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이달>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 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
사전으로 검색한 허영(虛榮)의 정의다. 허영의 영(榮)은 나무(木)에 꽃이 무성하게 피어 아름답다는 의미로 형성된 한자다. 하지만 사실 그 꽃은 비어(虛)있다. '가짜 꽃'이라고 해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꽃'이란 돈이다. 우리는 쉽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노력에 따라, 운에 따라, 다양한 외부적 영향에 따라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빈자가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주목을 받는 사람은 '부자'다. 빈자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발버둥친다. 누군가는 노력이라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꽃'을 피우지만, 누군가는 그 겉모습의 아름다움에만 매혹되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들은 '가짜 꽃'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남들이 나를 부러워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허영심'의 본질이다. 하지만 영화 <종이달>은 내게 '허영심'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했다. 영화 <종이달>의 주인공인 주부 은행원 '우메자와'는 분명 누군가를 돕고 싶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었다. 어린 우메자와는 친구들 모두가 처음에는 열심이다가 다들 시들해졌을 때도 계속해서 불쌍한 해외 아동에게 기부를 했고, 중년의 우메자와는 빚에 허덕이며 대학 등록금조차 내지 못하는 내연남에게 선뜻 돈을 내주었다.
하지만 어린 우메자와의 기부금은 아빠의 지갑에서 훔친 돈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메자와는 이런 행위를 꾸짖는 수녀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는데. 자신의 도움을 받은 어린이가 편지와 함께 보내준 웃고 있는 사진에 행복해서, 정말 순수하게 그 아이를 돕고 싶었던 것 뿐인데. 수녀님은 왜 나를 꾸중하시는걸까.
우메자와는 돈과 함께인 자신을 보며 웃음짓는 내연남의 미소가 좋아서 은행의 돈을 횡령해 그의 등록금과 대출상환금으로 건네주었다. 우메자와는 내연남 앞에서 자신이 부자라고 허세를 부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부담 없이 돈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메자와는 그를 계속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계속 고객의 예금을 빼돌렸다. 그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죄책감은 점점 옅어져갔다.
그래서 였을까. 오히려 우메자와는 맹목적으로 돈을 좇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녀가 원한 것은 누군가의 행복, 그리고 그 행복을 통해 얻게 될 스스로의 행복이었다. 그렇기에 우메자와를 그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뽐내길 좋아하는 단순한 여자로 정의할 수 없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이타심'에서 발현한 허영심이랄까.
분명하게 말해두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허영심'을 옹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했다고 해도, 그녀가 그 이타심을 발현하는 과정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내연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렸다. 정당한 일은 절대 '몰래' 하는 것이 아니다. 몰래 누군가의 것을 훔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결과에서 오는 기쁨에 취하고만 싶었던 그녀는 옳지 못한 과정까지 정당화해 버렸다. 그녀가 쫓은 행복은 '가짜 행복'이었다. 순수한 것인 줄 알았던 내연남과의 사랑은, 내연남의 배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이제 어찌 할 수 없게 된 거대한 횡령금에 대한 책임 뿐이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번 부자들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소문을 통해 접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관심있어 하는 건 그 사람의 돈이다. 돈을 통해 더 윤택해지고 호화로워질 그 사람의 생활을 부러워할 뿐이다. 더 부정적으로 꼬집어내자면, 그냥 '배가 아플 뿐'이다. 그러자면 쉽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자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고 그러면 무리한 대출을 받아가며, 혹은 카드 사용을 남발해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흉내'내고자 하게 된다.
'돈'은 그 노력의 결실이 가장 가시적이다. 노력이 돈을 통해 보상될 때 우리는 가장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자극적이다. 그 자극이 어느샌가 노력의 그림자는 옅어지게 하고, 돈의 그림자만 우리 세계 전체에 드리우도록 만든다. 돈이 만드는 체면과 허세 때문에 와카바 은행의 차장은 연말 실적을 조작하기도 하고, 우메자와의 동료 아이카와는 차장과 내연 관계를 맺고 차장을 도와 가짜 전표를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거대한 사건을 일으킨 우메자와 덕분에 보이지 않을 뿐, 허영과 허세의 유혹은 너무나 쉽게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다.
사실 우메자와와 내연남은 그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도, 어느샌가부터 그 마지막을 걱정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 없음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내연남이 먼저 깨달았고, 우메자와는 내연남이 다시 한 번 바람을 피운 후에도 그에게 계속 해서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며 그를 달랬다. 고객의 돈 만 원을 갖다 쓰고 도로 메꿔 놓으면서도 벌벌 떨던, 순수했던 그녀는 결국 몇 억을 횡령한 후 나중엔 가짜 대출 상품 전단지를 만드는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 그 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도움을 받는 어린 아이의 미소 띈 사진은 내연남과 보내는 달콤한 하룻밤과 같은 것이었다는 걸. 이타심도 결국은 그녀의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종착역은 '허영심'이었다.
"그런 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그 아이들은 모두 기뻐할 거에요."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도 자매님은...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전...그 아이들이 기뻐하는 걸 생각하면...행복해요."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성금을 기부한 리카(우메자와)에게 수녀님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하지만, 아이들도 기뻐하고 나도 기쁘면 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리카. 그리고 횡령 사실을 들킨 뒤, 우메자와에게 스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서 횡령한 건가요? 믿어준 사람을 배신하고, 돈을 훔쳐서 마음대로 쓰고 그게 자유라는 건가요? 분명 돈은 가짜일 수 있죠. 종이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그렇다. 그녀에게 누군가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진짜 '돈'을 가짜처럼 사용할 권리는 없었다. 누군가를 위하는 이타심은 리카의 잘못된 행복으로 연결되었고, 결국 훗날 잘못된 허영심으로 발전했다. 그녀는 달을 지운 것이 아니다. 가짜 달을 지운 것 뿐이다. 분명 그녀 마음 속엔 진짜 달이 있었겠지만, 그녀는 스스로 그 달을 가짜로 만들고 지워버렸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허영심은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다. 스미의 말처럼, 돈으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우메자와처럼 그것을 자유라고 느낀다. 허영심이 무서운 것은 우리 스스로조차 그것이 허영심인지를 모르고, 자유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게다가 우메자와 처럼 합리화 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이유까지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순수한 선의의 마음이어도 그곳은 허영심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