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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Dec 09. 2021

한 잔의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영화 <길> (la strada) (1954)

 

 단언컨대, 영화 <길> (la strada)에서 젤소미나를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의 연기를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연기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해도 이를 지나친 찬사라 말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영화 내내 자칫 마임이나 콩트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하면서도, 갓 세상에 나온 순수한 소녀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냄과 동시에 진지한 정극으로서의 연기보다 더 깊고 묵직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보다 더 가엾은 표정을 하고 연신 잠파노를 불러대는 젤소미나의 모습은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녀를 향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연신 툴툴대기나 하는 잠파노(안소니 퀸)는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첫 장면에서 바닷가를 거닐다 그녀보다 먼저 잠파노를 따라나섰던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래사장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달려오는 젤소미나의 모습을 봤을 때부터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54년이다. 대략 잡아도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이 닳고 닳은 영화를 보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글을 쓰고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다양한 영화적 기법과 기술들로 온갖 플롯과 클리셰를 덧바르려고만 하는 작금의 영화들과는 달리, 단순하지만 단단한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진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마을 아낙네에게 젤소미나의 가엾은 죽음에 대해 전해들은 잠파노가 해변에 털썩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미안함과 후회로 얼룩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을 때, 자칫 너무 단순해서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었던 앞의 에피소드들이 이 장면에서 하나의 감정으로 강렬하게 농축되며 보는 이의 마음에 깊은 먹먹함을 남기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 <길>은 이탈리아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영화다. 군웅할거의 시대처럼 우후죽순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플랫치노', '프라푸치노' 등 현란한 커피들을 수도 없이 쏟아내는 세상이지만, 커피만이 낼 수 있는 진정한 깊은 향과 맛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것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가 아닐까. 어디에 쓰일지는 몰라도 길에 돌아다니는 돌멩이조차 쓸모가 있다고 말하는 마토(리차드 베이스하트)의 불후의 명대사처럼 낡고 오래된 영화라고 해서 우리의 시대에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라면, 아마 세상도 쓸모가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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