는 정의롭고 인간적인 법조계의 히어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왜 미안한지 모르는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 이상한 세상에 살아야 한다. 돈의 색안경과 지식의 색안경을 벗지 못한 법조인들에 의해 언제든지 억울한 죄인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 누가 '현우'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사과의 때를 놓치면 그 부끄러움은 더 큰 쓰나미가 되어 돌아온다.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밝혀지지 않더라도 개인의 양심에겐 그 쓰나미가 분명히 돌아온다. (그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이라 정의하지 않고 싶다.)


우리는 그저 바래야 한다. 오로지 '정의'의 잣대로만 법의 심판을 할 수 있는 법조인들만 있는 세상을. '준영'과 같은 변호사들만 존재하는 세상을. 법조인이 되었다고 해서 '출세'했다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정의'를 짊어져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그 사람의 운명에 숙연함을 보이는 세상을.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 세상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더러운 승자도 깨끗한 패자도 아닌, 그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와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의 인생을 돌려줄 수 없는 우리는 현우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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