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는 지금까지 봐온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들과는 달랐다. <에일리언>, <인디펜던스 데이> 등 많은 영화에서 외계인은 침략자였다. 지구를 정복하러, 인류를 멸망시키러 온 악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의 논법에 관객들은 100% 공감했다. 왜였을까? 벌레를 연상시키는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인류보다 몇 배는 더 진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물론 저 이유들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이다. 저들이 왜 지구를 찾아왔는지 모른다.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는 인간에게 굉장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해외 도시 한복판에 혼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라. 이 영화에 빗대어 UFO 외계인 소굴 안에 혼자 들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외계인의 총에 맞아 죽는 것 이전에 더 원초적인 공포감이다.
Why are they here?
<컨택트>는 바로 그 원초적인 것에 집중했다. 저 이방인들이 왜 지구를 찾았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영화다. 전형적인 외계인 영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 대답은 자명하다. 지구 정복. 그런 영화들에서 이유는 중요치 않다. 외계인들을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몰아내고 지구를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컨택트>는 그보다 더 신선한, 어쩌면 최초인 듯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더 철학적인 질문으로 그 원초적인 이유를.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12개의 괴우주선이 지구를 찾는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18시간마다 문이 열릴 뿐. 그저 평화롭기만 한 외계인들에 비해 바쁜 건 인간들이다. 사실 인간들에게 외계인들이 지구를 왜 찾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뉴스는 벌써 그들의 침공을 걱정하고, 위험에 대비한다. 당국은 기본적으로 외계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알고자 팀을 꾸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언어학자 루이스가 등장한다.
이름이라는 인간의 방식을 벗어던지고, 루이스는 본인의 존재 그 자체를 헵타 포드들에게 노출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소개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 보는 이와 으레 자기소개라고 주고받는 이름, 나이, 취미 등등의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말들로 인해 우리는 그를 안다기보다 오히려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언어가 오히려 소통보다 편견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언어를 소통과 이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물이다. 이는 외계인과 대화하기 위한 팀을 꾸리기 위해 찾아온 웨버 대령과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루이스가 일을 맡기를 주저하자 다른 후보인 저명한 언어학자를 찾아 떠나는 웨버 대령에게 루이스는 말한다.
"그에게 물어보세요. 산스크리트 어로 전쟁이 뭔지, 그 어원이 뭔지."
다른 언어학자를 만난 웨버 대령은 다시 루이스에게 돌아오고 이번엔 웨버 대령이 루이스에게 묻는다.
"가비스터, 다툼이라더군요. 당신은?"
"더 많은 암소를 원한다."
사실 이것이 루이스가 외계인과 대화할 적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다른 언어학자가 단순히 '가비스터'라는 말, '다툼'이라는 사전적인 정의에 집착할 때 루이스는 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답을 내놓았다. 진정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이해해야만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소쉬르가 말한 랑그와 파롤의 개념에서 본다면, '사전적으로 공인된 정형의 언어'를 의미하는 랑그가 아닌 '발화자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동반된 언어의 특수성'을 의미하는 파롤에 더 가깝다. 그녀는 미국 몬타나 주에 있는 외계인 '헵타 포드'와의 소통을 책임질 언어학자로 선발된다. 지금까지 군은 여러 번 쉘(헵타 포드들이 타고 온 우주선)을 드나들며 헵타 포드와 여러 번 만났다. 하지만 당연히, 외계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혜성처럼 나타난 루이스. 그녀가 가진 언어학적 철학은 외계인과 첫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사실 루이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군 당국은 헵타 포드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헵타 포드들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만을 낼 뿐 인간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거대한 방호복을 뒤집어쓴 채 여차하면 쉘을 공격할 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외계인의 언어를 그저 인간의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과 소통할 수 없었다.
루이스 역시 처음에는 스케치북에 'HUMAN' 'LOUISE' 등과 같은 글씨를 써 보여주며 본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헵타 포드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헵타 포드들과의 대화 시도는 루이스가 처음으로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외계인들 앞에 진정 자신을 드러내 보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름이라는 인간의 방식을 벗어던지고, 루이스는 본인의 존재 그 자체를 헵타 포드들에게 노출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소개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 보는 이와 으레 자기소개라고 주고받는 이름, 나이, 취미 등등의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말들로 인해 우리는 그를 안다기보다 오히려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언어가 오히려 소통보다 편견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루이스가 랑그보다 파롤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기에 이 대화가 가능했다. 아무리 우리 사이에 정형화된 '랑그'를 외계인에게 표현해봤자, 아무런 소통을 할 수 없다. 발화자의 특수성 즉, 나라는 존재 자체, 파롤을 그대로 보여준 루이스가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헵타 포드 어였다. 극명히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형태를 띠는 헵타 포드 어는, 언어를 넘어 우리에게 많은 인문학적인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선형 철자법을 사용한다. 아직 4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인류는 철저한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다. 그로 인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문자가 뜻이 아닌 음을 나타내는 표음 문자를 사용한다. 인간도 물론 표의문자를 사용했지만 대부분 고대의 문자들이 그러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중국의 한자가 그렇듯이. 인간의 문자는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발전해왔다. 대조적으로, 헵타 포드들은 원형으로 된 비선형의 철자법을 사용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지 않고 한꺼번에 둥근 원 형태로 그 의미가 전달된다.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존재들인 것이다. 영화 초반 헵타 포드들이 냈던 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표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표의 문자를 문명의 발전 초기에 사용한 미개한 문자라고 으레 생각한다. 고대인들의 상형 문자보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표음 문자가 더 진화된 언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잣대였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역사를 보았다. 인간의 역사는 미개한 사회에서 발달된 사회로 나아가는 일대기였다. 사실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서 생각하면 미개와 진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표의 문자를 쓰는 집단과 표음 문자를 쓰는 집단이 존재할 뿐이다. '언어'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미개'와 '진화'라는 색안경을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이는 웨버 대령과 루이스가 나누는 '캥거루'에 관한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겠다는 루이스의 주장에 웨버 대령은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며 반대한다. 그때 루이스는 캥거루에 관한 일화를 꺼낸다.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다니는 동물을 가리켜 'what's that?'이라고 물었던 제임스 쿡 선장. 그에게 캥거루라고 대답한 원주민들. 그것은 그 동물의 이름이 아니었다. 'I can't understand.'라는 뜻이었다. 오해의 소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서로가 공유하는 어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게 루이스의 주장이었다. 그때 웨버 대령은 영국에서 온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이야기 결말에 대해 말한다. 미개한 종족이 결국 진화한 종족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이는 인간이 가진 미개와 진화의 프레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모르고,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면 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우월하다면 상대방을 지배하려 들고, 내가 더 미개하다면 우월한 상대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가 흐르는 원리였다.
루이스는 우리를 사로잡는 '언어'의 잣대를 집어던진다. 진정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헵타 포드 어'와 그들이 지구에 온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헵타 포드 어가 시제의 구애를 받지 않는 비선형의 문자를 사용하듯이, 미래와 과거를 넘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헵타 포드 어를 통해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사실 이 영화는 지극히 헵타 포드의 문법으로 구성된 영화다.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형이 아닌 비선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을수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영화 첫 장면에서 루이스는 사랑하는 딸 한나를 잃는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딸을 잃고 상심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장면은 루이스의 미래였다. 영화 내내 루이스를 도와서 함께 헵타 포드들과 소통해 온 물리학자 이안은 루이스의 남편이었다. 루이스는 헵타 포드들과 인간 사이의 전쟁을 막은 영웅이 되고 이안과 결혼해 한나를 낳은 것이었다. 분명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헵타 포드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시간의 순서로 이 영화를 감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루이스는 다시 한번 선택할 수 있었다. 이안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미래에 그 딸은 죽는다.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 루이스는 지금 이 순간에 이안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딸 한나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쟁 직전에서 중국 장성을 설득해 헵타포드 공격을 막은 후 루이스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이안. 루이스는 또(사실 또라는 말을 쓰는 게 맞지 않다.) 이안과 결혼해 딸 한나를 낳는 결정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처음에 나온 그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돌고 도는 것이 마치 외계인의 원형 문자 같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루이스의 딸의 이름 'Hannah'와 같다.
사실 루이스는 헵타 포드 어를 이해하며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것에서도 해탈했다고 볼 수 있겠다. 후회와 원망은 시간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들의 유물일 테니 말이다. 후회에서 벗어나 진정 사랑하는 딸 한나를 만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루이스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미래의 장면에서 루이스와 이안은 결국 이혼한다. 둘이 이혼한 이유는 루이스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루이스의 그 말. 아직 루이스와 달리 시간의 굴레 속에 갇혀 있는 이안은 루이스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딸이 그렇게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하지만 루이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소중한 딸을 만나는 것이 그녀의 운명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너무나 많은 과제를 관객들에게 남긴다. 어쩌면 살면서 우리는 진정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해 본 일이 있었을까.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타인을 알고, 나를 알리려하기 보다는 서로 언어라는 벽 뒤에 숨는다. 진짜 의미를 언어라는 상자 속에 숨긴 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한다. 인류 역사상 벌어진 많은 전쟁, 싸움들도 대부분 이러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언어와 소통을 통해 이 영화는 우리네의 '인생'에까지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과거는 항상 후회와 아쉬움의 연속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그 후회를 시간의 의미 속에서 되새겨 볼 수 있었다. 과거의 어떤 일에 아쉬움을 곱씹기보다는, 그냥 지금 내 앞에 일어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시간과 언어에 종속되지 않고 나라는 본질의 특수성을 찾으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헵타 포드들과 루이스처럼.
물론 쉽지 않다. 우리에게 언어 없이 산다는 것은 사회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방호복을 벗어던진 루이스의 모습처럼 항상 마음속에 '진정 상대방과 소통하는 법'을 새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언어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진정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소통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언어야말로 목적이 아닌 수단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과연 그들은 왜 지구에 왔을까? 영화에서 헵타 포드들이 말하는 그들이 지구를 찾은 이유는 조금 아리송하다. 지금 인류를 도와 3000년 뒤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니. 3000년 뒤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 헵타 포드들과 만난 우리는 분명 도움을 받았다. 분명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