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나는 내 인생에서 인간관계의 '사춘기'였다고 부르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나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극한의 외로움에 시달렸다.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곁에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외로웠다.
그래서 아무런 스스로의 기준도 없이,
누구든 만남으로써 그 갈급함을 조금씩 조금씩 해소하던 바보같은 시절.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내게 반문해본다.
왜 외로워했느냐고, 무엇이 그리도 외로웠느냐고.
그저 지나간 사람을 새로운 사람으로 잊기 위해서였을까.
물론 그 시기를 후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는 내게 여러 사람을 만나게 하며
사람을 보는 눈,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사춘기가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새로운 만남도 외로움을 잊게 해주지만,
외로움 자체도 인생에서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는
반복되는 만남 속의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새롭게 깨닫게 했다.
수선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맹목적인 자기애에 빠져있던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수선화가 되었다.
그에게 그의 사랑을 충족할 수 있는 건 그 자신 뿐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극단적인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물가에
스스로 꽃이 됨으로써
스스로 외롭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 번 상상해본다.
나르키소스에게도 나처럼 인간관계의 '사춘기'가 찾아왔었을까.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잘생긴 외모를 가졌던 나르키소스일 것이기에
상황은 매우 다르겠지만
자신에게 걸맞는 사랑의 대상이 나타나지 않는 그도
나만큼이나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 나르키소스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것일테다.
스스로 그 극단적인 외로움의 소용돌이 안에 몸을 맡긴 것일테다.
물론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써는 나르키소스에게서 단 한 가지 사실은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외로움 속에 몸을 맡기는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걸.
누군가를 만나면 만날수록
내 마음 안에 더 깊숙히 생기는 공허한 외로움.
항상 내 옆에 누군가 있는데도 외롭고
오히려 혼자이고 싶어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는 나의 마음.
나는 오롯이 혼자 지나간 사람을 정리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린 것이었다.
오직 외로움의 해소만 갈구하던 사춘기의 나는
마음 속 이곳저곳에 지나간 사람에 대한 마음을 방치한 채
계속해서 누군가 만나려고만 했던 것이었다.
점점 복잡해지는 마음은
나를 또 다른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상대방을 상처받게 했고
이런 인간관계의 악순환이 이 지속된다는 사실은
사람을 만나는 내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르키소스처럼
나 혼자만의 외로움을 갖는 시간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나를 위해
내 스스로 내 마음을 정리하는
나라는 사람을 위해 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수선화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연못 속의 자신과 사랑에 빠졌던 수선화는
나를 사랑하는 어떤 도인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자신을 바라보던 시인 워즈워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따금 긴 의자에 누워 멍하니 아니면 사색에 잠겨있을 때, 수선화들은 고독의 축복인 내 마음의 눈에 반짝이노라. 그럴때면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노라.
- 워즈워스, <Daffodills>
지금 이 순간에도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을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시간이라고.
울지 말라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이라고.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