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카페이스> (1983)
1983년 개봉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스카페이스>는 주인공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상을 갖겠다는 꿈 하나만 가슴 가득 안고 적수공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쿠바 청년 토니 몬타나는 영화 중반까지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룬다. 그리고 종국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잃으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말해두자면, 난 이 영화를 총 세 번 봤다. 두 번은 20대에, 한 번은 30대가 된 최근에 봤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20대 시절의 감상과 30대가 된 내 감상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다.
20대 때, 처음 <스카페이스>를 보고 처음 든 고민은 과연 토니 몬타나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하는 점이었다. 역시나, 세상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한 20대다운 고민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사뭇 자명했다. 토니 몬타나가 자신의 꿈을 이룬 방법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과 '폭력'을 통한 것이었다. 의도와 목적이 아무리 선하고 아름답더라도, 방법이 악했다면 절대 그것은 선이 될 수 없다. 결국 그 시절 내게 이 영화는 악한 방법을 통해 행복을 찾고자 한 어느 쿠바 출신 악당의 비참한 말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나는 조금 더 토니 몬타나를 이해하게 된 듯하다. 알 파치노는 영화 초반 청년 시절의 토니 몬타나와, 마약 조직의 회장이 된 중년의 토니 몬타나를 모두 연기했다. 점점 그가 이룬 거대한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모두를 의심하고 그에 따라 점차 마약에 찌들어가는 토니 몬타나의 모습과, 그것을 표현해 낸 알 파치노의 연기는 그 때도 지금도 감탄해 마지 않는다. (사실 고백하자면, 20대에는 그런 차이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선혈이 낭자한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에 감탄했을 뿐. 하지만 이것 역시 알 파치노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기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냈기에 그 시절의 나는 모르고 지나쳤던 것일 테다.)
그렇지만 그런 알 파치노의 연기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이 두 가지가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바로 그의 눈가에 자리잡은 흉터와, 그의 눈빛이었다. 중년이 된 토니 몬타나는 마약에 찌들어 점점 포악해지고, 힘없이 의자에 축 걸터앉은 모습에서는 청년 시절의 냉철함과 총명함을 잃은 듯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보니 그의 눈은 여전히 총명히 빛나고 있었음을. 그러자 그저 악인처럼 보였던 영화 내에서 토니 몬타나의 모습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20대에는 그에게서 옳지 못한 방법으로 출세가도를 달려 가는 무뢰배의 모습을 봤다면, 이제는 어렵게 도착한 기회의 땅에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남고자 했던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무너져가는 영화 후반부의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그의 눈빛이 살아있음을 느낀 건 토니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엘비라, 매니와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토니는 엘비라와 말다툼을 하다 결국은 저녁을 엉망으로 만들고 식당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뒤 그곳을 나오며 멋지게 차려입고 교양있게 식사를 하는 다른 손님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배짱없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너희들이나 나나 다 같은 악인이지만 악행을 감추고, 거짓말할 줄이나 아는 위선자들일 뿐인 너희에게 오히려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악당인 내가 필요했을 거라고. 거짓말 잘 하는 너희들과는 달리 난 모든 순간 솔직했다고.
30대가 된 내게 이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준 어떠한 잔인한 총격전과 살육전보다 더 가슴에 콱 박혀왔다. 마치 토니 몬타나가 영화를 보는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토니 몬타나는 20대의 나에게 너는 얼마나 선한 인간이기에 나를 욕하느냐고. 오히려 인생에 모든 순간에 가식 없이, 거짓 없이 솔직한 내 인생이 너보다 낫다면 낫지 않겠느냐고 내게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한 30대가 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살고 있는가. 토니 몬타나의 삶은 그의 왼쪽 눈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처럼 솔직했다. 많은 이들에게 흉터는 숨기고 싶고 없앨 수 있다면 당장에 지워버리고 싶은 치부일 테지만, 그에게 그 흉터는 그가 살아온 삶이었다. 그에게 그 흉터는 앞으로 그가 살아갈 인생에 대한 자신의 태도이자, 지향점과도 같았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렇다 할 흉터나 잡티 없이 깨끗한 내 얼굴보다 더 숭고한 것이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그가 한 악행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이 영화를 세 번째 감상하며 내가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토니 몬타나는 '솔직함'을 무기로 세상을 가졌지만, 결국 그 '솔직함' 때문에 세상을 잃었다는 것이다. 청년의 토니 몬타나에게 세상을 가진다는 것은 거대한 꿈이었지만, 중년의 토니 몬타나에게 그가 가지게 된 세상은 호시탐탐 그것을 노리는 누군가로부터 지켜야만 하는 거대한 짐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러한 세상을 그는 매순간 솔직하게 대했고, 결국 그것은 시간 속에서 높이 올랐다 결국 꺼져버리고 마는 한 번의 파도일 뿐이었다.
결국 영화 <스카페이스>가 내게 전하려는 메세지는 인생을 대함에 있어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을 테다. 관 뚜껑을 덮어야만 비로소 그 사람의 삶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개관사정'이라는 말처럼, 한 사람의 삶은 타인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굴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내 삶의 굴곡을 남에게 쉽게 평가받기 싫은 것처럼, 나도 타인의 삶의 굴곡을 쉽게 평가하면 안된다. 토니 몬타나에게 '세상'이 지닌 의미처럼 내가 이룬 것도, 내가 잃은 것도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과, 인생을 대한 내 태도는 영원히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토니 몬타나의 그 눈빛과 상처 입은 얼굴(Scarface)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