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사랑

<나의 눈으로 본 하루의 단상 1>

by 정주원


"아따 할망구 걸음 한번 빠르네. 뒤에 개가 쫓아오는가 뭐 그리 급해."

"......"

"이 망할놈의 할망구 남편이 말허는데 듣는 시늉도 안허네."

"......"

"아이고 좀 천천히 가!"

"참말로 징허구마잉 이 화상. 열심히 운동한담서. 그럼 여러 말 말고 잠자코 걸을 것이지 세 걸음에 한 번씩 앓아 쌓고 아주 그냥."

"운동은 니기럴, 생전 안하던 운동인지 헌다고 만날 천날 아침마다 나다니길래 밖에 뭔 꿀을 발라놨나 혀서 좀 나눠묵을까 하고 나왔네."

"꿀 같은 소리 허고 앉았네. 동네 남사시럽게 옷 색깔은 왜 맞춰입고 나와가지고. 저리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으쇼잉, 정신 빠진 화상 한 놈 델꼬 댕긴다고 동네 소문낭께."

"하여간 망할 놈의 할망구 모르는 소리. 이래야 다 노인네들이 젊게 사네, 멋지게 사네 하는 거여."

"......"

"아주 뭐, 개가 짖는 구만."

"아따 말 시키지 마쇼 참말로. 운동 좀 허겠다는디."


"이거 봐, 이거. 돈 열씸히 벌어가꼬 먹여 살려봐야 다 헛짓이랑게. 늙었다고 이제 남편을 동네 개만도 안 생각하니 워째야 되 이거를."

"하이고, 누가 들으믄 나는 평생 누워서 남편 돈이나 축내고 산 줄 알겄소. 쌔빠지게 집안일에 부업까지 하면서 자식들 다 키워놓은 건 누군디? 술먹고 사람패서 깽값 물어주고, 노름해서 집안 살림 거덜낼 뻔 한거 누가 다 메꿨는디?"

"이거 봐, 이거 보랑께. 망할 놈의 할망구 꼭 얘기만 하면 술 얘기 노름 얘기. 다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꼭 그런 얘기 꺼내야 쓰것는가? 하여간, 좋게 좋게 사는 꼴을 못본당께."

"그러니께 그 먹여 살렸다는 소리좀 하지 마쇼. 그 소리만 들으면 열불 터져붕게."

"그럴꺼면은 왜 델꼬 산대? 확 내쫓아버리면 될거 아녀 미운 서방."

"내가 부처고 내가 석가모니여, 당신 같은 화상을 누구한테 맽겨. 업보겠거니 하고 델꼬 살아야제."

"망할 놈의 할망구. 당신이야 말로 내가 부처고 석가모닌줄 알어. 그런 성깔머리 누가 받어주기나 헌대?"

"......"

"알았네, 알았어. 걷기나 하세."

"......"

"......"

"손이나 좀 줘보쇼."

"손은 왜?"

"노인네 치매가 왔나. 힘들다매."

"남사시러워서 저리 떨어져 걸으라더니 뭔 손이여."

"아따, 싫음 마쇼."

"아이 참말로, 내가 언제 싫다 혔능가."


"......"

"......"


"영감."

"왜?"

"영감은 나보다 먼저 죽지 마쇼. 꼭 나 죽고 난 담에 쫌 있다가 오쇼."

"뭔 봉창두드리는 소리여."

"당신 같은 화상 염라대왕님한테 죄송시러워서 워떻게 맡긴댜. 죄 많은 화상 지옥불에 떨어뜨리면은 당신 거기 가서 또 워떤 깽판을 놓을려고. 내가 먼저 가서 자리 닦아 놓을테니까는 당신은 여 좀 더 있다 오쇼."

"하이고 남말하고 있네 이 망할 놈의 할망구. 당신 성깔머리 보고 염라대왕님 노하셔서 지옥불에 떨어뜨리면 워쩔라고. 내가 먼저 가서 염라대왕님한테 우리 망할 놈의 할망구좀 잘 좀 봐주십쇼, 하고 술이나 한잔 따르고 있을라네."

"그러면 같이 가면 되것구만."

"뭐?"

"서로 먼저 가네 할 거 없이, 같이 가면 되것어."

"할망구 오랜만에 바른 소리 한 번 하네. 그리 되면 원이 없겄네, 원이 없겄어."



"긍게, 당신도 여러 소리 말고 운동 열심히 허씨요."

"긍게, 우리 마누라랑 한시에 죽을라믄 그래야 쓰것네."



노년의 사랑이란,
세월 속에서 서로에게 남긴 헤아릴 수 없는 상처 속에
서로에게 화상, 망할놈의 할망구라는 이름의
부처가, 석가모니가 되는 것.


노년의 사랑이란,
세월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두 부처가
함께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를 소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