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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y 31. 2017

권력 대신 사람을 얻은
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노무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


한 남자가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건넨다. 

 노래를 흥얼대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의 소탈함이 가득 배어 나오는 말투는 뒷모습뿐이지만 그 음성에서는 충분히 사람 냄새나는 미소를 상상할 수 있다. 

 그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와 사뭇 다르다. 반가워하는 이도 있지만 세상살이에 허덕이고 바쁜 사람들에게 그의 인사는 그닥 반갑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경계되기 까지 한다. 주는 거 없이 실실 웃는 사람 조심하라는 옛말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려는 그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간절함이 느껴진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중 '노무현'을 모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이 영화가 내건 슬로건처럼 그는 누구나 알지만 누군지 몰랐던 사람이다. 우리는 힘든 시대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만 노무현을 바라보았으니까. 우리들은 불통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의 화점에서 우리는 노무현을 보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촛불 안에서 그를 보았을까. 사람들이 회자하는 것처럼 그가 우리가 보았던 가장 인간적이고, 사람냄새 나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인간답다', '사람냄새 난다'는 건 무엇인가. 뭐가 사람다운 것일까. 지금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하는 노무현의 인간미는 무엇일까.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정말 인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바라본 노무현의 인생은, 단단한 바위를 깨기 위해 쉼없이 던져진 계란과도 같다. 젊은 시절 그가 쥔 계란은 가난이라는 단단한 바위를 향한 것이었다. 출세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고졸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여기까지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흔한 성공 스토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을 조명한 또 다른 영화 <변호인>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노무현은 선택할 수 있었다.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고, 출세하고 싶었던 그가 쉼없이 던진 노력이라는 계란. 고졸 출신의 별볼일 없는 그의 사법고시 합격은 강력한 바위에 균열을 가한 것이었다. 거기서 그는 그 단단한 바위의 일부로 흔적 없이 스며들 수도 있었다. 다수의 민중들 위에 군림하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더욱 더 출세 가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바위가 되는 것은 죽은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스스로 '계란'이 되기로 선택했다. 가난하고 빽 없는 자의 설움을 아는 그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었다. 그는 권력을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기를 거부했다. 위에 서기보단, 모두와 함께 가고 싶었다. 그는 힘 있고 빽 있는 소수들이 자신들의 바위를 더 공고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낸 지역 감정, 색깔론, 음모론을 향해 다시 한 번 계란을 움켜쥐었다.  


 영화는 그런 노무현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 경선 과정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바위를 깨뜨리기 위한 계란의 여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정적들로부터 치사하다 못해 더럽다 느껴질만큼 치졸한 공격들을 쉴 새 없이 받는다. 똑같이 되갚아 줄 수 있음에도, 노무현은 오직 화합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단지 권력만을 향한 욕망이 아닌 그의 호소에,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단지 노무현이 좋아서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의 옆에서 함께 '노무현입니다.' 라고 함께 말해준다. 점심도 거르고 일하는 그들에게 혹자는 돈을 얼마나 받기에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영화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나도 알고 싶어졌다. 도대체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이렇게 끌어당기는 건지. SNS도 없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오직 돈만이 모든 것을 말하던 시절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인지.  

 

 대한민국에 태어난 우리는 '입신양명'의 꿈을 은연 중에 머리 속에 각인한다. 이 땅에서 우리는 출세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배워 왔다. 유교 사회에는 정승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입신양명이 되었다. 우리는 가난을 딛고 주경 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무용담을 듣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도 노력하여 누군가의 앞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우리 사회는 꼭 누군가보다 '잘 날 수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 다수의 약자와, 소수의 강자를 동력으로 하는 거대한 엔진이다. 

 그래서일까.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난 잘 살고 싶어 이만큼 노력했는데, 노력하지 않은 자들과 과실이 같은 것은 억울하다는 것. 내가 노력한만큼 가져가는게,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이치라고 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의 징징거림일 뿐이라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잘 살고 싶어하는, 노력한 자 옆에 기생하려는 그런 사람들이 이기적인게 아니냐고. 


  하지만 난 우리 모두가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성공과 실패라는 가림막이 순수한 노력의 모습을 감춰버렸을 뿐이다. 우리는 성공한 자만이 노력한 것이고, 실패하고 도태된 자들에겐 너무도 쉽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물론 노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100% 성공과 실패가 노력의 가치를 가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은 분명하게 말한다. 진정 성공한 자는 멋대로 도태되거나 실패한 사람들의 노력의 가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력 여하에 관계 없이 실패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기에, 그렇게 가혹한 세상이기에 성공을 거머쥐고도 우쭐하지 않고 고개숙일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손잡고 더불어 살아야 하며, 그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노무현은 '바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던진 계란에 어느새 바위는 노랗게 물들었다. 그렇게 노무현은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대통령이 되었다는 의미는 권력을 얻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의미였다. 누구보다 국민을 섬기고, 낮은 곳에 임하고 싶었던 그가 그렇게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취임식 카 퍼레이드에서 자동차 선루프 위에 올라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그의 국민장 장례식의 영구차로 오버랩된다. 다시 한 번 노란 물결이 온 서울광장을 뒤덮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담담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는 유서의 그 말도 고되었던 그의 인생의 깊이를 절대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사람들에겐 너무도 애석했다. 그 애석함 때문에 조문객들은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에도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하늘도 그렇게 조문객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장면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도 눈물짓게 했다.



 꼭 누구보다 잘 살아야 하는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바위는 노랗게 물들었을 뿐 아직까지 깨어지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유시민 씨가 말했던 것처럼 노무현이 만들어 낸 첫 파도는 결국 끝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의 머리 속에 심어주었다. 그의 인생을 통해 '함께'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도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한 평생 노력이 담긴 그의 인생은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좋은 시절을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좋은 시절이 다 지나고 나서야 그 때가 좋았음을 알았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시련의 계절 속에도 함께 촛불을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촛불의 화점에서 보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호탕한 웃음이 다시 한 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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