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을 믿는 주인된 삶
1999년의 어느 날. 10살의 어린 나는 TV 앞에 앉아 계신 어머니 무릎 앞에 신문에서 자른 지면광고 한 장을 떡하니 내밀었다. 그리고 그냥 한 마디 했다. "엄마, 이거 보러 가자." 그 지면광고는 영화 포스터였다. 그리고 그 영화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분명히 어머니의 유전자란 생각이 들 만큼, 영화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곧장 그 주에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명보 극장으로 갔다.
운좋게도 나는 스타워즈 연대기의 가장 처음부터 은하 세계의 역사 흐름 그대로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미 1977년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로 시작해 '에피소드 6-제다이의 귀환'으로 대단원의 막을 올린 이 우주 대서사시는 1999년에 프리퀄로 '에피소드 1'이 등장해 2005년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로 마무리되는 특이한 순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재작년 <스타워즈>는 쌍제이 감독의 리부트 작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고, 변함없는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의 영화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명보극장 스크린에서 내 눈 앞에 광활한 우주의 함선들과 전투기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레이저 빔 내뿜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를 <스타워즈>의 세계에 매료시켰다.(에피소드 4,5,6에 등장한 그 유명한 저항군의 X윙 스타파이터는 에피소드 1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백미는 역시 제다이와 시스 로드 사이의 광선검 대결이었다.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칼싸움 깨나 즐기던 내겐 더욱 그랬다. 포스니, 시스니, 무슨 말인지 감도 안잡혔다. 그런데 그냥 멋지게 검을 휘둘러대는 제다이들이 정의로워 보였다. 아니, 그냥 겁나 멋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도 <스타워즈>는 유치한 SF 영화가 아니었다. 이분법적으로 포스는 선, 시스는 악이라고 쉬이 구분할 수 없는 두 세력들 고유의 철학이 있었다. 캐릭터 하나하나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은 나를 스타워즈 매니아의 길로 인도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모두 몇 번 씩이나 돌려 본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그 때나 지금이나 콰이곤 진이다. 에피소드 1에서 스타워즈 연대기의 전체를 끌고 나가는 캐릭터인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발굴해 내는 인물이다. 아나킨은 요다보다 강력한 미디클로리언 수치를 보유했다. 콰이곤 진이 보기에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하지만 제다이 수련을 받기에 나이가 너무 많았다. 마음 속에 두려움이 너무 강했다. 제다이 평의회의 요다와 윈두 모두가 반대했고, 그를 충직하게 따르는 파다완인 오비완마저도 처음엔 스승의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직관과 느낌을 믿고 아나킨을 제다이로 만들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콰이곤은 영화 후반부에 다스 몰에 의해 너무 어이없게 죽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포스의 영이 된 것이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하는걸로.
콰이곤 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팬들도 있다. 아마 콰이곤이 아나킨을 가만히 두었으면 은하계 최고의 암흑 군주 다스 베이더는 사막 행성 타투인 시장 구석 와토의 기계 부품점에서 노예로 찌그러져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굳이 코루스칸트까지 데려와 제다이로 만들려다 이 사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앙의 씨앗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영민한 포스의 기운을 보유한 아이였다면 분명 무엇이 되어도 되었을 거다. 그런 아이를 포스의 선한 면을 익혀 제다이로 만들고자 한 콰이곤의 결정은 오히려 혜안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나는 요다와 메이스 윈두를 비롯한 제다이 평의회 구성원들의 결정이 이 사단을 만든 원인이라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케케묵은 이론과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강력한 포스를 타고난 아나킨을 두려워한 건 제다이 평의회였다. 나이가 많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나킨을 제다이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특히나 메이스 윈두는 끝까지 아나킨을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제다이로써의 원리와 원칙을 누구보다 잘 지켜온 그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유연하지 못했다. 진정 시스를 없애고 포스의 균형을 가져오고자 한다면 두려움에 떠는 아나킨을 더 포용하고, 그에게 선한 포스의 힘을 익히도록 더 감싸안았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 시스에 잠깐 빠질 뻔 했을 때도 있었다. 사춘기여서 그랬나 싶다. 제다이들처럼 포스의 이론적인 면에 갇혀 사는 꼰대(?)들보다 더 솔직해보였다. 시스는 인간 본연의 감정인 슬픔, 분노를 부정하지 않았다. 어두운 힘임을 인정하는 시스가 차라리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시스는 꽉 막힌 제다이만도 못한 집단이었다. 이른바 '언리미티드 뽜워', 절대적인 힘의 노예들일 뿐이었다. 그 힘을 위해 온갖 부정하고 패륜적인 방법들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나도 사춘기였나보다.
콰이곤 진은 누구보다 훌륭한 제다이 마스터였다. 진작에 제다이 평의회 멤버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평의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 평의회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사실 콰이곤 자신도 그런 이름들에 연연하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포스의 명상에 빠진 탓에 자신을 잃어버린 다른 제다이들과 콰이곤은 달랐다. 그는 항상 현재에 충실하고 자신의 본능과 직관을 믿었다. 결과적으로 다스 베이더는 아니, 아나킨은 황제 '다스 시디어스'를 환풍구 아래로 던져버렸다. 제다이들이, 특히 콰이곤이 그토록 바라던 '포스의 균형'을 가져온 인물이 되었다.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 본능을 활용해라.
이것이 바로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고결했고, 인내심 있고, 현명했고, 무엇보다 포스와 밀접한 조화를 이뤘다. 보잘것 없는 일개 건간족 자자 빙크스의 목숨을 구해주고, 나아가 나부 행성의 건간족 모두를 지켜준다. 포스에만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 모두와 공감했다. 가장 인간적인 제다이였다. 포스에 매달려 있지 않고 오히려 진짜 포스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이 허망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죽은게 아니라 포스의 영으로, 포스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라는 뜻이다. 얼마 전 강신주 씨의 책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에서 읽게 된 구절이다. 지금까지 한 구절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내가 꼭 마음에 지니고 살고자 했던 것이었다. 내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말을 찾은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스타워즈>를 보지 않았더라면, 콰이곤 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에 그런 철학을 심을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언가에 묶인 삶은 결코 주인되지 못하다. 그것이 돈이건, 사람이건, 어떤 신념이건 말이다. 세상에 어떤 좋은 말과, 사상이 있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포스의 노예가 아니라 포스의 주인이 된 콰이곤 진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케케묵은 말들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내 스스로를 무시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