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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un 02. 2017

You may say I'm a Dreamer

다큐 <우산혁명, 소년vs제국>

 

 

 학교에서 돌아와 밥을 먹으며 어머니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 14살의 어린 아이는, 어머니 대신 수많은 군중들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전 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민주주의를 얻으려 싸웁니다.

 

  이 아이는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민 혁명, '우산 혁명'의 선두에 있던 시민 운동가 조슈아 웡이다. 이 어린 시민 운동가는 친구들을 모아 '학민사조'라고 하는 학생 단체를 설립하면서 꿈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학민사조'는 홍콩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오직 중국에 대한 애국심만을 고취하려는 중국 당국의 교육 방침에 반대하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정부청사의 광장을 점거한다. 처음엔 마냥 반항하고 싶은 사춘기 어린이들의 귀여운 해프닝처럼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일은, 무려 4천명 이상의 홍콩 사람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낸다. 결국 홍콩 당국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민 교육 정책의 시행을 각 학교의 재량에 맡기는 것으로 한 발짝 물러선다.


 사회의 주류나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회계사나 의사, 혹은 투자 은행의 관리부 수습 직원이 된다면 성공하는 거고 멋진 미래가 펼쳐진다고요. 하지만 전 성공이 뭔지 사회에 묻는 대신 무엇이 제게 가치 있고 사회에 중요한지, 왜 제가 정할 수 없는지 묻고 싶어요.

-Joshua Wong

 '우산혁명'의 뼈대는 홍콩의 중심 지역인 '중환'을 점거함으로써 민주화의 열망을 외치자는 베니 타이 홍콩대 교수의 <중환점령>이다. 중국 당국이 홍콩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행정장관'의 후보를 임의로 정하고, 그 안에서 투표를 하게 하려 하자, 이에 저항코자 계획된 것이다. 자치권을 주는 척 하며 홍콩에 권위주의를 심으려는 중국의 행보에 홍콩 시민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이미 한번 사회 운동에 성공한 조슈아와 <학민사조>는 이 민주화 혁명의 물결에 동참한다.


 <학민사조>에서 활동한 조슈아와 친구들은 분명 어린 아이들이었다. 중국 당국을 다스 베이더, 이에 저항하는 자신들을 제다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아이들이의 성공이 그저 놀랍기만 해야 할까. 조슈아의 성공에는 개인적인 영특함 외에도 외적인 도움이 분명히 있었다. SNS의 보편화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뜻을 모으는 것을 좀 더 용이하게 해줬다. 쉽게 말하면, 작은 외침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을 거대한 물결로 만들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어른들과 언론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고 야무지게 말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홍콩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다큐를 보는 우리는 단순히 어린 소년의 당돌한 모습에만 집중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소년이 '우산 혁명'이라고 하는, 홍콩 최대의 민주화 혁명을 주도했다는 것에 그저 놀라기만 해서는 안된다.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소년의 용감한 행동에, 기꺼이 함께 소년과 소녀가 되어준 홍콩 민중의 모습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


 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 '단단해져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꿈을 간직하고 살았다. 물처럼 어디든 흘러갈 수 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점차 커가며, 어른이 되가며 우리는 점점 단단해진다. 풍파를 겪으며 만만치 않은 세상에 상처받고, 그것들은 액체를 점점 단단한 고체로 만든다. 단단해진 어른은 이제 왠만한 일에 상처받지도 않고 덤덤해질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덤덤해졌다는 것은 희망을 잃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중요하다. 무언가 불평하고 저항하는 어린이들의 말은 성가실 뿐이고, 그저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오는 한 때의 반항일 뿐이다. 아직도 마음 속에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몽상가로 치부한다. 어느 순간 몽상가들도 꿈을 꾸는 게 나 혼자 뿐이란 생각에 꿈을 버리고 어른이 되어버린다. 꿈과 희망은 그렇게 의식 속에서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소년이 사라진 사회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다.


 자신의 세대, 나아가 다음 세대까지 걱정하는 당돌한 소년의 등장에 홍콩 민중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루하루 삶을 버텨내기 바쁜 어른에게 민주화란 말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저 어른의 시각에서 홍콩 사람들이 조슈아를 바라봤다면, 조슈아가 여기서 그저 자기가 1인의 몽상가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면, 아마 조슈아는 희망을 잃고 그저 어른이 되어갔을 것이다.  언론 과 민중 앞에 선 소년의 진심 어린 호소는 어른의 마음 속에 있던 소년을 깨웠다. 그들이 살아갈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소년을 깨웠다. 그리고 12만명의 홍콩 시민이 기꺼이 거리로 나와 서로 손을 맞잡고 우산을 펼쳤다. 경찰 당국의 최루탄에 맞서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특히 소년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우산을 펼쳤다. 어른들이 소년들의 손을 맞잡고 함께 소년이 되어주었을 때, 함께가 되었을 때 희망의 불씨는 활활 타올랐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을 꼽자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립 가능성이다. 민주주의에 따르면 그 나라에 사는 모든 국민은 그 나라의 주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을 줄세운다. 돈을 잘 버는 사람과 돈을 못 버는 사람으로 세상을 양분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이겨야 할 경쟁의 대상으로 만든다. (사실 이 다큐에서 우산혁명은 권위주의적인 공산 정권인 중국 당국에 항거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현실이라면, 민주주의는 꿈같다.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돈인 것 처럼 보인다.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고, 그 속에서 우리는 꿈을 잃고 어른이 되어 간다.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생활이 아닌, 돈이 중심이 되어가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한 커트에 등장한 거대 천막의 문구였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에요.'


 불세출의 뮤지션 존 레논의 대표곡 <Imagine>의 가사 한 구절.

 우산 혁명은 결국 실패했지만, 조슈아와 <학민사조>의 친구들은 꿈을 꺾지 않고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슈아는 선거 출마가 가능한 나이가 되는 2020년에 입법회 의원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홍콩 민중들은 소년의 꿈을 꺾지 않았다. 계속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더라도, 소년이었던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꿈과 희망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불의에 맞서 촛불을 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계속해서 스스로 주인이길 원한다면 우린 모두 몽상가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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