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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ul 27. 2017

열정, 집념, 진심

영화 <청년 경찰>

*본 영화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춘들을 다룬 영화 얘기를 시작하며, 90년대 청춘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슬램덩크> 얘기를 아니할 수 없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은 중학시절 도내 결승전 때 시합 종료 12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루즈볼을 잡으려다 안 감독 쪽으로 공을 놓쳐버리고 만다. 어떻게든 승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정대만은 라인 밖으로 흘러나가 버린 공을 보며 절망한다.



 90년대를 살며 슬램덩크를 한 번쯤 봤던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난 청춘을 한 장면으로 표현한다면 꼭 이 장면을 꼽고 싶다. 단념이 사치가 되는 시절,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시절. 하지만 그렇기에 크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시절.


 <청년 경찰>은 그런 혈기왕성한 두 청춘의 이야기다.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버린 두 경찰, 아니 예비 경찰들의 이야기다. <청년 경찰>은 희열(강하늘)과 기준(박서준), 두 친구가 의기투합해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다. 플롯도 우리가 추석이나 설날 많이 봐왔던 전형적인 코믹 액션 영화들의 플롯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 두 친구가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사건을 해결하는 스토리. 하지만 <청년 경찰>은 배우 강하늘과 박서준의 찰떡궁합 케미를 통해 '그저 그런 코믹 영화'의 범주에서 탈피한다. (사실 영화에서 대사를 통해 들으니 조금은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평소 20대들이 쓰는 말들과 오버 워치 궁극기 대사를 자연스럽게 대사로 옮겨낸 두 배우의 호흡은 영화 내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의형제>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웰메이드 '코믹 버디 무비'라는 생각이 들어, 이 영화의 등장이 새삼 반가웠다. 거기에 성동일, 박하선 등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더해지며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의 위험성을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웃음 코드로 상쇄해 냈다.

  

 

 영화의 두 주인공, 희열과 기준은 경찰이 되기 위해 경찰대학에 입학한 예비 경찰이다. 하지만 둘이 이 곳에 오게 된 이유는 많이 다르다. 과학고 출신의 희열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기에 모두가 선망하는 카이스트를 뒤로 한 채 경찰대학을 선택했다. 기준은 돈이 없는 부모님 때문에 학비가 없는 경찰 대학을 선택한 '흙수저' 청춘이다. 또 서로 다른 입학 동기만큼이나 희열과 기준은 판이하게 다른 성향을 지녔다. 과학고 출신의 희열은 항상 머리로 먼저 반응하지만, 단순 무식해도 남들에 비해 체력이 월등한 기준은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불안정한 청춘이다. 희열과 기준은 경찰 대학에 들어왔지만, 뚜렷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기에 경찰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경찰이 정말 자신들에게 맞는 직업인지를 고민한다.


돈도 못 버는 경찰 뭐하러 해요?

 

 여자 친구와 함께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옥타곤을 찾은 희열과 기준. 기준은 호기롭게 번호를 따기 위해 여자에게 접근하지만, 기준의 직업이 경찰대학교 학생이라는 말을 듣자 이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여자 꼬시기에 실패하고 클럽을 나선 이 순간, 대부분의 20대 남자들이 처음 인생의 좌절을 맛보는 순간이다. 작은 좌절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말랑한 청춘들은 어느새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청춘들은 아직은 세상 속에서 연약하기만 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우연히 나타난 여성의 납치 현장. 그들은 아직 '예비 경찰'이기에 진짜 '경찰'인 어른들에게 알리기 위해 먼저 신고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과정을 핑계로, 절차를 핑계로 최대한 빨리 구해내야 한다는 청년 경찰들의 호소를 들은 체 만 체 한다. 납치사건에서 피해자가 살해될 가능성이 높은 시간인 '크리티컬 아워' 7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음에도.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청춘들은 더 이상 무력해지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의 눈으로 납치되고, 감금당한 여성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들은 단단하지 못하지만, 용암처럼 뜨거운 청춘의 '열정'이 있었다. 많이 다른 줄만 알았던 희열과 기준에게는 그런 '뜨거움'이 존재했다. 경찰로서 도움을 구하는 시민이 눈 앞에 있다면 과정에도, 절차에도 구속받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그런 열정.

 영화 <청년 경찰>의 김주환 감독은 영화 속에서 사용된 장치인 7시간의 '크리티컬 아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최근에 많이 회자된 사건과 관련 있다. 누군가를 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넣은 것이다”


  사실 7시간의 크리티컬 아워는 '세월호 7시간'을 연상시킨다. 어른들이 과정에, 절차에만 기댄 채 아무 노력도 하지 않던 그 순간 바닷속에서 싸늘하게 죽어가던 아이들. 7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사실 무엇을 했는지가 더 궁금한) 정부와는 달리, 희열과 기준은 7시간 동안 눈 앞에서 납치된 여성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영화 <청년 경찰>은 그렇다면 어른들의 무용성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눈 앞에 증거와 범인을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건이 모두 끝나고 희열과 기준은 시민을 구한 용감한 '경찰 대학생'이 아닌, 예비 경찰로서 명예를 지키지 못하고 폭력 사태와 물의를 일삼은 '문제아'가 된다. 하지만 희열과 기준은 기죽지 않았다.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퇴학당해도 아무 이의 없냐고 묻는 양 교수(성동일)에게 희열과 기준은 이렇게 말한다.


학교엔 남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아직 배울 게 많음을 느꼈습니다.

 

 희열과 기준은 오직 청년으로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이끄는 대로 사건을 해결했다. 그런 그들이 이를 통해 배운 것은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것이었다. 그저 과정과 절차에 기대고, 오직 자리를 보전하기만 급급한 배울 것이 없는 어른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어른들에겐 뜨거운 청춘의 열정들이 가지지 못하는 단단한 삶의 경험과 지혜가 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 교수님이 있는 것이고, 학교가 있는 것임을 희열과 기준은 그것을 느낀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슬램덩크 정대만의 이야기. 루즈볼을 따내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정대만. 안 감독은 그런 정대만에게 공을 건넨다. 그리고 청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안 감독의 명대사.

단념하면 바로 그 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안 감독의 한마디 말은 절망에 빠진 정대만의 마음에 다시 불을 댕겼다. 그리고 무석 중학은 정대만의 마지막 슛으로 게임에서 승리한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은 안 감독 덕분에 이렇게 탄생했다.

 난 슬램덩크 안 감독의 모습을 보며, 영화 <청년 경찰>을 보며 사회에서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저씨, 꼰대였던 것이 아니다. 모두 불같았던 청춘의 시절을 겪고 어른이 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뜨겁지만 아직은 미숙하고 서투른 청춘들을 북돋워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완벽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방법을 일러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절망하더라도 다시 뛰어오를 수 있는 한마디 말이면 된다. 실패해도 된다. 넌 아직 젊다. 포기하지 마라. 네 마음속의 불씨를 꺼뜨리지 마라.


 양 교수는 교내 징계 위원회에서 희열과 기준의 거취에 대해 의견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뜨거웠던 때가 있었지 않냐고. 위험에 빠진 시민들에게 제일 먼저 응답하는 것이 경찰이라고 죽도록 가르치면서 교칙 때문에, 징계 때문에 그 학생들이 범죄 현장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겠냐고.

 

 아마 희열과 기준이 퇴학당했다면, 사회의 부조리함을 맛본 희열과 기준은 오히려 옳지 못한 어른으로 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음에도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면, 경찰로서의 무력함을 맛봤을 것이다. 그리고 클럽에서 만난 그 여자가 한 말처럼 '돈도 못 버는 경찰'같은 일을 때려치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양 교수와 같은 '어른'이 있었기에 희열과 기준은 누구보다 올바른 '경찰'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범인을 잡고 사람들을 구하며 그들이 왜 경찰을 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직접 머리로,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기준이 답안지에 쓴 '열정, 집념, 진심'이라는 답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 이들에게도, 팍팍한 현실 속에 허무주의에 빠진 청춘들 모두에게 필요한 '정답'이었다.


"희열과 기준 두 사람이 동네 오빠처럼 친근하면서 지금의 시대를 대변하는 열정적인 인물이길 바랐다. 영화를 통해서 열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 김주환 감독

 


 영화 <청년 경찰>은 단순한 오락 영화, 코믹 영화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년 경찰>은 그 코믹 속에서 이 시대를 사는 청춘들에게 '열정'을 잃지 말기를, 어른들에게는 청춘들의 '열정'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는 희망을 말했다. 청춘의 유쾌함과 뜨거움을 109분의 러닝타임 안에 효과적으로 녹여냈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나는 바라게 되었다. 내 옆의,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또 다른 안 감독, 양 교수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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