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두 민낯,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사랑

영화 <Worlds Apart> (*한국제목 : 나의 사랑 그리스)

by 정주원
정말 사랑할 때면 내 옆의 사랑하는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진정 사랑할 때 우리는 이타적이게 된다. 이게 사랑의 힘이다. 사랑에 괴리한 듯 보이는 힘들고 암울한 현실은 어쩌면 이기적인 사랑들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이타적인 행위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의 태곳적 목적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그곳엔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 똑같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내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된다. 사랑하는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린 궁극의 행복을 체험한다.

하지만 사랑에는 이기적인 사랑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누군가를 아프게도, 심지어 죽이게도 한다.

일찍이 이렇게 꺾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안 고대의 그리스 인들은, 사랑을 신으로 만들었다. 사랑의 신 에로스. 그렇다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그렇게도 사랑이 강력하다면, 어째서 사랑은 완벽하지 않은걸까.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신과 인간은 같은 가이아에서 잉태된 존재다. 족보로 보면 인간과 신은 동족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를 보면 신들도 지극히 감정에 휘둘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영화 <Worlds Apart>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도 그렇다. 신들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그리스이지만, 그 곳이 처한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그들에게 닥친 경제 위기와, 그에 따른 정치 불안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런 그리스에서 펼쳐지는 영화 <Worlds Apart>는 그 제목처럼 국적이 다른, 세대가 다른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이 영화는 <러브 액츄얼리>처럼 사랑 넘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는 아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낙원과도 같은 그곳의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시궁창이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러한 현실에 맞서는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인 부메랑의 두 주인공인 다프네와 파리스. 시리아 난민인 파리스는 괴한들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한 다프네를 구한다. 이후 계속해서 같은 장소에서 다프네와 파리스는, 버스의 안과 밖에서 창문 너머로 우연히 계속 마주친다. 버스의 창문은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순수한 20대 청춘이다. 창문 정도의 벽이라면 깨버릴 수 있다. 어느 날 파리스는 버스에 올라타 통성명을 하고, 둘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더 거대한 벽이 있다. 바로 다프네의 아버지인 안토니. 안토니는 그들이 아니어도 이미 피폐한 자신들의 삶을 좀먹으려 하는 시리아 난민들을 증오한다. 안토니는 가족들 몰래 시리아 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필그림'이라는 비밀 폭력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프네는 아버지 몰래 파리스와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사는 그리스의 폐공항에서. 어느 날 안토니는 폐공항의 시리아 난민들을 소탕하기 위해 그곳을 찾게 되고, 다프네와 파리스와 대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첫 번째 이야기를 끝맺지 않은 채 아리송하게 매듭지어 놓고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 이것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 <부메랑>인 이유일 것이다. 손에서 떠난 부메랑은 과연 어떻게 돌아오게 될까.



두 번째 이야기 '로제프트 50mg'는 지오르고와 엘리제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삶에 찌들어 순수함을 잃어버린 40대들이다. 각 세대의 사랑이 어떻게 현실과 대면하는지 관찰해보는 것도 이 영화를 음미하는 좋은 방법이다. 심각한 경제 위기에 불안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오르고는 아내가 박박 긁는 바가지를 견디지 못한다. 아내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계속 그를 괴롭힌다. 그는 항우울제인 로제프트를 매일 복용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오르고는 그리스를 찾은 스웨덴 여성 엘리제와 하룻 밤 사랑을 나눈다. 사실 지오르고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 하지만 답답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사랑은 사치일 뿐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엘리제는 지오르고의 회사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보내 온 그의 직장상사였다.

엘리제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이라는 위기에 처해 사랑을 잃어가는 인간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엘리제는 인원 감축을 위해 인정 없이 직원들을 해고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빛을 잃어가고, 오직 '생산성'이라는 말로만 규정된 것이 지금의 그리스가, 또한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냉철한 북구인의 이성을 지닌 엘리제는 그에 완벽히 적응한 인물이다. 그녀의 집 앞 숙소에서는 매일 그리스 사람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하지만 오직 일만이 중요한 엘리제에게 그것은 소음일 뿐이다. 소음에 항의하는 그녀의 모습은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런 와중에 지오르고는 그녀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린다. 나와 사랑을 나누자고.

그녀의 숙소 앞에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또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녀의 숙소 앞집 옥상에서는 매일 영화를 상영한다. 자세히 보면 그 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처음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메트로폴리스>로 바뀐다. 지오르고와 엘리제가 나눈 하룻밤의 달콤한 사랑이 환상과 마법의 <오즈의 마법사> 같았다면, 냉혹한 현실 속에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놓여진 그들의 모습은 <메트로폴리스>의 일하는 기계와도 같은 노동자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두 사람이 엘리제의 숙소에서 밀린 일을 하는 장면도 이런 대비를 잘 보여준다. 일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그러다 지오르고가 노트북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벽을 넘어서 침대로 올라가 엘리제를 안는다. 복잡한 그들의 상황이 이 한 장면으로 확연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현실 속에 지오르고와 엘리제는 점점 멀어져 간다. 지오르고의 직장 동료 오디세아의 사건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오디세아는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고, 지오르고에게 본인을 자기 부서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오디세아가 지오르고에게 아내의 임신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서글픈 현실을 잘 반영한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사랑의 아름다운 결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결실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디세아는 중절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마냥 다른 나라의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에 이 장면은 더 서글프다. 지오르고는 고민 끝에 엘리제에게 부탁까지 하지만, 결국 엘리제는 오디세아를 해고하고, 오디세아는 자살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지오르고와 엘리제의 관계 마저 끝나게 만든다.

그리고 엘리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명 이성적으로 해야 할 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그녀는 했을 뿐이다. 지오르고를 통해 엘리제의 마음에 그녀도 모르게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본사의 직원들은 아직도 인원 감축이 많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종용한다. 하지만 엘리제는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는 그녀의 일을 견디지 못한다. 지오르고가 환청을 듣는 것처럼, 엘리제도 본사 직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환청을 듣는다. 이제는 그녀가 로제프트를 찾는다.

분명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말했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사랑이 모든 걸 바꿀수는 없다고 믿던 그녀는, 그리스에서 점점 마음이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SECOND CHANCE>의 주인공은 장년의 두 남녀다. 결혼해 자식들을 다 키운 어머니 마리아. 팍팍한 삶 속에서 그녀의 삶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런 그녀에게 독일에서 온 퇴직교수 세바스찬이 나타난다. 서로가 처한 현실이 너무 달라보이기에, 마리아는 세바스찬을 팔자 좋은 독일인으로 여긴다. 하지만 계속 마리아를 만나며 세바스찬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하며 호감을 표시한다. 인생의 황혼에서 두 남녀는 다시 순수함을 어느 정도 되찾는다. 물론 현실은 아직까지 아프지만, 지오르고와 엘리제처럼 그 현실이 무겁지는 않다. 인생은 아기로 태어나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세바스찬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던 그녀에게 책을 선물하고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랑을 하기엔 너무 늦은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리아에게 세바스찬은 사랑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그렇게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맞는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앞의 두 이야기는 부메랑처럼 반전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리스 인인 안토니와 다프네, 지오르고와 마리아는 모두 한 가족이다. 이 영화는 종반까지 이들이 가족임을 숨긴다. 사실 그들은 겉으로만 가족일 뿐, 서로가 서로를 속인다.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무언가 숨기는 것이다. 다프네는 파리스를 만나고 있음을 어머니 마리아에게만 말하며 아버지 안토니에게 숨긴다. 또 지오르고는 아내와 이혼하고 싶음을 아버지 안토니에게만 말하고 가족들에게 숨긴다. 또 마리아는 세바스찬이 선물한 책을 읽다가 남편 안토니가 들어오자 후다닥 책을 숨긴다. 사실 그들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어찌 보면 사랑 때문이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실 그들이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시궁창같은 현실도 어찌보면 이기심과 이타심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사랑이었다.


그리스어 '사랑'의 어원은 갈등, 다툼과 우정, 결합 이 두 의미 모두에서 발생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다. 사랑은 선악을 초월하여 발생한다는 것. 아버지 안토니의 모습에서처럼 악도, 이기심도 사랑에서 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등과 다툼에서 발현한 이기적인 사랑도 인정해야 하는걸까.

그렇지 않다. 이기적인 사랑은 사랑을 변명 거리로 이용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사랑의 이름으로 악에 맞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토니는 그런 사랑에 집착한 끝에 난리통이 된 폐공항에서 딸 다프네를 잃는다. 그것도 시리아 난민이 아닌 안토니의 동료가 쏜 총에 맞는다. 엘리제가 직원을 감축하는 이유도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 회사를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오르고가 그녀를 떠난 것일테다.


'SECOND CHANCE'라는 말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번째 기회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인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세 에피소드 모두를 관통한다. 다프네와 파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고, 엘리제가 그리스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에서 읽었던 잡지 글의 내용도 에로스와 프시케에 관한 이야기였다. 에로스는 현실 속에 계속해서 의심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프시케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들은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힘든 현실에 처한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회복해야 하는지 스스로 길을 제시한다. 안토니는 시리아의 난민들에게, 엘리제는 그녀가 해고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어야 했다. 믿고 사랑해야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란 바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에로스와 프시케는 그 기회 끝에서, '플레져'를 낳았다.'이기심'이 아닌 '관용'에서 발현한 사랑은 기쁨을 낳는다.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이 세 남녀의 국적을 다르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인간이라는, 서로 다른 소우주의 결합을 시각화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지오르고는 스웨덴 사람들은 차가운 사람들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하고, 마리아는 세바스찬에게 독일인이 뇌물도 주냐며 그들이 가진 편견을 말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남녀가 각자의 언어를 배우는 모습은, 이런 편견을 버리고 사랑을 나누려는 그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 이야기를 실로 연결하듯 세 이야기에서 모두 등장하는 그리스의 종교 의식도 화합에 대해 말한다.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 사랑을 부정한 안토니는, 아내도 딸도 모두 잃었다. 아내는 세바스찬과 두 번째 사랑을 시작했고 딸은 죽음을 맞았다. 엘리제는 지오르고를 공항에서 마주치고도 그와 재회하지 못한다. 이제 그녀에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자격이 없었으니까. 구태한 현실의 편견때문에, 그들에게 온 두 번째 기회를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이타적인 사랑을 하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이기적인 사랑은 우리가 사랑에 괴리한다고 말하는 그런 암울한 현실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은 현실에 괴리한다고 말한다. 현실 속에서 사랑은 허울 뿐인 망상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팍팍한 현실 속에 사랑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사랑의 이타심은 현실에 상처받는 우리에게 위로의 치료제가 된다. 그 허울 뿐인 것에 그래서 우리는 매달리고, 그 사랑의 힘 앞에 그 이기적인 힘을 잃는다. 이기적인 사랑만 존재했던 안토니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비틀즈도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르짖은 것이리라.

정말 사랑할 때면 내 옆의 사랑하는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진정 사랑할 때 우리는 이타적이게 된다. 이게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All you need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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