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완성하는 사랑

나희덕, <푸른 밤>

by 정주원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테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아직 그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응당 한번쯤

사랑을 잃는 아픔을 경험한다.

그 통증은 처음엔 내 온 몸 곳곳을 침범하며 나를 슬픔이라는 증상으로 물들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경험이라는 면역이 쌓이며 점차 아픔은

흔히 지나가는 환절기 감기처럼 하찮아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하찮은 아픔을 남긴 사랑은 내가 그 사람에게 준 사랑도 하찮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에 잔뼈가 굵어,

이제 내가 어른이 되어,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찮은 사랑을 해놓고 사랑이 주는 아픔을 정복했다 말하는 그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도 그럴 것이, 인간사에 똑같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유사 이래 수많은 심리학자와 예술가들이

사랑을 분류하고 재단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모든 사랑들 중

같은 모양을 한 것은 없다.

그러니 살다보면 사랑의 아픔에 둔감해지고 무뎌진다는 말은 절대 성립할 수 없다.

네 일생동안 절대 똑같은 사랑은 해 볼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은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을 떠나 보낸 심정을 적나라하게 마음에 안겨 준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벌써 진정 사랑한 사람을 떠나보낸 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든다.

그 이를 잊기 위해,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했던 그 모든 방법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나의 마음은 늪과도 같다.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숙히 빨려들어간다. 저 심연의 슬픔 속으로.


너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길은

어느새 나를 추억의 장소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또 눈물짓게 한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너를 피한다고, 잊는다고 서둘러 걸었던 그 많은 지름길들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너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이 시는 사랑을 잃었을 때의 아픔을 겪는 과정 그 자체다. 네이트판의 '헤어진 다음날' 게시판을 매일이고 들여다보고, 슬픈 노래 즐거운 노래 다 들어보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헤어진 애인을 잊는 법'을 전부 다 해봐도 결국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드는 생각은 네 생각일 뿐이다.


결국 그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단 하나다.

많은 술집의 개똥철학자들이, 소주 한 잔을 부어주며 어깨를 토닥이며 하는 그 말이다.

그저 온전히 아파야 한다.

어느 유명한 가수의 노래처럼,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진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전의 사랑에 대해 온전히 아파하지 않음은

당신을 더 큰 아픔을 몰고 간다.

이전의 사랑에 대해 온전히 아파하지 않음은

새롭게 다가올 다른 아픔을 더 힘들게 한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한 사람을 떠내 보냄을

'나의 생애'로 여겨야 한다.

한 생애를 떠나 보내고 다른 생애로 넘어가는 마음으로

이전의 사랑에 대해 온전히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모든 사랑을 하찮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감기는 초장에 잡는 것이 좋고

암세포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사랑이 주는 아픔은

말기까지 온전히 아파하여 그 생애를 끝내면

다음 생애에는 당신을 깨긋하게 낫게 해준다.


온전히 아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